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 시대, 맥라렌 디자이너는 어떤 방식으로 일할까?

조회수 2020. 4. 29. 11: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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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 맥라렌은 전설이자 미래다. 맥라렌 디자이너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생각할까?
제품 디자이너 최종우
가구에서부터 제품 디자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뒤 맥라렌(McLaren)에서 시니어 제품 운송 디자이너로 재직중이다. 영국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혁신 공학 디자인(Msc Innovation Design Engineering)을 공부한 그는 디자인의 미적 가치에 엔지니어링 사고방식을 접목한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바로가기 ▶ www.ryanchoi.co.uk
1 맥라렌 2020 F1 MCL35


영국 맥라렌에서 일하고 계시다고요?

영국 맥라렌(McLaren)에서 시니어 제품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어요. 포뮬러1(F1) 스포츠에서 시작된 맥라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몇 안 되는 자동차 회사로 이제 30년이 갓 넘은 비교적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회사로 성장했는데요. F1 경주용 자동차를 포함, 최근 10년 사이 공격적으로 슈퍼카(Automotive) 비즈니스를 성장 시켜왔으며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몸담고 있는 어플라이드(Applied) 디자인 팀에서는 맥라렌이 그리는 미래 비즈니스에 좀 더 집중하고 있어요. 팀에서 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모터스포츠, 오토모티브, 공공 운송, 의료 분야인데요. 저는 그 중 제품 및 운송기기 디자인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2 2020년 공개된 맥라렌 슈퍼카 ELVA
3 리차드 밀과의 협업 프로젝트 ‘RM50-03/01’


회사마다 고유의 기업문화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는 퇴사하는 직원이 남은 직원에게 떠나는 이유 등을 담은 ‘부검 메일’을 보내는데요. 맥라렌의 독특한 기업 문화는 무엇인가요?

F1은 맥라렌의 상징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스포츠 이벤트를 자주 진행해요. 예상 순위를 맞추는 직원에게 선물을 주는 등 사내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놀이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F1 스포츠를 모르면 대화에 낄 수가 없고 심지어 스포츠에 관심 없는 직원들도 F1 경기를 챙겨봅니다. 매년 자동차에 관련된 행사에도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요. 맥라렌에 있으면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죠.


의사 결정이나 아이디어를 하나의 제품으로 구현하기까지 맥라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나요?

보통 프로젝트마다 적합한 인원들로 팀을 만들어요. 고정된 자리가 없고 프로젝트 팀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맥라렌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엔지니어링 지식이 어느 정도 있거나 소통에 문제가 없는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작업하며 의사결정을 합니다. 엔지니어에 비해서는 소수의 인원이라 디자이너 개인의 아이디어 방향이 결과물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리더가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있는 수평적인 업무 구조는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다만 엔지니어를 납득할 수 있는 설득력이 디자인에 담겨야 하고 그 책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하는 부담감도 있기에 신경 쓸 부분이 많습니다.

4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자동차 축제 ‘굿 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Goodwood Festival of Speed)’


근무 환경이나 복지는 어떤가요?

근무환경이 굉장히 유연해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재택근무가 가능합니다. 필요에 따라 미국, 싱가포르 지사 혹은 타국에서 원격으로 근무 가능할 정도로 디자이너로 일하기 편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어요. 요즘은 코로나19로 강제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원래 익숙하기에 큰 불편함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 외 맥라렌과 스폰서십을 맺은 회사들 덕분에 직원 할인 혜택이 많아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에 동참한 직원 중 100명을 추첨해 고가의 시계를 제공하기도 했어요.


바야흐로 뉴 노멀 시대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대다수의 회사와 마찬가지로 영국은 강제 재택근무에 돌입한지 두 달이 되어가네요. 회사가 제조업 중심이라 쉽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중간중간 디자인의 형태를 확인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각자의 집에 3D 프린터를 가져다 놓고 화상 회의로 소통하려 노력중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어 하루빨리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5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사내 이벤트 ‘고 카팅(Go-Karting)’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래를 앞당기는 기분이 듭니다. 많은 기업들이 선뜻 실행하지 못하고 있던 재택근무는 바이러스를 계기로 미리 실험해 보는 계기가 됐고, 언택트 소비의 성장세도 가파릅니다. 성장세도 가파릅니다. 제품 디자이너로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래의 디자인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번 사태로 기업의 업무환경이 빠르게 변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직업마다 다르겠지만 아직 화상회의로 일을 진행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미래에는 MR(Mixed Reality) 시스템이 더욱 우리 삶에 가깝게 들어와 디자이너들에게 현실 세계만큼 가상세계에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올 거 같아요. 기술의 발전과 3D 프린트 보급 속도가 더욱더 빨라진다면 디지털 데이터 라이센스를 판매하는 제품 디자인 회사가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좋은 것을 보는 눈’이 중요하지만 현재 일하는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소통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맥라렌은 엔지니어링에 강점을 가진 회사이기 때문에 많은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는데요. 디자이너로서 이들과 언어적으로 소통할 수 없다면 일을 함께하기 쉽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져야 해요. 툴을 다루는 숙련도가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되지 않아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고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스케치를 잘하고 그래픽 툴을 더 잘 다루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의 자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디자인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내려면 이 같은 요소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6 현재 일하는 환경에서 ‘소통하는 능력’은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오른쪽이 최종우 디자이너.


