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

조회수 2018. 10. 24.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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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다음 날 아침


네가 내 곁을 떠나고 나서 가장 많이 떠오른 건 어쩌면 내가 잠들락 말락 하는 그 순간 너는 내게 다녀왔을지도 모른다는 것. 평소처럼 내 옆에 누워 따뜻한 잠을 잤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 문득, 눈을 떴을 때 옆구리가 평소보다 따뜻하다고 느낀, 그 아침엔 ‘아, 어젯밤 내 품에 와 편한 잠을 잤구나...’하고 생각한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2일, 너의 꼬소한 냄새가 그리워


내가 좋아했던 건 그 어떤 비싼 향수보다 네게서 나던 꼬소한 냄새와 체취... 네 발바닥에 숨어 살던 말랑말랑한 양 한 마리... 꼬리를 흔들 때마다 씰룩거리던 엉덩이와 해맑던 눈동자... 생각해보면,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너를 지킬 수 없었다는 자책과 부재중인 너로 인해 문득문득 내게 찾아올 허탈함...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널 찾아갔을 때 마중 나와야 할 네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서운함... 유달리 네가 그리운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예전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이런 날도 있었구나, 우리는 참 좋았구나. 행복했구나. 그리고 따뜻했구나...’ 웃어본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그곳에서 넌 잘 지내고 있겠지? 아프지도, 늙지도 않고 반짝거리는 털을 나풀거리며 친구들과 신나게 뛰놀고 있겠지... 그런데, 그게 내 곁이 아니라서 오늘은 또 서운하고 아프다.

#3일, 비우지 못한 간식 봉지


다 비우지 못한 간식 봉지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내가 갑이었고, 넌 나의 을이었으니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촛불을 끄면 도깨비가 소환되듯 바스락 간식 봉지를 흔들면 네가 내 앞에 소환되어 웃고 있기를 바라본다.

#4일, 기다리지 마


가끔 난, 무지개 다릴 건넌 네가 날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생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늘 너를 기다리게만 했는데, 그곳에서조차 날 기다린다 생각하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건강하게 뛰놀고 있으렴. 이제부터 널 그리워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건 내 몫으로 정할 테니...

#5일, 절대 잊고 싶지 않아


사람이든 동물이든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게 당연한 이치고 자연의 순리겠지만, 가끔은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반석이가 그렇다. 내내 아픈 돌처럼 마음에 박혀 있을 아이...

#6일, 네가 있어야 할 자리


네가 없는데도, 나는 배가 고프고, 가끔 TV를 보며 피식 웃기도 하며, 다른 녀석을 붙잡고 털을 깎고, 발버둥 치는 녀석은 다리 사이에 안고 손톱도 깎아주며, 흥얼흥얼 노래도 부른다... 그러다 문득, 있어야 할 자리에 네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오면 괜히 창밖을 내다보거나, 애꿎은 녀석들에게 장난을 친다. 잊으려고 애써 노력하는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잠시 이생에서의 이별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그래도 문득문득 네가 많이 그리운 이유는, 나보다 날 더 사랑해줬던 네 마음을 너무 늦게 안 건 아닐까란 자책 때문일지 모르겠다...



CREDIT

글 사진 이유성 

그림 김은진, 이민경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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