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혼례를 계획 중인 예비부부를 위해 준비했다

조회수 2020. 6. 29.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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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혼례를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나무 기러기 한 쌍은 전안례에서 기러기와 같이 백년해로할 것을 맹세하며 사용한다.

전통 혼례는 복잡하고 지루하다?

많은 이가 전통 혼례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 아쉽다. 전통 혼례를 한복 사진 촬영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거나,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전통 혼례는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간단하고 현명한 행사이며, 남녀가 평등하게 존중받는다. 절차와 의상, 소품, 색깔, 음식을 통해 신랑 신부가 행복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전통 혼례의 숨은 뜻을 알면 왜 결혼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는지 혼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전통 혼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했다. 최명희, 박경리, 박완서 등의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치르는 경사를 봐온 터라 혼례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한 소설을 여러 권 펴냈다.

‘혼인(婚姻)’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회가 인정하는 결합을 한다는 의미다. 혼(婚)은 ‘장가든다’, 인(姻)은 ‘시집간다’는 뜻이니, 가부장제 의미가 있는 결혼(結婚)’보다는 혼인이라고 표현할 것을 권한다.

‘혼례(婚禮)’는 혼인할 때의 모든 절차를 뜻한다. 예로부터 혼례는 초롱불을 밝히고 해 질 무렵에 행했는데, 이는 음(陰)과 양(陽)의 만남, 즉 음양의 균형을 의미한다. 음양은 예로부터 동양에서 우주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킨다고 믿어온 서로 반대되는 힘을 뜻한다. 혼례 절차는 생각보다 간결하고 흥미진진하다.


신부가 음양오행의 이치에 맞게 치장하는 것을 정사처라고 한다.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는 삼작노리개를 달고, 도투락댕기를 길게 드리웠다.

청색과 홍색은 음양의 조화

예전에도 혼수는 있었다. 청혼이 성사되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혼례 전에 혼수함을 보냈는데, 이를 납폐(納幣)라 했다. 혼수함에는 혼인을 약속하는 혼서, 청・홍색 비단, 사주단자, 오방주머니 등을 넣었다. 조선 숙종 때 관혼상제에 관한 제도와 절차를 모아 엮은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적어도 비단은 두 가지 이상으로 하되, 열 가지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며 호화로운 혼수를 경계하고 있다.

함을 지고 가는 함진아비는 부부 금실이 좋은 사람으로 선정하고, 잡귀를 막기 위해 얼굴에 검댕을 칠했다. 요즘은 오징어 가면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신부 집에 들어가기 전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은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는 의도다.

전통 혼례는 원래 중매부터 절차에 포함되지만, 오늘날 혼례는 신랑 신부가 예식을 치르고 첫날밤을 보내는 과정까지를 의미한다. 혼례를 할 때는 신랑은 양이므로 동쪽에, 신부는 음이므로 서쪽에 선다. 폐백을 할 때도 시아버지는 동쪽에, 시어머니는 서쪽에 앉는다.


신부가 음양오행의 이치에 맞게 치장하는 것을 정사처라고 한다.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는 삼작노리개를 달고, 도투락댕기를 길게 드리웠다.

음양의 조화에 따라 혼례에 사용하는 물건은 주로 붉은색과 청색이다. 신부는 연두 저고리에 다홍 치마인 녹의홍상(綠衣紅裳)을 입는다. 그리고 청색 스란치마와 홍색 스란치마를 겹쳐 입고, 위에는 삼회장 노랑 저고리를 입는다. 마지막으로 활옷이나 원삼을 입는다. 활옷에는 화관, 원삼에는 족두리를 쓴다. 활옷은 고려・조선 시대 상류계급의 혼례복이다.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여성 예복으로, 다홍색 바탕에 장수와 길복을 의미하는 십장생 문양을 수놓는다. 홍색 비단 안에 청색 비단을 넣어 만드는데, 이는 신랑과 신부의 화합을 뜻하는 것.

신부가 두 손으로 소중하게 들고 있는 흰 천은 한삼(汗衫)이다. 여기에 신랑 신부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로 ‘이성지합 수복지원(二姓之合 壽福志源)’이라는 글자와 십장생 문양을 수놓는다.

신랑은 화려한 빛깔의 비단 저고리 위에 단령을 입고 흑화를 신는다. 단령은 조선 시대 관복으로 깃이 둥글고 길이는 발뒤꿈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 겨울에는 명주, 여름에는 마포로 만든다.


도투락댕기를 길게 드리웠다. 4 구름을 수놓아 운혜(雲鞋)라고 부르는 여성 신발.

의리와 절개를 맹세하다

초례상은 동서로 향하게 설치한다. 상 위에는 촛대 한 쌍, 소나무와 대나무를 꽂은 병, 쌀 두 그릇, 밤, 대추, 곶감, 풀, 솜, 색실을 놓는다. 닭 한 쌍도 보자기에 싸놓는다. 쌀은 생명, 밤은 건강, 대추는 장수, 닭은 다산, 송죽은 절개, 촛불은 의례를 상징한다. 물을 담은 세숫대야 2개와 수건, 술상도 2개가 필요하다.

전통 혼례도 서양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진행자인 집례자가 있기 때문에 혼례 순서를 외워야 할 부담은 없다. 집례자는 혼례 순서인 홀기를 큰 소리로 읽으며 신랑 신부와 하객을 이끈다. 혼례 순서는 지방마다, 집안마다 차이는 있으나 많이 다르지 않다. 크게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로 이루어진다.


