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얼마에 내놓으셨어요? 4억원 이하는 아니죠?

조회수 2019. 8. 1. 13: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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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올인하는 ‘주주(住主)사회’

아파트 얼마에 내놓으셨어요?
4억원 이하는 아니죠?

스릴러 영화 ‘목격자’(2018)의 막바지 장면에서 부녀회장은 눈 오는 날 이사 가는 주인공 부부에게 난데없이 아파트 매매 가격을 묻는다. 영화의 무대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대도시 아파트 단지 한복판이다. 영화는 한 밤 중 일어난 살인사건을 목격한 주인공이 다음 타깃으로 되어 범인과 벌이는 숨가쁜 추격전을 담아낸다. 부녀회장뿐만 아니라 단지 주민들에겐 사람의 목숨보다는 아파트값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집 앞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밖에 알려지지 않도록 쉬쉬하고, 사건 후 실종된 사람을 찾는 전단지를 붙이지 못하게 한다. 나쁜 일이 생긴 아파트로 소문나면 값이 떨어질 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영화에서 집을 단순히 금전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각박한 세태의 단면이 드러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부녀회장을 아파트값밖에 모르는 비정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막상 당신이 당사자가 되면 어떻게 할까. 혹시 부녀회장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을까.

삶의 안식처였던 집이 재산적 가치나 성공을 평가하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양상은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는 사놓은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하게 산다. 전 재산을 투자한 소유물을 잃을지 모른다는 일종의 불안감이다.


영화 ‘목격자’는 바로 아파트값에 미친 한국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한편으로는 아파트값에 올인하면서 이 과정에 노골화되는 아파트 집단이기주의를 엿보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3대 요소가 의식주(衣食住), 즉 옷과 음식, 그리고 집이다. 이 3가지 요소를 갖춰야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초적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집은 인간의 기본 욕구 가운데 필수요소로 따지면 맨 마지막이다. 이제 어느 정도 살만해지면서 굶거나 헐벗은 사람이 거의 없어진 때문인가. 의식주의 순서가 최근 들어서는 바뀐 느낌이다. 실제로 순전히 ‘먹고 입는 것’에 대한 걱정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고 주(住)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있어도 ‘내 옷의 꿈’이나 ‘내 음식의 꿈’이라는 말은 없다. 오죽하면 초등학생에게 미래의 꿈을 물었더니 ‘내 집 마련’이라고 답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릴까. 대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옷이나 음식 걱정보다 ‘집 스트레스’가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집 때문에 웃고 운다. 프랑스 건축학자 르 코르뷔지에 표현처럼 “주택 문제가 그 시대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게 현실이다.

삶의 필수요소 중 ‘의’와 ‘식’에서는 대부분 평준화되어 돈이 많든 적든, 어디에 살 든 큰 차이가 없다. 과거 외제차가 성공의 상징이었으나 일반인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요즘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그 동안 외제차 가격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이 대도시 집값만 껑충 뛰었다. 승용차는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격하게 낮아졌다. 주변에 외제차는 돈이 없어 못 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유로 안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해외여행 역시 평범한 사람도 갈 수 있는 원거리 나들이에 불과할 뿐이다. 골프도 이젠 대중화되면서 큰 부러움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왠지 질투가 난다.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빈곤감을 느낀다. 삶의 공간에 불과한 ‘주(住)’에 전력투구하는 바람에 결국 집만 비대화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기형적인 삶을 당연한 듯이 무감각하게 사는 게 대도시 우리 생활이니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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