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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이런 곳이? 아지트처럼 숨어 있는 부르델 미술관

조회수 2020. 2. 18. 10: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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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부르델의 숨결이 살아 있는 몽파르나스의 숨은 보석, 부르델 미술관.

낯선 도시에서 목적 없이 일 년을 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상에서 탈락되어 부유하는 시간 속엔 긴장과 환희, 자유로움과 헛된 쓸쓸함이 공존한다. 젊음의 끄트머리에서 보낸 파리에서의 일 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무한함 속에 나를 던져 넣는 경험이었고, 그 때 빈번히 찾았던 공간들의 기억은 이따금 지루한 오후마다 작은 활력을 불어넣어주곤 한다. 가장 뜨거웠던 예술의 시절을 겪어낸 도시를 산뜻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할 때면 자주 부르델 미술관으로 발길이 닿곤 했다.

몽파르나스 조용한 골목에 자리잡은 부르델 미술관.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의 작품들과 그가 생전에 작업했던 아틀리에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청동 조각, 석고 원형, 대리석 조각 등 500여 점에 이르는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분홍 장미가 만발한 정원에 세워진 거대한 청동 기마상의 낯선 느낌이 가져오는 첫 번째 감각. 그리고 벽돌을 쌓아 만든 아치형 회랑은 고대를 꿈꾸었던 진정한 부르델의 공간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1861년 프랑스 남부 몽토방에서 태어난 부르델은 모두가 고전과 결별해가던 시절에 그는 거꾸로 그리스, 로마 고대 조각의 미감과 양식으로 복귀하면서 신화적 영웅에 심취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사도라 던컨, 니진스키의 무용에서 구상한 샹젤리제 극장 벽의 장식 부조를 제작했던 20세기적 인간이기도 했다. 그의 조각들에서 극적인 규모가 눈에 띄는 건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에 바탕을 둔 형태의 단순화를 통해 조각 자체가 독립적인 건축으로 세워지길 바랬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자연의 사실적 재현을 넘어서서 “조각이란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단언함으로써 조각이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종합적인 기념비 조각의 기틀을 마련한 조각가.

부르델은 1908년 무렵까지 15년간 로댕의 조수로 일했는데, 그 시간은 스승으로부터의 영향뿐 아니라 동시에 로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다. 로댕이 고전적 양식의 부정 위에 사실주의를 확립했다면 부르델은 고전적 양식 속에서 넘칠 듯한 격렬한 생명력의 표현을 풍부하게 구축한 것이다. 미술관 입구를 지나 오른쪽의 거대한 홀 안에 세워진 아폴론, 헤라클레스, 알베아르 장군상의 웅장한 어우러짐은 마치 부르델에 의해 되살아난 현대 신전처럼 보였다. 확고한 골조, 균형잡힌 양감, 단순화된 면으로 정열과 역동감을 응축시킨 부르델은 그 유명한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를 통해 로댕으로부터 “부르델이 나에게서 떠나간다”는 원망 섞인 이야기마저 듣게 된다. 헤라클레스가 온몸으로 풍기던 팽팽한 긴장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굳게 닫힌 오래된 문을 밀어 부르델의 아틀리에로 들어선다. 그러자 순간 부르델이 머물던 시간의 온기가 나를 감싸는 듯 오감은 바로 거기에 멈추어 섰다. 1929년 부르델이 사망한 이후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이 아뜰리에에는 그가 사용하던 이젤, 찰흙을 반죽하던 작업대와 낡은 의자 등 대가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놓여 있다. 어둑한 작업실 창 너머로 정원에 세워놓은 몇 점의 청동 조각이 어슴프레 보인다. 특유의 무게감, 장식이 아닌 거칠고 투박한 느낌의 덩어리로서의 조각을 추구했던 그는 브랑쿠시, 자코메티, 헨리 무어와 같은 현대 조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높은 유리 천장으로 뻗어 들어오던 북향의 빛은 낡은 나무 좌대 위의 두상과 조각들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어둑한 조도 아래, 채 완성시키지 못하고 금방 문을 나서버린 조각가의 손길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듯 했다. 아득한 고대를 꿈꾼 인간이 대리석과 흙, 청동을 만지며 무거운 시간을 천천히 밀어낸 아틀리에. 그곳은 고요와 사색, 노동이 응축된 정신성의 공간이었다.

나뭇잎과 태양빛, 그의 커다란 청동 조각이 충돌하며 반짝이는 정원에 한참을 머물며, 파리의 고요를 감각한다. 각자 스스로에게 몰두했으나 같은 형상을 되새기던 몇몇의 아름다운 사람들 사이에서. 넘쳐나는 파리의 익숙한 이미지는 도리어 이 도시의 깊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지 모른다. 파리의 어느 골목에선가 아무런 언어도 무용해지는 순간을 마주치기 위해서는 더욱 섬세하게 걷고 보며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는 것들은 우리와 파리 사이, 멀고도 가까운 곳에 고요히 숨 쉬고 있으므로.

 


같이 둘러보세요

구스타브 모로 미술관(Musée Gustave Moreau)

19세기 또 한 명의 비밀스러운 예술가 구스타브 모로 역시 부르델처럼 자신이 작업하던 저택을 미술관으로 남겼다. 그가 평생 그린 유화와 데생, 드로잉 수천 점으로 가득차 있는 이곳은 붉게 장식된 거실과 다이닝 룸, 화려한 침실과 서재, 그리고 2층의 스튜디오로 오르는 나선형의 계단이 마치 파리의 탐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난 보이지 않는 것과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고 했던 모로의 그림은 브루델의 신화와는 다른 데카당스한 낭만성을 전해 준다.

ADD 14 Rue de la Rochefoucauld, 75009 Paris

자드킨 미술관(Musée Zadkine)

뤽상부르그 공원 남쪽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는 자드킨 미술관은 조각가 오십 자드킨이 러시아와 런던을 거쳐 파리에서 살기 시작할 무렵부터 살았던 집이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10대 때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조각 행위를 시작했으며 모딜리아니, 브랑쿠시, 브르제스카 등과 교류하며 20세기 초반 파리에서의 예술 인생을 살아낸다. 부르델과는 동시대에 살았지만 고대로 회귀한 그와 달리 자드킨은 큐비즘을 조각으로 표현하는데 생을 바쳤다. 20세기 조각의 두 축인 부르델과 자드킨의 조각을 함께 살펴보는 것도 드라마틱한 경험이 될 것이다.

ADD 100bis Rue d'Assas, 75006 Paris

에디터 이다영(yida@noblesse.com)

글 박선영(미술 칼럼니스트) 사진 박선영, Soizic Minute, Christian de Portzamp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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