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에 담긴 의미를 아시나요?

조회수 2020. 9. 22. 10: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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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는 표현과 기능을 중요시한다. 좀 더 들여다보면 그간 발견하지 못한 걸 볼 수도 있다.
일민미술관 외벽에 설치한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전 포스터.

전시 포스터는 때론 전시보다 중요하다. 작품보다 관람객에게 먼저 선보이기 때문이다. 전시의 주인공은 작품이지만, 그 얼굴은 전시 포스터라고 하는 이유다. 포스터는 전시 정보는 물론 그것의 가치와 의미, 분위기까지 전달한다. ‘한 장의 미학’이라는 말은 전시 포스터를 두고 하는 소리다. 제한된 면적에 그 내용을 담아내는 건 기본이요, 적당히 심플하고 충분히 강렬하면서 2~3개월 동안 봐도 질리지 않는 어떤 절대적 디자인 형태를 갖춰야 한다. 이렇게 여러 허들을 통과한 포스터에만 전시의 얼굴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그럼 지난 몇 달,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블록버스터급의 전시 포스터는 무엇이 있을까? 또 곧 보게 될 멋진 포스터는?

이렇게 쓰고 나서 지난 전시를 회상하니 <알렉산더 칼더: 칼더 온 페이퍼>전(K현대미술관, 2019년 12월 13일~2020년 4월 12일)의 포스터가 떠오른다. 맞다. 모빌의 창시자이자 현대 조각사에서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칼더(Alexander Calder)의 회고전 포스터. 한데 이 포스터, 어딘가 익숙하다. 작가의 이름 스펠링을 하나씩 분리해 공중에 매달아놓은 모습이 꼭 모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철판을 공중에 매달아 살랑살랑 춤추게 한 그의 작품과 닮았다.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타이포그래피가 주는 분위기가 전시 작품의 구성을 암시한다. 전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전시는 하나부터 열까지 칼더의 모토에 맞게 구성했다. “예술은 즐거워야 한다”는 그의 명언을 따른 것. 전시 포스터만 봐도 칼더의 전시를 관람한 느낌이 든다면, 이 포스터는 좋은 포스터일까, 나쁜 포스터일까?

디자인 원형의 속성에 집중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000년>전 포스터.
<툴루즈 로트렉-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전 포스터 이미지로 쓰인 뮤지션 아리스티드 브리앙.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000년>전 (국립중앙박물관, 2019년 12월 21일~2020년 5월 10일) 포스터를 보고는 박물관 전시 포스터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20년 전이었다면 ‘박물관 전시 포스터는 유물 사진 하나와 전시 제목만 들어가면 끝 아니야?’라는 말이 나왔을 거란 얘기.  이 전시 포스터는 현대적이다. 전면에 심플하게 전시 작품을 내세웠다. 포스터에 보이는 주황색 의자는 경기장이나 공연장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 의자가 맞다. 수백만 개가 생산, 판매된 이 의자는 수천 년 전 만든 (마찬가지로 포스터에 보이는) 나무 의자와도 비슷한 형태다. 이 전시 포스터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시간이 흐르며 형태는 바뀔 수 있지만 ‘편안한 의자’라는 원형이 지닌 속성은 여전히 중요한 특성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해 핀란드의 물질문화와 디자인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장치의 세련됨이 느껴지는 포스터. 

<툴루즈 로트렉-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전(한가람미술관, 2020년 1월 14일~5월 3일)의 포스터 디자인을 위해 전시 관계자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왜냐고? 로트렉(Toulouse Lautrec)는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120여 년 전, 그는 파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대중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포스터를 아주 잘 그렸다. 19세기 포스터 장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포스터를 위해 한가람미술관이 선택한 이미지는 로트렉이 그린 아리스티드 브리앙이다. 그게 누구냐고? 지금의 BTS급 인기를 구가한, 당시 파리 몽마르트르 최고의 샹송 뮤지션이다.

