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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코아줌마’부터 ‘황우석’, 그리고 ‘검찰개혁’까지 30년 PD수첩

한학수 MBC PD수첩 앵커를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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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PD수첩’이

30돌을 맞았습니다.

짝짝짝

MBC PD수첩은

1990년 5월8일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편으로

시작했는데요.


지난 6월9일

30주년 특집

‘일하는 국회를 바란다’까지

총 1245회를 방송했죠.

6월9일 방영된 ‘금배지의 자격’ 편

출처PD수첩 갈무리

PD수첩은


‘불패신화, 무노조 삼성(2003년)’부터

‘황우석 난자의혹과 줄기세포의 진실(2005)’

‘한국의 권부 4부작(2003)’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2010)’

‘검찰과 스폰서(2010)’까지


한국사회의

가장 민감하고 굳은 권력을

파고들었는데요.


방송 이후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했죠.


이러한 전례 없는 보도는

‘PD저널리즘’이란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한학수 PD수첩 PD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한학수 PD는 지난 2018년 1월부터

프로그램 얼굴을 맡고 있죠.


그는 PD수첩의 현재를 말하며

“그 어느 때보다

전쟁하듯 방송하고 있다”

토로했습니다.

한학수 PD.

출처MBC
질문_PD수첩 30주년을 맞는 소회가 어떤가?

복귀하며 심적 부담이 컸다. 2008년부터 정부의 언론탄압이 시작됐다. 그 상징이 PD수첩 압박이었다.


제작진 상당수가 귀양살이를 했다. PD들은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떠나거나(한학수 PD) 광화문 신사업개발센터(이우환‧이영백‧한학수 PD 등)로 좌천되는 등 어떻게든 제작 일선에서 배제됐다.


메인작가를 비롯한 작가들은 해고돼 아픔이 컸다. 그렇게 9년을 지냈다. 그 뒤 2018년 돌아왔을 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히 컸다. 우리 딴엔 2년 반을 전쟁하듯이 열심히 했다. PD수첩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는 게 첫 소회다.

더 크게는 2005년 황우석 사태 보도 당시를 떠올린다. 프로그램이 잠정 폐지되고, MBC 자체가 휘청였다. 15년 전 PD수첩 중반기에서 가장 큰 사태의 중심에 섰기에 소회가 남다르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30년이 지났다는 건 한 시대를 지나왔다는 뜻이다. 초등학생일 적 PD수첩을 보던 사람이 40대가 됐다. 한국사회가 역동하는 흐름에 우리 프로그램이 투영됐다고 생각하면 뜻깊다.

2012년 MBC파업 당시 명동 거리에서의 퍼포먼스 모습.

출처미디어오늘
PD가 처음 나선 90년대, ‘거악’과 다툰 2000년대
언론탄압 암흑기 뒤 ‘폭로 넘어 완숙’ 추구
질문_2010년 20주년엔 인터뷰집을 냈는데, ‘PD수첩이 여러 굽이를 돌아오는 동안 색깔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지금은 또 어떻게 다른가?

PD수첩 색깔은 4개 시기로 나뉜다. 나는 1990~2000년을 ‘1기’로 본다. 키워드는 ‘최초의 폭로자들’이다. 이전엔 뉴스 리포트로 1분, 길어도 5분 보도하던 데서 처음 1시간물로 탐사보도를 했다. 조금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투박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소개하는 모습도 처음이었다.


첫 화인 ‘피코아줌마 열받았다’(다국적 안테나 제조기업 피코에서 일하던 한국인 여성 노동자들의 무단해고와 체불임금 투쟁을 그렸다)는 한국피코 노동조합원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을 미국 현지로 나가 취재했다. 만약 뉴스 꼭지로 다뤘다면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하나의 사실을 보도하고 그쳤을 거다.


첫 화는 왜 그 사람들이 미국에 갔을까, 왜 기업주는 이런 일을 벌였나, 이런 일이 이 기업에서만 벌어지는 일인지,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뭔지를 20~30분 꼭지로 다뤘다. PD 집단이 깊게 취재한 폭로 보도라는 면에서 ‘최초의 폭로자’라고 할 수 있다. 종교 문제, 매 맞는 아내 등 여성인권 문제, 투기와 도박처럼 한국사회 내 전근대적 문제를 주로 다뤘다. 군부독재에서 민주정부로 넘어가는 1990년대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MBC PD수첩이 1990년 5월8일 첫 방영한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편.

2000년~2010년은 ‘강해진 PD수첩’이라고 부르고 싶다. 신효순‧심미선 학생들의 희생을 계기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문제를 제기했다. 최초의 촛불시위에 불을 댕겼다.


2002년 ‘한국의 권부 4부작’은 청와대와 국정원, 국회, 검찰이란 4대 권력을 다뤘다. 2005년엔 황우석 사태를 보도했다. ‘맷집’이 크지 않으면 소화할 수 없는 주제들이다. 사회 구조 문제와 다퉜던 시기다.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도 마찬가지다.


2010년 무렵부터는 긴 암흑과 탄압의 터널이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수입 문제를 다루면서 제작진이 체포되고, 국‧부장이 교체되고 작가가 해고되면서 8~9년이 흘렀다.


2018년 1월부터가 복원기다. 무엇을 어떻게 되살려야 하는지 고민이 컸다. 1~3기를 지나 탐사보도의 완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폭로를 넘어선 저널리즘을 지향한다.

2010년 4월 방영된 ‘검사와 스폰서’ 편.

질문_복귀 이래 2년 반째 진행을 맡고 있다. 팀에서 역할은?

