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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내가 돈을 모을 수 없는 이유

올해는 기필코 종잣돈을 만들어보리라 결심했지만, 소비의 노예가 되어 고민이라면 심리상담가의 조언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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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명품가방을 좋아해 웬만한 아이템은 다 갖고 있었다. 혹여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도 나오면 미국 매장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어 손에 넣곤 했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을 때 그 물건에 대한 가치가 더 크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구할 수 없다고 하면 구매 욕구가 더 샘솟았다. 하지만 그런 열정과 수고의 대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신상은 계속해서 나왔고 옷장은 아무리 채워도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항상 입을 옷이 없고 신을 신발이 없었다. 가난에 찌들고 불안했던 유년기를 보상 받고 싶었다.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을 명품으로 가리고 싶었고 그렇게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함을 물건들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을 배우기까지 난 많은 돈을 썼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소비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결핍이나 상처 외에도 우리는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마케터(판매자)가 어떻게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이용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원인 1.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를 아시나요?

새로 출시된 아이폰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라는 이유를 빼고도 어마어마한 해상도의 셀카 기능을 장착했다. 백만 원이 훌쩍 넘어도 명색이 최첨단 ‘손 안의 PC’라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통신회사에서 보조금과 특별할인까지 함께 들어간다는데… 결국 2년짜리 계약서와 함께 예쁜 최신형 아이폰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이 시작이었다. 애플 케이스를 시작으로 아이폰 유저만 쓸 수 있는 에어팟, 거치대까지 바꿨고 요즘엔 맥북이 슬슬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어떠한 물건을 구입한 후 그와 어울리는 물건들을 갖추려 하는 경향을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멋진 옷을 한 벌 샀는데 어울리는 가방이 없어 가방을 사고, 가방을 구매하고 나니 같이 신을 신발이 없어 구색을 맞추려다 보니 계속해서 구매를 하게 된다. 문제는 정말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까지 사게 되며 불필요한 지출을 만든다는 것이다.

원인 2. 불필요한 지출을 만드는 비교 심리

인스타그램에서 요즘 핫플이라는 이곳, 이번 주말에는 꼭 가보려고 한다. 장소 태그를 눌러보니 아무래도 나만 빼고 세상 사람 모두가 다 가본 것 같다. 똥손으로 찍어도 예쁘게 나올 감성적인 포토존에서 인증샷도 찍고 화제가 된 맛집에서 이색 메뉴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뿐인가? 그녀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필라테스도 배워 몸짱도 되고 싶고 인플루언서들처럼 해외여행까지는 못하더라도 국내여행 정도는 마음껏 하고 싶다. 그렇게 하나씩 소소하게 늘려가던 핫플 탐방과 여행은 내 통장을 서서히 마르게 했다.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의 사회 비교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자신의 의견과 능력을 평가하려는 욕구가 있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비교하곤 한다. ‘저 여자는 나랑 동갑인데 벌써 저렇게 성공해서 잘 사는구나’, ‘저 사람은 나랑 같은 동네 같은 학교 출신인데 저렇게 누리고 사네?’ 과열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비교 의식은 불필요한 지출을 만들어낸다.

원인 3. 매몰 비용의 함정

새해가 시작되자 마자 난 결심을 했다. 올해는 반드시 몸짱으로 거듭나리라. 아니 몸짱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자리잡은 군살을 빼고 몇 년 전 큰 맘 먹고 장만한, 지금은 옷장만 차지하고 있는 원피스를 입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목표로 헬스장에 가입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2월이 되면서 한 번도 헬스장을 이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매달 이용료를 내고 있다. 처음 지불한 가입비가 아까워 다음 달부터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그렇게 반 년이 흘러갔다. 이렇게 본전 생각에 집중하다 현재와 미래에 손해를 일으키며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는 현상을 매몰 비용 효과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유료 멤버십을 통해 고객을 ‘락인’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인 4. 보복 심리 (a.k.a 카타르시스 쇼핑)

백화점 면세점에서 명품 할인에 들어갔고 여름 대세일도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게 여행을 하지 못하는 대신 벼르고 벼르던 명품 가방이라도 하나 장만하면 좋을 듯하다. ‘코로나가 아무리 우리의 삶을 뒤 흔든다 해도 나는 끄떡없어!’ 하며 불황과 맞서 본다. 어차피 종식될 바이러스 따위에 항복하지 않을 거라는 심리는 소비를 부른다. 또 이런 심리에 발맞춰 많은 백화점도 고가품 세일에 들어갔다.