로트렉은 브리앙의 골수팬이었다. 브리앙도 로트렉을 좋아했다. 한마디로 브리앙의 이미지를 쓴 포스터는 로트렉 전시에서 소개한 150여 점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포스터에 담긴 브리앙의 모습은 로트렉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날린 듯이 가벼운 스케치, 간결한 색감,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한 선과 면(색)의 조화가 훌륭하게 구현되어 있다. 지난겨울, 필자는 지하철역과 버스 광고판을 통해 이 포스터를 볼 때마다 반했다.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가 많았는지 이 전시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해 지금도 앙코르 전시(9월 13일까지)가 이어지고 있다.

작가의 예술 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전 포스터.
작가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전 포스터.

얼굴과 손으로 불이 번지는데도 신문을 움켜쥔 남자, 배경인 눈밭은 동면에 들어간 듯 얼어붙은 현대인의 분별력과 감각을 잃은 모습을 부각한다. 전 (공근혜갤러리, 2019년 12월 19일~2020년 2월 2일) 포스터에 대한 설명이다. 불타는 뉴스는 뜨겁고 중요한 뉴스라는 의미다. 하지만 전통 매체의 쇠락으로도 읽힌다. 아무도 신문을 읽지 않는단 얘기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사진작가 팀 파르치코브(Tim Parchikov)의 첫 한국 전시 포스터에는 ‘Burning News’(2011~2013) 연작 중 한 점을 사용했다. 작품은 과도한 정보의 홍수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전시 포스터를 통해 작가의 예술 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셈.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일 과도한 뉴스에 노출되는 우리도 자극의 과잉으로 흥분 대신 되레 그 앞에서 무감각해지는 마취 효과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전시 포스터 속 인물은 범람하는 뉴스로 동면에 든 것처럼 무감각해진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전(일민미술관, 2020년 3월 24일~6월 21일)은 일민미술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동 주최로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 기간에 열렸다. 어떤 ‘의도’가 있는 전시란 얘기다. 이 전시 포스터는 전시를 소개하는 동시에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목적이 있다. 그래서 더 강렬하다. 전시 기간에 일민미술관은 건물 한쪽 벽면에 ‘새일꾼’이란 글자만 보이도록 대형 포스터를 세로로 부착했다. 결과적으로 투표 참여가 어떻게 역사를 바꿔왔는지 살핀 전시는 주목받았고, 다른 목표도 달성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호텔社會>전(문화역서울 284, 2020년 1월 8일~3월 1일) 포스터는 전시 공간인 옛 서울역을 형상화했다. 정확히 말하면, 호텔로 변모한 옛 서울역을 말이다. 호텔 하면 떠오르는 로비와 객실, 벨보이, 수영장을 각각 일러스트로 그려 4종의 포스터를 제작했다. 철도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호텔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보는 전시로 옛 서울역과 호텔의 조합은 금상첨화였고, 관람객의 반응도 좋았다. 당연히 전시장인 문화역서울 284는 한때 인스타그램의 성지로 등극했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전(한가람미술관, 2020년 1월 17일~4월 26일)은 지난해에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를 기리는 전시였다. 디자인사에서 핵심적 인물로 평가받는 카스틸리오니를 조명하며 그의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100여 점과 관련 아카이브를 소개했다. 전시 포스터? 카스틸리오니의 역작을 전면에 내세웠다. 각각 쓰임새가 다른 물건을 합쳐 만든 디자인으로 유명한 카스틸리오니의 전시라면 꼭 이래야 한다는 듯 말이다. 자전거 안장을 떼어내 반구 형태의 지지대에 붙인 ‘셀라 스툴’, 트랙터 좌석에 탄성이 있는 고정대를 조합해 만든 ‘메자드로 스툴’ 등은 제작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세련미를 풍긴다. 덧붙여 이 전시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포스터’였다. 국내외 디자이너 34인이 카스틸리오니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작업한 헌정 아트워크를 전시한 것. 그의 위트와 독창성, 천재성에 대한 찬사를 표현한 영국과 스위스 디자이너와 안상수, 박금준, 이인수, 김두섭 등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의 포스터를 전시장에서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곧 열릴 전시 포스터도 살펴보자. 지금 눈에 띄는 건 <칸디다 회퍼>전(국제갤러리 부산, 2020년 9월 18일~11월 8일) 포스터다. 색채와 빛, 형태의 구조적 아름다움과 원근법 등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사진작가 회퍼(Candida Höfer)의 전시 포스터에는 작품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했다. 박물관과 극장, 궁전, 도서관, 은행 같은 공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그녀의 사진 작품처럼 포스터에도 정보를 담은 극소량의 타이포그래피만 가미했단 얘기다. 하나의 이미지에 꼭 필요한 정보만 담는 게 포스터 디자인의 숙명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따랐고, 보기에도 좋았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2020년 10월 8일~2021년 2월 7일)의 포스터도 곧 만날 수 있다. 이 포스터에선 20대 젊은 시절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를 볼 수 있다. 맨발에 슈트를 입고 레게 머리를 한 그가 비스듬한 시선으로 앞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1985년 <뉴욕타임스> 커버에 실려 한창 화제가 된 그 시기 같다. 당시 <뉴욕타임스> 커버의 바스키아 이미지 위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새로운 미술, 새로운 돈: 한 아메리칸 화가의 마케팅.’ 그는 짧은 활동 기간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저돌적 야성미로 미국 미술계를 휘어잡았다. 이 전시는 그의 마스터피스 150여 점을 국내 최대 규모로 소개한다. 포스터보다 더 강렬한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꼭 필요한 정보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칸디다 회퍼>전 포스터.
옛 서울역과 호텔의 조합을 표현한 <호텔社會>전 포스터.

