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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아트 갤러리

조회수 2020. 5. 20. 10: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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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 내각에서 총리직을 지낸 도미니크 드빌팽이 아트 컬렉터인 아들 아서 드빌팽과 홍콩에 갤러리 '빌팽'을 열었다.
아서 드빌팽과 그의 아버지 도미니크 드빌팽.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흔들기 전 2월 어느 날, 창 너머 안쪽 깊이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곳에서 도미니크 드빌팽(Dominique de Villepin)과 그의 아들 아서 드빌팽(Arthur de Villepin)과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자크 시라크 내각(1995~2007년)에서 대통령 비서실장(1995~2002년)과 외무부 장관(2002~2004년), 내무부 장관(2004~2005년)을 역임하고 총리(2005~2007년)를 지낸 도미니크는 현재 역사·정치·문학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집필하며 국제 포럼 등에서 연사로 활동하고 있다. 총리 재임 시절 3년에 한 번 개최하는 프랑스 현대미술 행사 ‘라 포스 드라르(La Force de l’Art)’를 구상, 프랑스 최초의 트리엔날레를 개최한 예술 애호가인 그는 자오우키(Zao Wou-ki),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미켈 바르셀로(Miquel Barcelo´)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예술가들과 친구로 지내며 작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서 역시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며 외교적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체득해왔다. 특히 아트를 기반으로 하는 ‘아르 드비브르(Art de Vivre)’ 그룹 산하에서 예술과 접점을 꾀하는 기업가인 아서는 최근 10년간 주로 홍콩에 머물며 지역 예술가와 아시아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왔다. 아버지와 함께 지난 3월, 홍콩 센트럴 지역에 오픈한 갤러리 ‘빌팽(Villepin)’은 그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다. 예술과 역사, 지역과 그 지역을 연결하는 사람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 시대 중요한 예술가의 지원자임을 자처하는 드빌팽 부자와 함께 예술과 사람, 그것이 어울릴 때 비로소 아름답게 만개하는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홍콩 ‘빌팽’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우정과 화합: 자오우키(Friendship and Reconciliation: Zao Wou-ki )>전의 설치 전경. 작품은 ‘Hommage a‵ Franc¸ oise’(2003).

“Entrepreneurship in general has its ups and downs and most of the time destabilizes you in a way that you can feel lost. Art and the artists have always been a source of light, a way to look at life with a new breath and allow me to find the path to continue and start over again.” _ Arthur de Villepin

거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활동이 침체된 지금, 홍콩에 갤러리 빌팽을 오픈했다는 소식은 정말 반가운 뉴스였어요. 아트 바젤 홍콩 행사가 취소된 상황이라 더욱 그렇고요.

Arthur(이하 A) 홍콩도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지만, 다행히 상황이 비교적 잘 통제되었어요. 과거 사스 경험을 바탕으로 초기에 잘 대응한 덕분에 예방 조치를 시행했고, 지금도 이를 잘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정된 갤러리 오픈을 미룰 필요는 없었어요. 갤러리 빌팽은 제가 10년간 홍콩에서 지내며 이곳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얻은 아이디어의 산물이지만, 실은 우리 가족이 공유해온 예술적 경험과 열정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만나본 아트 컬렉터 대부분 수집한 작품을 다른 사람과 함께 감상하며 얻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자신만의 갤러리나 미술관을 꿈꾸더군요. 빌팽도 그 연장선이라고 보면 될까요?

A 물론입니다. 아버지와 저는 이 갤러리가 컬렉터에 의해, 그리고 컬렉터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빌팽은 아시아가 향후 수십 년간 세계 예술계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장기 프로젝트예요.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은 열정뿐 아니라 막대한 책임감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오랜 기간 신뢰를 쌓은 예술가 편에 서서 다른 컬렉터와 작품을 공유하는 행위니까요. 특히 우리는 앞으로 아시아계 컬렉터의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거라고 보기에 아시아 지역에서 이러한 컬렉팅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빌팽은 전시뿐 아니라 출판물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모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나이와 경력을 떠나 우리가 신뢰하고 함께 전시하고 싶은 예술가를 가능한 한 많이 알릴 수만 있다면 디지털이나 도서, 다른 협업 등 모든 플랫폼을 활용할 계획입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작가나 시인과 협업해 원본 판화나 석판화를 담은 한정판 도서도 출간하고 싶고요.

빌팽에서는 9월까지 중국 근대미술의 거장 자오우키의 전시를 선보입니다. 자오우키는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에서 높은 낙찰가로 이름을 올리는 작가죠. 생전 프랑스 루아레에 작업실을 마련해 과감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 친구 중 첫 전시에 그를 선정한 이유는 뭔가요?