파업을 마무리한 뒤 강지웅‧박건식‧유해진‧조준묵 등 PD가 돌아왔다. 그중에 진행자로 뽑혀서 하게 됐다. 1년쯤 하고서 취재 일선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웃음)


PD와 메인작가가 진행 대본 초안을 주면 어떤 점을 강조해야겠다, 입말에 더 맞겠다, 구성과 흐름상 어떤 표현이 더 매끄럽겠다는 의견을 내고 수정안을 제출한다. PD와 작가가 최종본을 완성한다.


또 스튜디오 진행을 하려면 취재 내용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회마다 연출 PD와 상의한다. 스튜디오 진행과 더불어 들어온 제보 내용을 보고 PD와 연결하거나 제안한다. 결정은 물론 PD와 부장이 한다.

6월9일 방영된 ‘금배지의 자격’ 편

질문_PD수첩 역사에서 가장 민감했던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잠시 생각한 뒤) 황우석 사태 보도를 꼽아야겠다. 이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다룬 편, 검사와 스폰서 편,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이다.


다만 PD수첩은 ‘거악’과 다투는 아이템만 소화하지 않는다. 작은 권력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그러나 사회 전체에 퍼진 문제도 충분히 다룬다.


예컨대 일반인이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사건을 어떻게 민감하지 않거나 작은 문제라 치부할 수 있나. 중규모 교회에서 일어나는 신도들에 대한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 성폭력 사건 역시 종교 내에서 상당히 문제적 현상이기에 짚고 넘어가야 했다.

2005년 말 PD수첩은 ‘인간 배이줄기세포를 확립했다’고 발표한 황우석 교수가 난자를 매매하거나 연구원 난자를 사용하고, 없는 줄기세포를 있는 것처럼 논문 조작한 사실을 밝혔다.

질문_만약 지금 황우석 사태 보도가 나왔다면?

황우석 사태는 노무현 정부가 키웠던, 과학정책 담당자들과 연계된 사태이기도 하다. 대통령 지지자들로서 보도에 허탈하고, 화도 났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본뜻, 그분 정신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충격을 벗어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역시 이 보도가 맞았다’고 할 것이다.


나도 같은 결정을 했을 거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일 중에서 잘못이 있다면 숨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탐사보도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기성 권력과는 항상 각을 세우고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편 무조건 반대로 간다던지, 작은 잘못을 본질인 것처럼 과장하는 보도는 오히려 정파적이다. 잘못한 부분만큼 비판하고, 밝혀낸 만큼 보도하고 규명되지 않은 부분은 의혹으로 남겨놓아야 한다.

2005년 12월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조작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연합뉴스
질문_‘PD수첩’ 계기로 한국사회에 PD저널리즘이란 말이 생겼다. 현재 PD수첩의 저널리즘은 무엇을 뜻하나?

한때 PD저널리즘이란 말이 유행했다. 2000~2007년 사이로, PD수첩으로선 2기에 든다. 구조적 권력, 거악과 싸운 시기다. 사람들은 황우석 사태, 검사와 스폰서 등을 보면서 ‘야, PD저널리즘 세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게 부담스럽다. 어떤 가치를 뜻하는 단어 앞에 뭐가 붙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형 민주주의, 미국형 민주주의랄 것 없이 민주주의 본령은 하나다.


마찬가지로 저널리즘 본령에 충실한 보도가 있고 그렇지 않은 보도가 있을 뿐이다. 누가 하는지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우린 KBS나 SBS, JTBC 등 방송사 보도국은 물론 조선일보 편집국도 경쟁자로 여긴다. PD저널리즘은 2000년대 초반 PD 집단이 처음으로 사회 구조‧본질에 문제 제기하는 한 시대의 보도 경향을 가리키는 용어다. 지금은 구태의연하다.

황우석 보도,
지금 해도
올바른 지지자는 이해할 것

PD저널리즘은 없다…
진영논리는 ‘무시’해야
질문_새 팀이 출범한 뒤 가장 인상적 프로그램은?

제작진이 전쟁하듯 PD수첩을 만들었다는 의미는 그만큼 부패한 거대 권력이 많았다는 뜻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별장 성접대부터 시작해 검찰 개혁 스토리를 이어왔다. 실명도 공개했다. 조계종 2부작과 이어진 대형교회 3부작은 거대 종교이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말하지 못한 부분을 보도했다.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부인 고 이미선씨를 둘러싼 사건을 다룬 ‘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 편, 고 장자연씨와 조선일보를 다룬 편 등에서는 언론과 연예 권력을 다뤘다.


‘CJ와 가짜 오디션’과 김기덕 영화감독의 실체를 밝히는 ‘미투’까지, 공고한 권력 구조에 대응하며 숨 가빴다.

지난해 3월 방영된 ‘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 편.

질문_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PD수첩도 사람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취재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팩트체크팀이 제작진을 견제하고, 부장이 데스킹해도 실수는 나온다.


MBC도 올해 초 부동산 3부작 끝 무렵에 분명한 실수를 했다. 바로 정정 보도자료를 냈고, 이어지는 방송에서 시청자들께 사과했다. 제작진도 징계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잘못한 부분을 잡아내 시청자에게 공개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절차다. 이 정도면 모범을 보여준 것 아닐까.


이제는 어디서든 재야의 고수, 집단지성이 넘쳐난다. 30년을 맞은 PD수첩이 더 성숙해지려면 우리의 길을 가되 더 겸손해야 한다. ‘겸손’이 저널리스트로서 ‘쿨’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PD수첩 제작진. 맨 왼쪽 아래가 한학수 PD.

출처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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