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래된 빌라를 좋아하는 이유

조회수 2017. 10. 4.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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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평대 / 빌라&연립 / 빈티지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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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생활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패키지 그래픽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윤설희라고 합니다. 20대 초반 40년 된 집부터 컨테이너박스, 반지하방에 살아보면서 집에 대한 애착이 또래보다 큰 편인 것 같아요.

평소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성격까지 더해져 신혼집도 아닌데 먹고 사는데 열과 성을 들이며 살고 있어요.
오래된 나의 집, 난 그런 우리집이 좋아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20년 된 건물이에요. 신축건물은 난방도 잘되고 벌레도 적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고 솔직히 가끔 해요. 하지만 너무 하얀 도화지 같아서 무언가를 시작 할 엄두가 나지 않는 느낌이에요. 물론 비싸서 못 사는 이유가 크지만요.

반면 오랜된 건물은 그 시대의 감수성이라고 해야할까요. 그 때만의 곡선, 패턴, 디테일 같은게 담겨 있는데 전 이런 걸 좋아하는 편이라 만족하고 있는 편이에요.

이 곳과 함께 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이전에 살던 집부터 모아온 살림살이들이라 인테리어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고 물건들이 빨리 자리를 잡은 편이에요.
저희 집은 "이런 컨셉이야!"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물건들이 모여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질감, 패턴, 형태 등에서 각각의 시간이 담겨있죠.
이제 집에서 자동차 뒷바퀴 보며 지내는 일은 없겠죠?

이전에 반지하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땐 정말 자동차 뒷바퀴만 보며 살았어요. 햇빛도 거의 안 들었구요. 고등학교 때 도시사람들이 자연을 그리워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됐는데 자동차 뒷바퀴만 보며 살다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집을 구할때는 햇빛이 잘들고 창밖 풍경이 좋은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이 집의 가장 좋은 점은 베란다에서는 산이 보여서 풍경이 좋고, 작은 방에서는 길가가 보여서 답답하지 않고, 침실에서는 앞 건물의 지붕과 벽만 보여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베란다에서 산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시집을 읽고, 숯불요리를 합니다. 나중엔 행거에 행잉플랜트를 좀 더 많이 걸어두고 싶어요.
대략적으로 저희집 도면과 가구배치를 그려봤어요. 침실이 있고, 주방 옆에는 제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일명 카페룸이 있어요.
여기가 바로 카페룸이에요. 작업실 겸 밥 먹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여기서 맥주를 마시거나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기도 해요. 집에만 오면 침대에 누워있게 돼서 자는 공간과 작업하던 공간을 나누도록 배치했습니다. 주중에 퇴근하고 나서 주로 침실에 있다면 주말에는 작은방에만 있는 편이에요.
소파는 정말 운 좋게 세일 할 때 50% 가격에 구매했어요. 인조가죽이라 아쉽지만 다른데서 보기 어려운 독틈함이 있어 만족해요. 세일 때가 아니었다면 비싼 가격에 아마 구매를 많이 망설였을 것 같아요. 그래도 소파 덕분에 앉을 곳이 많아져서 손님도 자주 부르고 있어요.

그리고 소파 위 포스터는 '포스터 온리'라는 전시회에서 판매하는 하시시박 포스터를 킨코스에서 코팅한 뒤에 액자에 맞춰 넣었어요. (테이블은 사이즈랑 색상을 맞춰서 주문제작 한 거에요)
카페룸이 미닫이문이라 요리를 준비하며 소파에 앉아있는 친구들과 대화하기 편한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만들어지는 곳

요리에 관련 된 드라마나 영화, 만화를 여럿 본 탓인지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이런 매체들이 확실히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엔 밥을 '때운다'로 표현했다면, 지금은 밥을 '짓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요리하는 시간을 제일 좋아해요. 남들보다 잘한다고 얘기 할 수 있는 실력도 아니고, 싱크대가 작아 인스타에 나오는 것처럼 멋진 부엌도 아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음식을 해 먹어요.
대만에 가게 된다면 집 같은 편안함이 느껴질까요?

친구들은 저희 집을 보고 가본적도 없는 대만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해 주는데, 아마 어반아웃피터즈에서 구매한 위빙제품이나 패브릭제품 때문인 것 같아요.

장롱 옆 커튼 뒤에는 자주 안 쓰는 제습기나 박스, 청소기 같은 못생긴 물건들을 가려두는 창고 같은 공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침구는 무인양품 커버를 쓰고 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이에요. 고양이 털도 덜 묻고 색감도 은은해서 다른 제품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제가 쓰는 모델은 4년전에 오사카에서 샀는데 최근에는 단종 된 것 같아요.
고양이가 화장실을 들락거리는데 자유롭도록 방문을 빼고 커튼으로 분리했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인테리어에 대해 조언할 깜냥이 될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느낀 점들을 써보자면 크게 세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로는 '배치'에요. 모든 예술의 기본이 '잡고 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이나 영화, 음악이든 어딘가 밀도가 높은 부분이 있으면 어딘가 풀어지는 부분도 있어야 완성도가 생기고 지루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공간에도 소품을 모아두는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여유롭게 남겨두는 부분도 있도록 했어요. 그런 부분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두번째는 '취향'이에요.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TV를 보고 자란 시대의 사람들은 TV속의 삶까지만 살아간다. 사랑하는 것도 그 레퍼토리 밖의 것은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오늘날 매체가 다양해지기도 했지만 사는 모습이나 취향이 이전보다 정제되고 단조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만의 취향을 갖는 건 어쩌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사실 인테리어에 완성도나 밀도가 있으려면 꽤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을 떠나 '자신만의 취향'을 확실히 알고있는 게 완성도나 밀도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자기 취향을 발전시키고 안목을 키워나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내'에요. 예전에 트위터에서 본 글이 있는데요.

'요즘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30년 된 디자이너부부의 집을 한 번에 따라하려 하는데, 진정한 인테리어란 마음에 드는 파스타볼이 생길때 까지 라면냄비에 파스타를 먹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저는 이 말이 인테리어의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급하게 한번에 완성하려 하지 않고 차근차근 쌓아가며 만드는 집은 그 집만의 온도가 생겨요. 그렇게 하면 각각의 가구/소품마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애정이 생기고 진짜 '내 집' 이 되는거죠.
성실하게 보낸 나의 하루가 위로 받는 곳

어떤 유명 권투선수가 인터뷰에서 말하길 '네모난 링 안에서 3분동안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건 게임이 끝나고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자가 없었다면 나는 싸울 수 없었을 거다.' 라고 했습니다. 제게 집이란 그런 의미에요. 집에 돌아간다는 건 성실하게 살아온 하루에 대해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죠. 때문에 집은 제 삶의 우선순위에서 높은 부분을 차지해요. by 인스타@y.8.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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