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 이동하와 곽선영과 나눈 이야기

조회수 2020. 7. 15.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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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 의 주인공 배우 이동하와 곽선영은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익명의 남자와 여자로 천천히 스며든다.

이동하의 베이지 니트 재킷 Lardini by Shinsegae International, 피케 셔츠 Calvin Klein, 코튼 팬츠 Reiss, 브라운 로퍼 Rockport.

곽선영의 화이트 컬러 볼륨 원피스 Musee, 실버 이어링 Cos, 로퍼 Karen White.

고민이 많은 편이다. 오늘은 어떤 신발을 신을지, 미세먼지는 괜찮은지 같은 사소한 것부터 건강, 노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 등 거시적 걱정으로 머리는 언제나 물음표로 가득 차 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구하는 삶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또 다른 의문에 빠질 즈음 <렁스>를 보았다. 오는 7월 5일까지, 대학로아트원씨어터2관에서 열리는 연극 <렁스>는 매 순간 치열한 고민을 나누는 남자와 여자를 조명한다. 가죽 신발과 인조 가죽 신발 중 무엇이 환경에 이로운지, 이상과 현실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 등 지극히 사실적인 고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여자와의 느슨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이를 갖자고 제안한다. 여자는 새로운 생명이 야기하는 1만 톤의 탄소발자국과 자신의 신체에 일어날 변화가 두렵기만 하다. 게다가 임신이라는 중대사를 쉽게 꺼내는 남자가 원망스러워 결국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화내며 고함을 지른다. 미움도 사랑의 표현 중 한 가지라고 했던가. 여자가 숨을 고르며 진정하자 남자는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끌어안는다. 많은 질문 끝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라는 해답을 찾고, 좋은 사람의 모습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 <렁스>는 쉼 없는 질문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알려주며 위로를 건네는 연극이다. 사랑하다 다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뉘우치는 남자와 여자는 완벽하지 않기에 더 공감을 이끌어낸다. 남자와 여자로 분한 이동하와 곽선영도 그들에게 마음이 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 배우는 이동하, 곽선영이라는 이름을 지워내고 보통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호흡을 맞추고 또 맞춘 결과, 둘이 일궈낸 시너지는 무대 밖으로까지 흘렀다. 이동하와 곽선영이 만든 무해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괜찮은 연기, 진짜 배우 그리고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동하의 화이트 니트 카디건 Reiss, 네이비 컬러 리넨 팬츠 Calvin Klein.

곽선영의 블루 컬러 셔츠와 체크 패턴 스커트 모두 Musee.

연극 <렁스>의 막이 올랐을 때 무대에 두 분만 있어서 놀랐어요. 보통 연극은 무대장치와 배경음을 활용하는데, <렁스>는 하얀 무대와 배우가 전부였죠. 동하 신선한 극이죠. 우리끼리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의자도 놓아보고 이런저런 시도를 했는데, 두 사람만 무대에 서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배우만 오르니 등장인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고, 메시지도 잘 전달돼 좋았어요. 저도 이런 무대는 처음이라 매 순간이 특별했어요. 덕분에 요즘은 정말 행복해요. 진짜로요.(웃음) 선영 감정선이 어느 정도 올라오니 장치가 불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세트가 들어오면 설명할 거리가 복잡해지니 차라리 다 빼기로 했죠. 더더욱 연기에만 집중했어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땠나요? 동하 재밌었어요.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죠. 등장인물이 극단적 행동을 할 때는 의아했지만, 공감 가는 장면이 더 많았어요.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죠. 선영 저는 동하랑 반대였어요. 사실 처음에는 다섯 줄 이상 읽기 힘들었거든요.(웃음) 남자와 여자의 행동이 뜬금없는 데다 상처 되는 말을 왜 하는지 여러모로 이해되지 않아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어요. 머리를 비우고 대본을 다시 펼쳤는데, 그제야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더라고요. 흥미가 생겼죠. 왠지 쉽지 않은 연극 같아 잘해내고 싶은 도전 의식도 생겼어요. ‘기댈 곳 없고 의지할 장치 하나 없는 연극. 내가 꿈꿔온 연극이다’라는 마음에 해보자고 결심했죠.

90분 공연이 오디오로 가득하더군요. 그만큼 대사량이 많은데, 암기하기 쉽지 않았겠어요. 동하 힘들었죠. 연습 정말 많이 했어요. 치열하게 관계를 다지는 남자와 여자처럼 계속 맞춰보고 또 맞춰보고, 산책을 하면서도 대사를 외우며 걸었죠. 선영 보통 머리를 식힐 겸 간식을 먹기도 하는데, 누구 하나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어요. 할 것이 많기도 했지만, 남자와 여자가 나누는 즐거운 이야기가 큰 원동력이었죠.

핑퐁처럼 이어지는 대사는 오랜 연습 끝에 맺은 결실이네요. 그 흐름이 자연스러운 나머지 관객 입장에서 두 분이 배우 이동하와 곽선영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 보였어요. 게다가 연극이 아닌 한 연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기분까지 들었죠. 동하 그렇게 보셨다니 다행이네요. 선영 대본의 힘도 커요. <렁스>의 대사는 참 일상적이에요. 대본을 따르다 보니 저희도 자연스럽게 보인 듯해요.

디테일이 강한 대본이었나요? 동하 대본에는 대사만 적혀 있어요. 디테일은 우리가 연습하며 찾았죠.