A 올해는 자오우키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자오우키의 문화적 뿌리인 중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우정과 화합(Friendship and Reconciliation)’이라는 전시 타이틀에 숨은 의미가 궁금합니다. 

A 아버지와 저는 전시 큐레이팅을 총괄하면서 자오우키의 작품을 미술 시장에서 이미 익숙한 그림이나 연도 순으로 나열하기보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만의 내적인 부분을 밝히고 싶었어요. 1940부터 197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작품을 모두 섞어 그의 작품 스타일이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쳤음에도 언제나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자오우키의 재능이었어요. 그는 친구들에게 영감을 받아 자신을 재발견하고 자신만의 인생관을 만들었죠. 그래서 이번 전시 타이틀을 ‘우정과 화합’으로 정했습니다.

도미니크 전 총리는 자오우키와 가까운 친구였다고 들었습니다. 자오우키와는 어떻게 만났나요?

Dominique(이하 D) 자오우키의 작품을 좋아해 젊은 시절부터 그의 그림을 수집했습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일할 당시 자오우키와 친했던 대통령이 작가를 제게 소개해줬죠.

자오우키와 친구로 지내며 쌓은 추억이 많을 것 같습니다.

D 제가 총리로 있을 때 자오우키 부부를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자오우키는 큰 유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하루는 제가 종이와 붓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 수채화를 그려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한 번도 스튜디오 밖에서 작업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정원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수채화를 즐겨 그렸죠. 그 특별한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2002년 중국 정부 임원들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우리 부부는 자오우키에게 디너 메뉴판 디자인을 부탁했습니다. 그는 임원들에게 직접 메뉴판을 건넸고, 참석한 손님들에게 큰 호평을 받아 자랑스러워했지요.

1 2006년 자오우키의 작업실을 방문한 도미니크 드빌팽.
2 2007년 정원에서 수채화를 그리는 자오우키와 도미니크 드빌팽.

아서는 자오우키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나요?

A 자오우키는 상대방의 나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주위 친구들에게 솔직한 데다 즐겁고 진정성 있는 작가였죠.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고, 함께할 때면 늘 활기차고 재미있는 친구였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예술과 밀접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기억에 남은 예술가가 있나요?

A 주말이면 집에서 예술가를 비롯해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 생각나요. 아버지는 정치인이었지만 늘 창의적인 사람들을 가까이하셨어요. 어린 제가 멋진 어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때로는 파리 근처에 위치한 안젤름 키퍼 스튜디오에 가기도 했어요. 그림으로 가득한 커다란 스튜디오에 있을 때면 이런 놀라운 장소에 있는 제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옌페이밍(Yan Pei-Ming)의 집과 스튜디오, 그와 함께한 중국식 식사도 기억나네요. 많은 조각과 그림으로 둘러싸인 미켈 바르셀로의 아틀리에를 구경한 뒤 함께 한 점심 식사도 떠오르고요. 이때의 추억은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인 것 이상으로, 예술을 생각하고 이해하며 예술의 일부가 되어 창작 과정을 지켜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한 경험은 현재 당신이 운영하는 기업 비즈니스에도 영감을 주나요?

A 물론이죠. 그 때의 경험이 제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기업가로 산다는 건 성공과 실패를 맛보는 동시에, 대부분의 시간을 상실감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것을 의미하죠. 이런 순간에 예술은 늘 마치 한 줄기 빛처럼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요.

도미니크 전 총리는 지난 2월 한국 정부의 초청 행사 참석차 서울을 방문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였는지 궁금합니다.

D 전·현직 지도자 여럿과 함께 세계평화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 기회를 통해 한국의 많은 갤러리를 방문하고 예술가를 만나며 한국 예술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한국 예술계의 역동성과 다양성에 매료되었습니다. 때마침 운 좋게도 제 친구이자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지켜본 강명희 작가의 전시도 볼 수 있었죠.

드빌팽 부자는 지난 3월, 홍콩에 갤러리를 열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강명희 작가와는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나요?

D 강명희 작가와 함께 단체전을 연 칠레의 초현실주의 화가 로베르토 마타(Roberto Matta)와 자오우키 같은 친구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진리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그녀의 예술에는 어떠한 꾸밈도 없습니다.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죠. 당신도 그녀의 작품 세계에 한번 발을 들이면 헤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도미니크 전 총리는 외교관으로 활동한 이후 1995년부터 자크 시라크 내각에서 오랜 기간 정치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시를 쓰는 작가이자 대중 연설가, 아트 컬렉터, 이제는 갤러리를 세워 작가를 지원하는 일까지, 어떻게 이 많은 활동이 가능한가요?

