이번 여름에는 검둥이의 두 발목이 잘렸다

조회수 2018. 11. 8.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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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는 검둥이의 

두 발목이 잘렸다

복날이 끝났다. 개농장에 대한 이슈로 뜨거운 여름이었고, 농장에서 길러지는 소위 ‘식용개’라 불리는 개들이 여지없이 고통스레 희생되어 속 아픈 계절이기도 했다. 시골의 풍경도 여전했다. 어느 ‘반려견’들은 무참하고 무심하게, 가족이라 여겼던 이의 식탁 위로 올라갔다.

검둥이의 두 발목이 잘린 이유


올여름, ‘검둥이’도 개고기가 될 뻔했다. 그 개는 어느 주민이 풀어 키우던 이름 없는 두 마리 개 중 한 마리였다. 주민은 복날이 되었을 때 그는 보신탕을 끓이기 위해 덫을 놓았다. 한 마리는 덫에 잡혀 희생되었다. 검둥이 역시 덫에 걸린 것은 마찬가지였건만, 덫에 걸린 채로 죽기 살기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우연이라도 덫이 풀리면 좋았겠지만, 덫은 끈질기게 검둥이의 발목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검둥이는 앞다리 하나와 뒷다리 하나를 나란히 덫에 걸린 채 오랜 기간을 마을을 떠돌았다. 상처는 덫을 단 채로 아물었다.


덫은 조금씩, 조금씩 더 검둥이의 다리를 잘라갔다. 마침내는 덫과 함께 두 다리가 떨어졌다. 검둥이는 두 다리를 잃었을 때에야 덫에서 해방된 셈이다.

시골에서의 반려견


겨우 죽음을 면한 검둥이는 어느 부부가 집 앞마당에 놓은 길고양이 사료를 먹으며 연명했다. 배가 몹시 홀쭉해졌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만은 풀고 있지 않아서, 검둥이를 안쓰럽게 여긴 부부가 먹이를 내밀어도 절대 곁으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먼발치에 먹을 것을 두고 가면 그제야 홀쭉한 배를 채우러 조심스럽게 식사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둥이의 배가 점점 불러왔다. 임신이었다. 임신한 채 마을을 떠도는 개의 미래는 전형적이다. 새끼들과 함께 들개가 될 수도 있고, 다시 덫에 걸려 개고기가 될 수도 있다.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의 출산은 너무나 위험했다. 부부는 출산 전에 어떻게든 검둥이를 구조해 도와주고자 했으나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검둥이를 쉽사리 잡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검둥이가 돌연 모습을 감추었다.


부부는 녀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마을을 한 바퀴 죽 둘러보았다고 한다. 그러다 조그맣게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소리를 좇아간 허름한 폐허에서 검둥이를 발견했다. 검둥이는 나무 가시가 범벅인 곳에서 여덟 마리 새끼를 품고 있었다.


부부는 직업의 특성상 출장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폭염 속에서, 또 개식용을 위한 덫의 위험에서 검둥이와 새끼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뒷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부는 우선 새끼들을 안았다. 검둥이는 제 새끼들을 데려가는 부부를 공격할 생각도 못 하고 안절부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부부의 뒤를 좇았다. 부부가 그들의 마당 한켠에 자리를 만들어줬을 때야 검둥이는 목줄을 할 수 있었다.

반려문화 사각지대, 시골에서의 위험


검둥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부부에게 마음을 열었다. 발이 잘려 절뚝거리면서도 길고양이가 가까이 오면 혹여나 새끼들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죽을힘을 다해 고양이를 쫓아내고는 했다. 새끼들은 어미견과 부부의 돌봄 아래 구김살 없이 꼬물꼬물 눈을 떴다.


부부는 출장을 떠나며 이웃들에게 “우리가 없을 때 개들에게 밥을 좀 달라”라고 부탁하며 개들을 보살폈으나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시간 개를 ‘먹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 동네에서는 어린 개를 데리고 와서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키우다가 여름이 되면 잡아먹는 일이 워낙 흔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시골 마을에서의 개들은 그런 존재다. 마을을 돌아다니던 개들은 임신해서 새끼를 우르르 낳고 잡아먹히고, 그 새끼 또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그들의 부모가 밟았던 길을 그대로 가고… 아직도 개들은 복날에 맞아 죽고, 목매달려 죽는다. 그렇게 몸에 별달리 보신이 되지도 않는 ‘보신탕’이 된다.


우리의 느슨하고 무책임한 법과 정책이 이런 악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동물 또한 지각력 있는 존재이며 희로애락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먹어도 되는 것’, ‘일 년쯤 잔반 먹이다가 복날에 잡아먹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비단 개인의 문제일까. 우리 사회가 좀 더 엄중히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생각했다면, 이 비극은 좀 더 작은 크기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개식용의 위협에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사람과 동물이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했을 때 피해를 보는 것은 온전히 비인간동물의 몫이다. 다만 카라는 이 비극 속에서도 희망은 있고, 지금이라도 개선책을 내놓는다면 세상이 보다 나아질 것을 안다.


우리는 살아남은 어미와 그 새끼들을 부부로부터 데려왔다. 부부는 좋은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거듭했다. 잘못된 반려로 몸과 마음 모두 다쳐야 했던 검둥이와 태어나지도 못한 채 개고기가 될 뻔했던 새끼들의 존재는 우리나라의 개식용 문화가 얼마나 잔인하고 어리석은지 정면으로 말한다.


우리는 이름 없이 검둥이로 불렸던 어미견의 이름을 ‘연아’로 지었다. 카라는 연아를 위해 의족을 제작해 주려고 준비 중이다. 그 애가 다시 성큼성큼 뛸 수 있도록. 한편으로는 연아와 그 새끼들의 입양을 위해 입양 파티를 치렀다. 여덟 마리 중 여섯 마리 새끼들이 가족을 찾았다. 남은 두 마리 새끼들과 연아 또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이들이니,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연아에게도, 그 새끼들에게도, 소외된 생명 모두에게도 작은 기적이 찾아오길 바란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 이 두 가지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고 치밀하게 해나가 보면 그 기적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꿔 나갈 것이라 믿는다.



CREDIT

동물권행동 카라 김나연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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