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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고독한 미식가의 밀키트에 대하여

혼자 먹지만 제대로 먹어야죠. 간편하지만 속이 든든한 밀키트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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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마켓컬리 풀드비프 플래터 아롱사태를 결대로 잡아당겨 촉촉하면서 쫄깃한 식감의 소고기를 빵과 코울슬로, 피클 그리고 닭다릿살과 함께 즐기는 플래터.

3 세미원 타이페이식 우육탕면 소의 양지 부위로 국물을 내 기름기가 적고 감칠맛이 나는 육수를 담았다. 우사태의 진한 국물과 두반장의 매콤한 맛이 적절히 어우러진 우육탕면.

4 조르니키친 BLT 부드러운 치아바타 브레드에 양상추와 양배추, 토마토, 적양파, 슬라이스 치즈, 베이컨, 머스터드, 치즈 파우더를 얹었다.

5 뽀모 한우가 들어간 라구빠께리 어윤권 셰프가 직접 빚어 삶은 빠께리 파스타에 한우가 들어간 라구 소스를 버무린 파스타. 전자레인지에 2분 30초만 데우면 된다

나 혼자 먹는다. 업무나 친목으로(가끔 연애로)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도 있지만, 주로 혼자 먹는다. 밥 얘기다. 혼자 사니 어쩔 수 없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혼밥의 세월은 21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쫓겨나듯 독립한 천둥벌거숭이에게 밥은 ‘I don’t care’였다. 사실 그땐 ‘식사’라는 개념이 없었다. 밥이야 어떻게든 먹겠지. 학교 식당에서 라면을 먹든 술자리에서 안주로 때우든,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으니.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돈이 좀 생기면 컵라면, 참치캔, 스팸 같은 걸 박스째 사다놓고(그땐 즉석밥도 없었다) 나머지는 술로 탕진했다. 망나니 생활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패스트푸드와 배달 음식, 인스턴트식품과 과자 부스러기로 연명하다 보니 인생이 불행해졌다. 고작 20세에 삶의 피폐함을 경험한 것이다. 체중이 70kg도 채 안 되고 눈 밑이 거무튀튀해진 뒤에야 ‘밥(혹은 해주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때부터 매주 본가에 갔다. 목요일 저녁이면 엄마에게 간장게장부터 된장찌개, 갈비찜, 잡채, 곱창전골 같은 메뉴를 문자로 미리 오더(?)하고, 주말이면 배가 터지게 밀어 넣으며 한 주를 버텼다. 그러다 군대에 갔다. 대학 시절 굶주린(?) 덕분인지 맛없다던 짬밥이 내 입엔 달기만 했다. 병장을 달고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밥에 대한 집착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는 제대로 된 밥을 사 먹으러 다녔다. 일단 회사 근처 밥집부터 물색했다. 주로 생선구이나 김치찌개, 뼈다귀해장국, 쌀국수, 파스타같이 조리의 영역(?)에 있는 음식이 밥의 기준이었다. 그래도 주말이나 속이 허한 새벽이면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음식점은 1인 손님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중에서도 편의점은 버릇처럼 달려가는 급식소 중 하나였다. 삼각김밥부터 샌드위치, 냉동만두 같은 3분 요리가 주메뉴였는데, 하루는 편의점 전자레인지 앞에서 음식을 데우다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소설가 김훈이 <밥벌이의 지겨움>에 적은 것처럼, 밥에는 정말 대책이 없었다. 한두 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기에. 그래서 요리를 배웠다. 시작은 한식이었다. 퇴근 후 종각에 있는 학원에서 밥 짓기부터 지단 부치는 방법, 각종 찌개, 제육볶음, 심지어 구절판 만드는 방법까지 마스터했다. 소질 있다는 칭찬도 듣고 재미도 붙이다 보니 종목은 양식으로 넘어갔다. 처음엔 파스타나 라자냐 같은 간단한 종목부터 시작해 아란치니나 카르파초, 뇨키 같은 이탈리아 중급(?) 요리를 섭렵(흉내 내기 수준)하고 나중엔 퓌레나 머랭을 활용한 프렌치 디저트까지 손을 댔다(당시 한창 유행하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 나갈 생각도 했다). 그러다 보니 조리 도구도 늘어났다. 커틀러리나 접시, 샐러드 볼, 심지어 무쇠 팬과 오븐까지 독거(獨居) 남자에게 과분한 도구를 사 모았다. 그때가 좋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초대해 요리를 하고 빈 와인병을 길게 늘어놓았다. 요리를 하며 바뀐 건 집에서 ‘임시’라는 느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온기, 이곳에 생활이, 사람의 의식주가 온전히 작동한다는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생활의 안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혼자 먹는데 굳이 정성 들이는 것이 궁상맞아 보였다. 장을 보고 요리해 담아낸 한 접시가 안겨주는 행복은 들인 정성에 미치지 못했다. 재료는 툭하면 상했고, 식사에 소모되는 비용은 사 먹는 것보다 많이 들었다. 결국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요리 라이프는 2년이 채 되지 않아 막을 내렸다. 다시 인스턴트와 배달 음식의 나날이 시작됐다. 가스레인지는 모기향을 피울 때 말곤 켤 일이 없었고, 오븐에도 먼지만 쌓였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일상은 다시 피폐해졌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살도 쪘다(심지어 입맛만 더 고급이 됐다). 그러다 밀키트를 만났다.

