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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에곤 실레

나르시시즘의 끝판왕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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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우철의 아트터치'에서 만나볼 화가는 나르시시즘의 끝판왕, 에곤 실레입니다. 그는 수많은 누드 자화상을 남겼는데요. 그는 왜 자신의 벗은 몸에 집착했을까요?

어린 시절 그는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랐어요. 가족사진 왼쪽 아래에 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 아이가 에곤 실레입니다. 정말 귀엽죠?

그의 아버지는 철도 역장이었어요. 그래서 에곤 실레는 어린 시절부터 기차와 철도를 좋아했어요. 그의 어머니 증언에 따르면 그는 2살 때 부터 색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렸대요. 참 대단하죠? 어느 날, 그의 화목한 가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이중적인 도시였어요. 성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습니다. 그래서 매독에 걸린 신사들이 많았죠. 실레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매독에 걸린 아버지는 병세가 심해져 직장을 잃었고, 발작으로 인해 채권 등 모든 자산을 불태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함께 가난이 찾아온거죠.

그는 아버지의 일로 인해 성에 대한 독특한 생각을 품게 되요. 그의 작품인 <도이치 : 사랑의 행위, 습작>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나죠. 성 행위를 하는 남녀의 모습인데요. 아름다움이 없고, 행위 자체만 신경쓰는 모습이지 않나요?

불행해진 가정 환경과 달리, 그의 예술 상황은 조금 더 나아졌습니다. 16살이라는 나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죠. 하지만 유화와 색채를 배우고 싶었던 그의 바람과 달리, 엄격한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저학년에게 유화와 색채, 모델 드로잉 등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에곤 실레의 초기작인데요. 초기작만 봐도 그가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주고 있죠.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결국 에곤 실레는 엄격한 빈 미술 아카데미를 뛰쳐나와요. 그리고 당시 자유로운 예술 활동 모임인 '빈 분리파'에 들어갑니다. '빈 분리파'의 수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였습니다.

에곤 실레는 빈 분리파 특히 클림트와 친해지고 싶어 클림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클림트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클림트의 답변이 놀랍습니다. "너는 이미 훌륭한 그림 실력을 갖고 있어. 우린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동지로 지내야해" 정말 멋있죠? 그리고 그둘은 평생 함께 하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실레가 그린 클림트에요. 그의 드로잉 특징이 꽤 드러나 있죠? 클림트의 동작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이 이후로 실레는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다져갑니다. 그리고 독특한 소재를 발견했죠.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그것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죠. 그는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거울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자신의 사진을 찍죠. 대단하죠?

당시 사람들은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에요. 메마른 몸과 멍든 것 같은 붉은 실핏줄 등 볼품 없는 모습을 그대로 그렸으니까요. 사람들은 이건 그림이 아니라 포르노라고 하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는 점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왜 자신의 벗은 몸에 집착하게 된 걸까요? 그리고 그가 자신의 벗은 몸을 통해 무얼 깨달았을까요?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아래 유튜브 '노블레스 TV'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에디터 김지혜(c4@noblessedigital.com)

영상 펭귄 스튜디오

도슨트 정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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