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리들이 산에 못가면 봤다던 산수화의 현대 버전

조회수 2020. 5. 7.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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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일로 바쁜 조선시대 관리들은 산을 그린 산수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자연을 담은 현대판 와유산수로 봄나들이를 떠나보자.

‘와유(臥遊)’는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와유산수(臥遊山水)’는 옛 선비들이 방 안에 산수화를 걸어 놓고 누워서 상상 속의 절경 유람을 즐겼던 것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종병(宗炳, 375-443)은 관직을 거절하고 산수를 누비며 음악과 서화를 즐긴 화가로, ‘산수화’ 즉 산수를 그린 그림이 실제 산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산수화론(山水畵論)’을 말했다. 이 이론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나랏일로 바쁜 관리들이 매일 산에 갈 수 없게 되자 산을 그린 산수화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봄이 왔지만 가벼운 바깥 나들이조차도 예전처럼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예견하듯, 그림으로 산수를 즐길 수 있는 산수화론을 마련해준 종병. 바쁜 일상 속 화가의 눈을 통해 자연을 간접 경험하며 아쉬움을 달래고자 했던 조상들의 멋과 풍류를 이 시대의 작품들을 통해 느껴보는 건 어떨까?


꽃과 곤충이 어우러지며 내뿜는 봄 기운

‘설악의 화가’ 김종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강원도 설악산에 칩거하기 시작한 후 ‘자식들이 자랑할 만한 좋은 작품 100점만 남기고 죽자’라는 일념으로 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자연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삶의 의미와 생명력을 소생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추상에 기초를 둔 구상’으로 설악의 사계와 꽃을 주로 그리며,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한 김종학은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을 지탱해 온 구심점이자, 해외 시장에서 ‘한국의 고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화면을 가득채운 꽃과 곤충들이 어우러지며 살아 있음의 환희를 뿜어내는 그의 작품을 통해 봄 기운을 만끽해보자.

김종학 (b.1937), 백화만발, 캔버스에 아크릴, 45.5×53cm (10호)

몽롱하고 부드러운 하늘

오치균은 이 세상의 풍경을 그린다. 뉴욕, 산타페, 사북이 가장 대표적인데, 소재가 된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색다른 조형미가 가득하다. 종이에 파스텔로 그린 <산동네>는 제대로 하늘을 바라보는 날이 거의 없는 현대인들에게 하늘의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하늘이지만 하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옹한다. 보면 볼 수록 신비하고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파스텔로 그린 몽롱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화사한 하늘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차가워진 우리의 일상에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회복시켜 주는 것 같다.

오치균, 산동네, 2007, 종이에 파스텔, 63×97cm

따스함과 정감이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적 구상화를 잇는 이대원은 산, 들, 연못, 농원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선묘와 점묘, 파묵과 갈필 같은 동양화의 준법이 배어 있는 표현방법과 색 점 하나하나로 형태와 빛을 암시하도록 표현한 이대원의 작업은 화려하고 두터운 유화물감과 어우러져 ‘서양화로 그린 동양화’라는 독특한 화풍으로 가지고 있다. 화면 전체가 다양한 색채로 뒤덮여 서정적인 정조를 뽐내는 작품 <강변(낙화암)>은 따스함과 정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의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풍경화의 감흥과 경치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이대원 (1921 - 2005), 강변 (낙화암), 캔버스에 유채, 1976, 45.5×53cm (10호)

경이로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들을 통해 와유산수의 멋과 풍류를 즐겨보기를 바란다. 마스크 없이는 바깥 출입도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 현대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손이천 (K옥션 수석 경매사)

에디터 김희성(alice@noblesse.com)

디자인 장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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