원인 5. 집 앞에 택배가 쌓이는 이유, 보상 심리

코로나가 장기화되며 스트레스는 날로 쌓여간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라도 만나고 싶지만 감염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유일한 낙이라고는 인터넷 쇼핑이다. 한참 예쁜 옷이나 신발을 구경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 된다. 오늘은 재택 근무 중 입을 편안한 추리닝 한 벌과 운동화를 샀다. ‘아무데도 못 가고 집에 이렇게 틀어 박혀 있는데 이 정도도 못 사?’, ‘남들은 명품가방도 유행 따라 턱턱 사는데 난 왜 이것도 못해?’하는 보상심리에 결제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거의 매일 집 앞에 택배 박스가 쌓여간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이렇게 충동적인 쇼핑을 많이 한다. 슬프거나 화가 났을 때 대체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런 마음을 잊거나 달래기 위하여 쇼핑을 하게 된다. 리테일 테라피(retail therapy, 쇼핑하며 심리치료)가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쇼핑의 연관성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원인 6. 소액결제의 덫

절약하는 습관을 갖겠다는 월초 계획이 성공한 듯하다. 나름 뿌듯했다. 통장이 ‘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그 어떤 것도 산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 돈을 쓴 것일까? 카드 내역서를 보니 스마트폰 앱 이용료, 영화와 음악 월정액 서비스가 따박따박 빠져나갔다. 그야말로 ‘소확행’을 꿈꾸며 마신 수많은 아메리카노, 너무 웃기고 앙증맞아 주저없이 결제한 이모티콘, 무료함을 달래주는 소중한 온라인 게임과 이런저런 어플, 한번씩 이용한 택시비, 편의점 간식… 부담감 없이 무심코 결제하는 소액 결제에 돈이 줄줄 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음원 사이트나 영화 사이트에 무료로 한 달을 이용하기 위해 가입해 놓고 그 다음 달부터 자동결제가 되어 돈을 내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비하는 줄도 모르고 쓴 푼돈이 모여 월말에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원인 7. 스릴까지 있는 희소성의 원칙

여유로운 주말 아침, 채널을 돌리다 화장품 세트를 마주했다. ‘어머, 저건 사야 해!’라는 생각이 스칠 때쯤 쇼 호스트가 외친다. “주문이 폭주하고 있는데요~ 소량입고로 오늘까지만 한정판매 하겠습니다. 자! 마감 2분 남았습니다” 이보다 더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은 없다. 한 세트 값에 다 사는 거니 거저나 마찬가지란 말에 망설일 틈도 없이 급하게 핸드폰을 든다. 이렇게 ‘안방 백화점’에 강림하는 지름신은 스릴까지 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까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구매한다는 점에서 안심도 되고 ‘나만 못사면 어쩌나’ 하는 경쟁심리까지 자극한다. 수많은 명품 브랜드는 소비자로 하여금 물건에 웨이팅을 걸고 기다리게 하고 심지어 어떤 브랜드는 웨이팅도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 것으로 브랜드의 희소성, 배타성을 강조한다. 이는 소비자로 하여금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심리를 만들어준다.

원인 8. 안 사면 손해? 손실 회피 심리

친구와 함께 간 대형 할인 마트에서 몇 가지 생필품을 샀을 뿐인데 결제 금액을 보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무래도 계산을 잘 못했나 영수증을 차근차근 들여다보지만 분명히 계산은 맞는 것 같다. 혼자 살지만 1+1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썩는 물건도 아닌데 싼값에 많이 사두는 것이 이익 아닌가? 돈 조금 더 보태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사는 것이 알뜰한 쇼핑법 같다. 그렇게 집에 와서 풀어보니 ‘이걸 다 언제 먹고 언제 다 쓸 거야’ 하며 한숨부터 나온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보다 잃었을 때 더 큰 고통을 느낀다.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사지 않았을 때 후회가 되고, 그것이 곧 손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손실 회피 심리’다.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행복한 소비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커피를 즐겨 마시고 커피 맛에 굉장히 민감하다. 내가 가장 잘 구매한 것을 꼽으라면 2년전 오랜 시간의 망설임 끝에 장만한 고가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꼽을 것이다. 비싼 커피를 사 먹지 않아서 좋고 언제든지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 내려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기쁨을 가져다 준다. 일상의 ‘소확행’을 위해 분명히 지출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무조건 돈을 쓰지 않고 저축만 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내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소비는 언제나 웰컴이다. ‘아 이거 정말 잘 샀어! 돈이 아깝지 않아’하는 물건이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있다. 구매에 앞서 물건에 대한 ‘필요’를 생각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는 기쁘게 소비하자. 억압적인 절약이 아닌 계획성 있는 저축과 또 소비에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내 감정들을 감추기 위한 물건이 아닌 솔직한 나의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 소비 역시 바람직하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기 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 되어야겠다.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중에서 - 


나 역시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으로 물건을 사 모으는 대신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면, 내가 존재한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남은 2020년은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감정과 행복에 집중하며 지혜로운 소비를 익혀 나가도록 하자.



에디터 김희성(alice@noblesse.com)

이동은 (심리상담가)

디자인 김수진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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