포스터 대신 SNS

최근엔 제한된 면적에 그 내용을 담아야 하는 포스터의 형태를 탈피한 전시 소개 방법도 인기다. SNS, 특히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면 더 빠르고 깊이 있게 전시 내용을 홍보할 수 있다. 세상이 점점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해지고 있는 마당에 전시 홍보라고 이를 거스를 순 없다는 얘기다. 이 방면의 대표적 전시는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인사센트럴뮤지엄, 2020년 4월 29일~9월 13일). 이 전시는 인스타그램 채널(insidemagritte_seoul)을 통해 전시장을 꼭 방문하고 싶게 하는 영상과 이미지 피드를 발신한다. 텅 비어 있던 전시장 벽면과 바닥이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작품으로 하나둘 채워지는 설치 과정을 담은 디지털 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증강현실을 활용한 전시장 영상을 업로드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노력 덕인지 전시는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매주 주말 3000명 가까운 관람객을 동원하며 흥행 중이다. 한편 최근 막을 내린 <서가의 풍경-책거리 문자도>전(호림박물관 신사분관, 2020년 5월 12일~8월 22일)의 다소 얌전한 포스터를 대신해 호림박물관의 인스타그램 채널(horimmuseum)이 진행한 홍보도 신선하다. 이들은 전시장의 대형 벽면에 프로젝션 매핑 기술로 구현한 전시 프롤로그 영상을 그대로 피드로 옮겨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포스터보다 SNS가 열 일을 한 셈이다.

최근의 전시 포스터는 정보 그 자체를 담는 매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상징적 용도로만 존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접하고 있어서다.

한 전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근래에는 포스터를 데이터로만 만들고 인쇄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포스터가 전시 흥행에 별로 힘을 더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전시 포스터는 이대로 사라질 운명일까? 그렇지 않다. 전시 포스터는 지금도 제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전시 포스터는 우리가 새로운 영감을 얻는 데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난주에 본 그 전시의 포스터를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전시 포스터는 결코 얼굴마담이 아니다.

에디터 이영균(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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