그러잖아도 두 배우가 각각 맡은 배역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질문하려고 했습니다. 같은 역할이라도 배우에 따라 달라지는 게 연극의 묘미잖아요. 개인적 감상을 더하면 이동하의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우유부단한 태도를 지닌 사람, 곽선영의 여자는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속은 여린 외강내유형이죠. 동하 “사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는 거야”, “네가 내 그런 모습을 강인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 사실은 아닌데”라는 대사가 그를 대변해요. 남자는 망설이다 주저하고, 여자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면모가 있어요. 여자와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항상 바라보고 노력하지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요. 그와 동시에 남자가 여자를 무척이나 사랑한다고 해석했어요. 그래서 날 선 감성을 쏟아내는 여자의 행동이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죠. 선영 진짜예요. 연습실에서도 그랬어요. 저는 그런 여자의 모습이 어렵고 무례하게 느껴지는데, 옆에서 귀엽다는 거예요. 동하 남자를 숨 쉬게 하는 사람이 여자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선영 제게 여자는 생각을 거듭하는 사람으로 다가왔어요. 환경, 지구, 관계, 문학 등 박학다식하지만 현실은 잘 모르는 듯했죠. 알고 있던 지식이 현실과 너무나 다른 데다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에 혼란을 느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분출하고, 남자한테 상처 주는 말을 하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남자를 사랑하고 의지했기에 모든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기억에 남는 대사도 많겠어요. 동하 하나하나 소중해요. 앞서 말한 대사도 그렇고, 남자가 여자한테 하는 “너는 동물 같아. 굶주린 야생동물”. 그리고 “어쨌든 사랑해”라는 말도 기억에 남아요. 이 한마디 안에 <렁스>의 모든 게 들어 있어요. 미성숙한 두 사람이 사랑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고 성장하는 모습요. 선영 저도요. “어쨌든 사랑해.” 그간 수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말은 “사랑해”예요. 그래서 그 대사를 할 때 참 어려워요. 모든 걸 담아내야 하니까요.

저는 연극을 본 뒤 사람이 한평생 1만 톤의 탄소발자국을 남긴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덕분에 환경에 부쩍 관심이 생겼어요. 이 외에도 <렁스>는 사랑, 결혼, 출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두 사람에게 와닿은 주제가 있을까요? 선영 기후변화의 위기 상황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각자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많이 찾아봤어요. 충격적인 장면이 많았죠. 환경오염이 점점 가속화되는 데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에 놀랐고, 또 속상하더군요. 동하 저는 성장이었어요. 미성숙한 인간의 성숙이 대본을 읽는 순간부터 확 와닿았죠. 모순적이며 극단적이기도 한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죠. 그 과정에서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며 상처를 주지만, 다시 서로를 보듬어주려 해요. 부단히 노력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끝나지 않는 인간의 성장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주제가 여럿이라 그런지 남자와 여자의 삶에는 물음표가 가득해요. 그들을 연기하면서 의문이 생긴 순간이 있었나요? 동하 물론이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은 무엇일까. 연극을 하는 동안 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죠. 덕분에 다시금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선영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이들처럼 오랫동안 고민한 적이 있었나 돌이켜봤어요. 저는 그러지 못했더라고요. 그동안 나름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와 여자에 비하면 저는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었죠.(웃음)


무대 밖의 이동하, 곽선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동하 집, 공연장, 헬스장만 왔다 갔다 해요. 집에서는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이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즐겨 봐요. 영화도 자주 보고요. 영화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선영 저도 이 친구랑 비슷해요. 집, 공연장이 거의 전부죠. 집순이라 그런지 여전히 대학로 근처 맛집을 잘 몰라요.

성장이란 나이, 경력과 관계가 없다고들 하죠. 10년이 넘도록 연기를 해온 두 분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길 바라나요? 선영 뻔한 말 같지만, 관객이 믿고 보는 배우요. 배역에 더 몰입하고 공감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사람요. 동하 역할로 기억되는 배우? 선영 기억되는 배우, 좋네요. 아! 그리고 제 삶과 세월이 연기에 묻어나길 원해요. 연륜 있는 선배님은 앉아만 계셔도 뭔가 느껴지잖아요. 그 모습이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요. 특별한 무엇을 하지 않아도 제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부쩍 들어요.

이동하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셨죠. 동하 좋아하는 배우가 있어요. 대니얼 데이 루이스인데, 작품을 시작하면 1년간 준비하고 그중 3개월은 촬영 현장에 살면서 몸동작 하나까지 배역에 맞춰간다고 해요. 물론 다양한 배우의 형태가 있지만, 제가 그리는 진짜 배우는 등장인물 그 자체가 되는 사람이에요. 그에 비해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요. 더 노력해야죠.

<렁스>엔 ‘좋은 사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나오더군요. 이동하와 곽선영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요? 동하 끊임없이 ‘내가 좋은 사람일까?’라고 고민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선영 좋은 사람! 연습할 때부터 정말 많이 생각해봤어요. 한번은 좋은 사람에 대해 적어보기도 했는데, 어렵더군요. 그래서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이라고 적은 것 같아요. 지금은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같아요. 살면서 그 정의는 계속 바뀌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동하와 곽선영은 좋은 사람인가요? 선영 좋은 사람은 타인이 정의해주는 게 아닐까요. 평가하는 부분이니까요. 어느 순간은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어쨌든 제가 좋은 사람인지는 타인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웃음) 아무튼 저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가려 합니다. 제 생각은 그래요. 동하 선영이의 말대로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야기예요. 저는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단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아요.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 헤어 윤성호 메이크업 박수지 패션 스타일링 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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