영국에서 일하며 살아보니 어떤가요?

올해로 영국에 거주한 지 10년이 되었네요. 저에게 영국, 특히 런던은 많은 영감을 주는 도시예요. 언제나 새로운 볼거리가 넘치고 세계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낼 수 있어 디자이너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곳이죠. 백화점조차도 박물관에 온 듯 하나하나 영감의 원천이 될 요소들로 넘쳐나고 그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고 디테일이 있어요. 디자인을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들이 저를 지금까지 이 나라에 머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방인으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보이지 않는 차별도 견뎌내야 하고요.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과거에는 종종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타지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적 배경이 디자이너로 활동하는데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7 맥라렌 테크놀로지 센터 전경


영국에서 일하면서 특히 만족스러운 점이 있다면요?

리서치가 용이하다는 점이 좋아요. 책을 비롯해 세계적인 전시회를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환경이업무 능률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워라밸’도 굉장히 잘 지켜져요. 이곳 사람들은 일보다 자신의 삶과 가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거든요. 덕분에 저도 인생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더라고요.


출근해서 하루의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 편인가요?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9 to 6를 준수하지만, 개인 상황에 따라 시간 조절이 가능합니다. 월요일 9시에는 주간 미팅을 하는데요. 재택 근무자도 섞여 있어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됩니다. 프로젝트 진행 사항을 공유하는 목적도 있지만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안부를 묻는 자유로운 자리여서 팀워크 향상을 위한 미팅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디자인만큼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 방침에 따라 올해부터 점심시간을 쪼개 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상대방에게 더욱 신뢰를 줄 수 있더라고요. 직원들 대부분은 6시에 퇴근을 하지만 때로는 부족했던 작업이나 새로운 툴을 익히는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고요한 그 시간이 집중하기 좋거든요.

8 케이크를 균일한 크기로 나눌 수 있게 디자인한 ‘Cake Server Knife’ (2015).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담아내려 고민했던 개인 작업물이다.


제품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개인적인 철학과 맥라렌에 소속된 디자이너로서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디자이너 이전에 삶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려 노력합니다. 모든 것을 비울 때 선택과 집중에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디자인을 할 때도 전달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지 못할 때 디자인이 주는 가치가 상쇄되는 경우들이 발생하거든요. 맥라렌의 철학은 F1 스포츠의 도전정신입니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한 기술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엔지니어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디자이너로서 일할 때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9 지난 해 스위스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회사를 대표해 무대에 오른 최종우 디자이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가장 자부심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디자인으로 인정받을 때면 늘 보람을 느끼지만 작년 봄 스위스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낯선 도시 낯선 대중들 앞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정말 긴장되고 부담스러웠거든요.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어요. 동양인이 영국의 보수적인 회사를 대표해 무대에 올라설 수 있는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라 판단했거든요. 큰 용기가 필요했었고 이 일에 다시 한번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되었어요.

10 맥라렌이 그리는 2050년 미래의 F1 비전 ‘MCLE’. 2019년에 선보였다.


현재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요?

회사 보안상 자세한 내용을 언급할 순 없지만 맥라렌의 향후 비지니스에 큰 변화를 줄 프로젝트로 2~3년 내 공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년 그룹 내 CEO가 바뀌면서 회사에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었는데요. 앞으로 맥라렌이 시도하는 새로운 혁신적 프로젝트들을 선보일 시간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향후 10년 내 어떤 일들을 이루고 싶나요?

본업과 별개로 디자인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듯이 그런 디자인의 가치를 세상에 좀 더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김희성(alice@noblesse.com)

디자인 오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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