D 저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았어요. 예술은 민족주의와 고립주의, 포퓰리즘의 위기에 직면한 현대사회에서 국가와 문화를 이어주기도 하죠.

1980년대 주미 대사, 주인도 대사로 재직하던 시절 세계 각국의 예술가를 정기적으로 만나 문화 외교를 펼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문화 외교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D 운 좋게도 저는 아프리카(모로코)에서 태어나 남아메리카(베네수엘라)에서 자랐으며, 미국과 유럽에서 교육을 받았고, 인도와 미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게 문화적 정체성과 여러 국가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는 위기 상황에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한 국가의 예술과 문화를 배우면 상대방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정치인은 대체적으로 당신처럼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은가요?

D 프랑스의 오랜 역사에는 세계를 향한 열린 자세와 개방적 사고를 갖춘, 작가이자 여행가인 외교관이 많습니다.

아서는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을 것 같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아들에게 여러 가르침을 주셨을 것 같고요. 당신은 아버지에게 주로 어떤 점을 배웠나요?

A 아버지는 ‘다르다는 것이 곧 기회’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다름(difference)’을 위협으로 여기기보다는 제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또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정과 화합: 자오우키(Friendship and Reconciliation: Zao Wou-ki )>전의 설치 전경. 왼쪽부터 ‘Le vert caresse l’orange’(2005), ‘Fune´railles’(1949), ‘25.03.2004’(2004), ‘Sans Titre’(1986) 순서로 걸려 있다.

“We know from history that political and economic power goes along with cultural power. I believe Asia has today a special responsibility in this regard, especially while many people around the world are more and more looking towards the Asian art scene.” _ Dominique de Villepin

도미니크는 총리 시절 ‘라 포스 드라르’로 알려진 프랑스 최초의 트리엔날레를 구상하셨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D 트리엔날레를 통해 프랑스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예술을 내세우는 동시에 예술만이 우리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예술을 바탕으로 인류의 생존에 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분열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함께 그리면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D 예술은 세상 그리고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법을 열어줍니다. 이토록 중요한 기능을 하기에 한편으로는 미술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함으로써 사람들의 요구와 희망을 충족시켜야 하는 오늘날 예술가들의 책임이 크기도 하죠. 이는 분명 어려운 임무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예술계가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저 역시 글과 연설 그리고 빌팽을 통해 이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빌팽은 홍콩과 아시아 미술계, 아니 전 세계 미술계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예정인가요?

A 홍콩에서 갤러리를 연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아시아에서 10년 동안 경험한 것과 지난 15년간 종종 아버지가 방문한 중국에서의 경험, 그리고 앞으로 아시아가 예술계에서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술계의 일부로서 일본, 한국, 대만, 동남아시아 같은 지역에서 다른 갤러리, 기관, 큐레이터, 예술가들과 연을 맺고 싶어요.

혹시 다음 전시도 이미 구상하셨나요?

A 아직 생각 중입니다. 빌팽의 큐레이션과 프로젝트는 늘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직 예술가를 향한 열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친구든, 존경하는 예술가든, 새롭게 소개받은 작가든, 그 누구든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다른 관점으로 예술을 바라보길 원해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략 6개월씩 전시회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살롱을 열고 여러 기관과 재단, 예술가를 포함한 동료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술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죠.

다른 컬렉터나 갤러리스트와 달리, 작가와 우정을 나누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가와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고, 그들의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면서 갤러리스트로서 책임과 역할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세계관과 꿈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도미니크 전 총리는 “아직 수면 아래 머물러 있는 훌륭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염두에 두고 있는 ‘젊은 작가’가 있나요?

D 젊은 예술가의 독창적 발상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요. 화가인 제 딸 마리(Marie)의 스튜디오에 가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앙카 아지몽(Bianca Argimo´n)이나 타티아나 포조 디 보르고(Tatiana Pozzo di Borgo) 같은 젊은 예술가를 통해서도 실감합니다. 신세대 예술가들은 미술 시장에 의존하는 예술을 보며 자신은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으려 하죠.

당신은 아시아 작가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어떤 잠재력을 주목하나요?

D 저는 아시아 예술가의 활발한 에너지와 창의성을 좋아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가는 가운데 아시아계 예술가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적 뿌리에서 영감을 찾으려는 의지가 강하죠.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치적, 경제적 권력은 문화의 힘과 연관이 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아시아 예술계를 주목하는 만큼, 특히 아시아는 앞으로 큰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빌팽(Ville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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