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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의 정확한 의미를 아시나요?

그동안 ‘예술적’ 작업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무엇을 요구해왔을까요? 그 존재 의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을 통해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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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호가 연출한 국립무용단 <향연>의 무대 전경.

한 마을에 미소년들이 따라다니며 추앙하는 남자가 있었다.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그곳을 찾아간 한 청년 역시 그 길거리 논객의 놀라운 사유에 반했고, 그와 사람들의 문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극적인 대화로 이뤄진 드라마 타입으로 그 기록을 남겼다. 트렌디하면서도 자신을 포함해 읽는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방식이 낫겠다고 판단했을까? 실제 그 전략은 통했고, 그 작품은 수천 년간 전 세계인에게 영향을 끼쳤다. 누군지 짐작할 만한가? 청년은 플라톤, 거리의 논객은 소크라테스다.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이나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또 재창조하는 일은 인류 역사상 거의 모든 곳에서 행해왔다. 다만 그 일의 범주와 부르는 호칭이 달랐을 뿐. 청년 플라톤은 오늘날 작가나 에디터 혹은 기획자에 가까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정치가이자 대학 설립자로, 또 철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과연 그를 단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창작물을 공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하나가 아니라 연쇄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이를 주도하는 사람 역시 뚜렷하게 노출된다. 그것이 무엇이건 창의성(creativity)을 논하는 분야라면 더더욱 그렇다. 순수예술과 상업 분야를 통틀어 결과물에 따른 직업이나 이름을 따로 부르기보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라는 호칭으로 포괄해 부른다. 표현 방식이 어떻든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나 영감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생전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불리었던 칼 라거펠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배지’가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은 광고계다. 흔히 ‘CD’라고 줄여 부르는데 1960년대부터 사용했고, 종합 광고대행사의 형태가 뒤늦게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경우 ‘제작국장’이라는 직함을 통용한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엔 다른 분야로 확산되어 비주얼과 관련한 제작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아트 디렉터와 혼용하기도 한다. 다만 작업의 범주에 차이가 있다. 아트 디렉터가 한 팀을 이끄는 미술감독에 가깝다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카피라이터도 할 수 있으며, 두 팀 이상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총괄 감독에 가깝다. 사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아트 디렉터라는 호칭의 가장 큰 차이는 ‘전략’의 유무에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컨셉과 전략의 의미를 알고 작업의 방향을 정해 팀원을 끌고 가는 사람이다. 이 호칭이 게임계로 넘어가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총괄하고 아트 디렉터는 게임 스타일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이 갈린다.

패션계로 가면 그 이름이 더욱 흥미로워진다.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에게 브랜드 컨셉과 비전을 제시하고 쇼와 광고 이미지도 다룬다. 그 밖에도 개인의 역량에 따라 패션 디자인 영역을 벗어나 아티스트나 브랜드 아이콘으로 활동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이 무한하다. 일례로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대중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호칭에 익숙해지게 한 일등 공신. 사실 칼 라거펠트도 1983년 샤넬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아티스틱 디렉터 혹은 수석 디자이너라는 호칭으로 불렸고, 사후에도 그의 공식 직함은 아티스틱 디렉터로 남았다. 하지만 그가 샤넬에 입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펜디의 아트 디렉터를 동시에 맡으며 모피에 한정된 브랜드 역량을 가방과 액세서리로 확장하고, 본인의 브랜드까지 총 3개 메이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자 언론과 대중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그들은 알아서 이 꽁지머리 신사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불렀다. 사진 스튜디오와 서재에 30만 권 넘는 책이 있을 만큼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그의 창작에 대한 욕구는 사진작가(1987년 샤넬의 보도자료용 사진을 찍은 것이 그 시작이다)와 필름메이커, 심지어 서점 주인으로도 활약하게 했다. 그가 패션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미디어 앞에 설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더더욱 그에게 열광했다.

2019 CFDA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패션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한 버질 아블로.

지금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버질 아블로도 브랜드 내 공식 직함은 ‘아티스틱 디렉터’다. 루이 비통에서 아티스틱 디렉터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97년, 마크 제이콥스가 부임한 이듬해에 레디투웨어와 슈즈 카테고리를 새롭게 전개하면서부터. 꽤 오래됐다. 언론과 SNS는 물론 팬들은 버질 아블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부른다. 이전에 칼 라거펠트가 그런 것처럼 그의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이끌면서 패션 외에도 건축, 음악,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관심사를 놀라운 결과물로 드러낸다. “대학 재학 시절 미술 수업을 들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일찍이 매료되었다”고 밝힌 그는 글로벌 투어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물론, 저소득층을 위한 봉사 활동에 액세서리 디자인 같은 창조적 방식으로 나서기도 한다. 그는 말 그대로 다재다능한 ‘르네상스 맨’이 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협업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500주기 회고전을 기념하는 스트리트웨어를 그의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통해 출시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정구호 디렉터처럼 독립적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다. 그 역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한 패션계에서 활약하며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남겼고, 뭔가 새로운 전기가 필요한 브랜드에서 SOS를 보내면 그것이 뷰티든 스포츠웨어든 컨셉과 전략을 제시하며 성장을 도왔다. 국립무용단의 <향연> 역시 전통 무용극에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입힌 역동적이고 완성도 높은 무대연출과 의상으로 젊은 관객까지 사로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갤러리 공간 자체를 하나의 프레임이자 플랫폼으로 받아들인 21세기 이후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나 유명인사가 브랜드와 만나 상품을 만들거나 공간 컨설팅을 맡기도 한다. 또는 영상이나 설치 작품을 제작해 전시하면 어느 순간 작가로 발돋움하고, 자연스럽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 불린다. 복합 문화 공간을 지향하는 곳의 큐레이터 역시 작품 관리자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기획자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를 멈춰 세워 어떤 것을 두 번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사명이다”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직관적으로 아름답다 느끼는 작품을 만들고 즐기고 싶은 것은 변치 않는 인간의 본능이다. 역사상 사람들을 모으고 지갑을 열게 한 꾸준한 전략이기도 하다. 어쩌면 많은 명품 브랜드가 수장의 이름을 ‘아트’란 단어로 수식하고 미술 재단을 운영하며 예술가와 협업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옆에서 본격적인 영역 파괴 현장이 펼쳐지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말이 훨씬 자주 들렸다. AI를 비롯해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창작의 폭이 더욱 넓어질 미래, 우리는 앞으로 창작자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또 어떤 배지를 달아주게 될까? 우리가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바가 곧 새로운 호칭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말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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