1 네떼 리코타 과일 샐러드 로메인과 치커리, 적근대, 라디키오 등 채소와 방울토마토, 시리얼, 오렌지, 리코타 치즈가 어우러졌다. 레드 발사믹 소스가 동봉된다.

2 존쿡 델리마트 세인트루이스 립 드라이럽 스타일 삼겹 주위에 붙어 있는 스페어 립의 끝부분을 커팅해 균일하게 만든 립. 뼈가 적고 살코기가 풍부한 것이 특징이며, 사과나무로 훈연해 풍미가 진하다.

3 마켓컬리 멕시칸 화이타 밀 토르티야와 양념이 밴 돼지고기 토핑, 살사 소스, 볶음채소, 양상추, 아보카도 살사까지 풍부하게 화이타를 즐길 수 있는 재료가 담겼다.

사실 처음엔 감흥이 없었다. 경험에 비춰보건대, 즉석식품엔 기대할 게 없었다. 채소는 종이 같고, 고기는 고무 같은 식감과 화학조미료의 조합은 배달 음식보다 못했다. 그런데 요새 나오는 밀키트는 달랐다. 입문은 신세계푸드에서 출시한 ‘초마 짬뽕’이었다.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왔는데, 맛을 보곤 깜짝 놀랐다. 숙주와 양파, 당근 같은 채소는 물론 고기와 조갯살 같은 건더기가 생물의 식감을 유지했다. 그리고 국물에서 느껴지는 감칠맛과 불 향이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면을 냉동한 육수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간편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밀키트 순례를 시작했다. 가정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으로도 불리는 밀키트의 범위는 광범위했다. 짜장면, 라멘, 우육탕면 같은 면 요리부터 새우볶음밥이나 곤드레밥, 리소토, 필라프 같은 밥 종류까지 시중 음식점에서 취급하는 거의 모든 요리를 밀키트로 판매했다. 조리도 간편하다. 보통 4~6단계의 과정을 거치는데, 각 봉지나 재료마다 넘버링이 있어 적힌 순서대로만 하면 된다. 주로 ‘A를 물에 끓인다, B를 넣는다, 조리 후 C를 뿌린다’ 정도로 라면 끓이는 수준의 난이도다. 가장 좋은 건 1인분 혹은 한 그릇 분량의 재료만 담겨 있어 낭비가 없다는 것이다. 양배추나 대파, 양파처럼 대용량을 구매해야 하는 것도 그램 단위로 포장돼 있고, 고추기름이나 마라, 바질 같은 향신료도 소량 제공해 뭘 갖춰야 해 먹을 수 있는 요리의 전제조건을 없앤다. 이용 빈도가 가장 높은 건 1인분의 한 끼 식사지만 집에 손님이 오거나 홈 파티를 위한 메인 디시도 준비돼 있다.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밀푀유나베와 감바스 알 아히요, 팔보채, 립아이 스테이크 등이다. 모든 재료는 손질은 물론 세척 후 포장 배송되기에 요리의 앞부분은 생략된다(준비하는 데 손이 더 간다). 모두 냄비나 팬, 전자레인지 같은 기본 조리 도구만 있으면 완성 가능하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먹어도 좋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채소나 사리, 양념을 추가해도 좋다.

밀키트가 1인 가정에만 유용한 건 아니다. 요리에 자신 없는 가정주부는 물론 바쁜 맞벌이 부부, 자녀 간식으로도 유용하다. 급히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 이만한 솔루션이 없다. 실제 유통 채널에서 집계 조사한 밀키트계의 큰손(?)은 40~50대 맞벌이 부부로 나타났다. 30대 신혼부부와 1인 가구가 뒤를 잇는다. 시장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마켓 조사 기업인 링크 아즈텍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밀키트 시장은 2010년 7747억 원에서 2016년 2조 원을 넘어섰다. 이들은 2023년 국내 밀키트 시장이 10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성장을 도운 건 현 세태도 있지만 기적적인 국내 유통 시스템에 있다. 쿠팡이나 이마트, 마켓컬리 등은 당일 오후 11시 59분까지만 주문하면 오전 7시까지 집 앞으로 배송해준다(수도권 지역 한정). 빠른 배송이 가능하니 유통기한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그때그때 주문해도 되니 보관의 염려도 없다. 물론 밀키트보다는 직접 재료를 사고 손질해서 조리하는 것이 맛도 좋고(실력에 따라) 경제적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밀키트는 적절한 타협점이다. 경제적이고 간편하며 생활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적절한 식(食)문화, 어쩌면 이건 미래일지도 모른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기성율 푸드 스타일링 김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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