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미술품 경매사가 상자 속에 갇힌 사연은?

조회수 2020. 4. 3. 10: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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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시점, 미술품 경매장 풍경은 어떨까? 경매사는 투명한 상자 안에 갇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바이러스로 발이 묶인 컬렉터들을 위해 국내 경매에서 보기 드문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출품했다.

3월 경매가 끝났다. 1년에 6번 열리는 대규모 경매 중 하나로, 낙찰률은 67%, 낙찰총액은 5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월 경매 이후 코로나19가 확산돼 전세계 문화예술계 지형도가 급격하게 변화하며 미술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3월의 아트바젤 홍콩과 5월 프리즈뉴욕의 개최가 취소되고 6월로 예정된 스위스 아트바젤도 9월로 연기되는 등 상반기 세계적 아트페어와 비엔날레가 줄줄이 연기 및 취소되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같은 해외 대형 경매사들도 5월 중하순까지 모든 경매(온라인 경매는 진행)를 멈추었고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이 안전을 이유로 문을 닫았으며 영국 테이트 미술관도 5월 1일까지 휴관이다. 국내의 대부분 국공립, 사립미술관과 갤러리도 장기 휴관에 들어가는 등 미술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현장 예술행사 2500여건이 취소, 연기되며 문화예술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예상(추산) 피해액은 500억원 가까이 된다.

그러나 '궁여지책 속에 묘책'이라고, 미술계는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을 활성화하며 발빠르게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2월에 열린 화랑미술제는 온라인전시를 열어 많은 관람객에게 작품을 선보였고,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로 성장한 아트바젤 홍콩은 전염병 확산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갤러리들을 지원하고자 온라인 플랫폼 ‘뷰잉룸(Viewing Room)’을 열었다. 개막 첫 날은 접속자가 몰려 25분이나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으며, 5일간 온라인 방문객은 25만명에 달했다. 또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신속하게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VR(가상현실)을 통해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경매회사 또한 프리뷰 기간 중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강화하고 SNS 채널을 통한 홍보에 힘을 실었다. 또, 경매현장에 오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응찰 할 수 있는 온라인 실시간 응찰이 도입되었고, 경매 단상에는 비말전파를 막기 위한 아크릴 구조물이 설치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펼쳐져 지기도 했다.

이렇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동시에 발이 묶인 애호가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3월 경매에는 그 동안 국내에서 자주 접할 수 없던 라킵 쇼, 샤를 카무앙, 데니스 드 라 루, 루이스 롤러, 장 마리 해슬리 등 해외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소개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케이옥션 3월 경매에서 가장 치열한 경합을 유도했던 작품은 바로 샤를 카무앙의 작품 ‘Opened Window in a Dining Room in Saint-Tropez No. 3’로 1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4000만원에 낙찰돼 400%의 경합률을 기록했다.

샤를 카무앙
Opened Window in a Dining Room in Saint-Tropez No. 3
oil on canvas
73×54cm, 28.7×21.3inch
1962
signed on the lower right
1000만원 시작
4000만원 낙찰

1879년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샤를 카무앙은 파리의 에콜 드 보자르에서 귀스타브 모로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하며 앙리 마티스, 장 퓌, 알베르 마르케와 교류한다. 1905년, 그는 마티스, 앙리 망갱과 함께 살롱 도톤느에 여름 풍경그림을 선보이며 포비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풍경 화가로 알려지게 되게 된다. 경매에 출품된 'Opened Window in a Dining Room in Saint-Tropez No. 3’은 밝은 색채와 물결처럼 흐르는 활달한 붓터치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파스텔로 그린 것 같은 화사한 느낌과 가벼운 붓 자국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가 되는 생 트로페(Saint-Tropez)는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로 카무앙은 이 곳에서 폴 세잔, 클로드 모네를 만났다. 평생 친구인 마르케와 함께 그림을 그린 낭만적인 풍경을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라킵 쇼 Raqib Shaw b.1974 Indian
Fall of the Jade Kingdom II - Paradise Lost II (비취 왕국의 몰락 II - 실낙원 II)
oil, acrylic, glitter, enamel and rhinestones on birchwood
91.5×152.4cm, 2014
1억원 시작
1억8000만원 낙찰

경합이 치열했던 또 다른 작품은 라킵 쇼의 'Fall of the Jade Kingdom II - Paradise Lost II'(비취 왕국의 몰락 II - 실낙원 II)이다. 이 작품에는 산산조각나 무너져 내리는 건축물과 바닥 위에 서로를 난자하는 미지의 생명체들의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인간 내면에 내재한 폭력성과 풍자와 이오니아 기둥을 연상시키는 건축물의 이국적인 정취, 반인반마의 기이한 동물들이 주는 신비함 등 라킵 쇼 작품의 전형적인 모티프와 주제 의식들이 명료하게 나타난다. 금으로 그린 윤곽선, 에나멜 물감의 쨍한 색감, 촘촘한 크리스털과 비즈가 무척 이국적인 작품이다. 추정가 1억원에서 6억원에 출품되어 경매에 오른 이 작품은 국내 응찰자뿐 아니라 해외 전화 응찰까지 가세하여 1억8000만원에 응찰한 손님 손에 돌아갔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은 경매였다. 그러나 실제 작품을 보지 않고 진행되는 온라인 관람과 경매에는 한계가 있다. 온라인은 작품을 눈에 익히는 사전관람이나 관심유도용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에디터 김희성(alice@noblesse.com)

디자인 장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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