혼례 음식도 음양오행 철학을 바탕으로 색상과 숫자를 결정한다.

이윽고, 접대자가 신랑을 집 안으로 인도했다. 이때 홀기를 부르는 이의 낭랑하고 장중한 목소리가 엄숙한 분위기를 더했다. 초례청을 멀리 가까이서 에워싸고 수군대고 킬킬대던 아녀자들도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신랑은 기러기아비로부터 기러기를 받아 목을 왼쪽으로 해서 받들고 초례청에 이르러 북향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차려놓은 전안상 위에 기러기를 놓고 두 번 절했다. 그동안 모든 손님은 숨을 죽이고, 신랑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모았고, 홀기를 부르는 이의 정중한 목소리만 들렸다.

[포안] [치안어지] [신랑재배] [신랑소퇴].

이로써 전안례는 끝나고 초례는 그다음이었다. 기러기는 태임이의 몸종이 제 치마로 받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_ 박완서의 <미망> 중에서


전안례는 식장에 도착한 신랑이 혼인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나무 기러기 한 쌍을 들고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신랑 신부가 기러기와 같이 백년해로할 것을 임금에게 맹세하는 의미다.

교배례는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절하고 세숫대야에 손을 씻는 의식이다. 예전에는 중매로 혼례가 이루어졌기에, 그제야 두 사람이 처음으로 얼굴을 보았다. 서로 절하고 인사하며 앞으로 영원히 함께할 것을 서약하는 의미는 현대에도 이어진다.

합근례는 신랑 신부가 서로 잔을 주고받는 예다. 처음에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다음에는 표주박에 따라 마신다. 술잔을 사용할 때는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절하고, 번갈아가며 술을 땅에 조금 붓고 안주를 먹는다. 그다음에는 표주박 잔으로 마시는데, 서로 술잔을 바꾸기도 한다.


1, 3 합근례는 신랑 신부가 서로 잔을 주고받는 예다.
2 초례상의 송죽은 의리와 절개를 상징한다.

표주박 잔으로 술을 마실 때 조용해지는 이유

“서로 잔을 들어 신랑이 위로, 신부가 아래로 가게 바꾸시오.” 허근의 소리가 다시 울린다. 이 순서야말로 조심스러운 것이고, 이제까지의 복잡하고 지나긴 예식의 마지막 절차이다. 또한 가장 예언적인 성격을 띠는 일이기도 하였다. 사람들도 이때만은 숨을 죽인다. 하님과 대반은 술상 위에 놓여 있는 표주박 잔을 챙긴다. 세 번째 술잔은 표주박인 것이다. 원래 한 통이었던 것을 둘로 나눈, 작고 앙증스러운 표주박의 손잡이에는 명주실 타래가 묶여 길게 드리워져 있다. 신랑 쪽에는 푸른 실, 신부 쪽에는 붉은 실이다. 그것은 가다가, 서로 그 끝을 정교하게 풀로 이어 붙여서 마치 한 타래 같았다. 이제 이렇게 각기 다른 꼬타리의 실 끝이 서로 만나 이어져 하나로 되었듯이, 두 사람도 한 몸을 이루었으니 부디부디 한평생 변치 말고 살라는 뜻이리라. _ 최명희의 <혼불> 중에서

4 교배례는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절하고 세숫대야에 손을 씻는 의식이다.
5 도착한 신랑은 나무 기러기 한 쌍을 들고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한다.

합근례는 신랑 신부의 몸은 합하고, 귀하고 낮음은 같게 한다는 뜻이다. 예식에 사용하는 표주박 잔에는 청・홍색 명주실 타래가 드리워져 있다. 박을 반으로 잘라 만든 것이기에 그 짝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고, 둘이 합쳐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 이 잔으로 술을 마시며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날을 축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딸을 둔 집에서는 박을 심었고, 박 넝쿨이 가득하면 그 집에는 혼인할 나이의 딸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합근례에서 어려운 일은, 표주박에 가득 술을 부어서 서로 바꾸어 마시는 것이었다. 잔을 바꾸면서 술을 한 방울이라도 흘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실이 얽히거나 꼬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술을 흘리면 흘린 쪽의 마음이 새어버리고, 실이 얽히면 앞날에 맺힌 일이 많아 고초가 심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다 보니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합근례 때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명주실의 행방을 지켜보았다. 예식을 마친 후에는 하객 중 한 명이 축사를 한다. 축사를 할 사람이 없는 경우 신랑 신부는 퇴장하면 된다. 집례자는 초례상의 닭 한 쌍을 하늘로 날려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원한다. 초례상의 배경이 되는 것은 목단 8곡 병풍이다. 목단은 우리나라 수묵화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꽃 중 하나이며, 모란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기에 혼례뿐 아니라 환갑, 칠순 등 모든 잔치에 즐겨 사용한다.

20세기 들어 빠른 경제 발전과 함께 모든 것이 급작스럽게 현대화되면서 예식이 서양식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 혼례의 장점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1부는 서양식으로 하고, 2부는 전통 혼례를 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예 전통 혼례를 중심으로 예식을 치르고, 웨딩 촬영으로 서양식을 체험하는 신랑 신부도 늘고 있다고 하니 반갑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결혼식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보다 의미를 되새기며 진행할 것을 권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통 혼례의 숨은 뜻을 알아야 할 이유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사진 청스튜디오 의상 협찬 박정욱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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