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쿠데타가 '기적의 리더십' 이라구요?
1961년 5월16일 당시 소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부 육군 장교들이 함께 일으킨
군사 쿠데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당시 소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아
무려 18년간 장기집권 했는데요.
벌써 5·16 군사정변이 발생한지
58년이 지났습니다.
오늘(5월16일) 아침신문 중에서
‘5·16 군사정변’을 다룬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는데요.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58년 전 오늘이 없었어도
지금의 우리가 있을까”
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군사 혁명’이라고 치켜세웠죠.
칼럼 부제에는
“5·16은 이승만 건국과 함께
오늘의 한국 출발한 날”,
“기적의 리더십 없었다면
지금 잘돼도 태국 정도일 것”,
“역사를 있는 대로 인정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라고 적으며
5·16 군사정변을
찬양하는 듯한 인상을 줬는데요.
요즘 말로 5·16 군사정변에
‘엄지 척’을 날린 셈이죠.
양 주필은 칼럼을 통해
“오늘로 5·16 군사혁명 58년이다.
이날은 이승만의 건국과 함께
오늘의 한국이 시작된 출발점이다.
박정희 매도가 유행이지만
엄연한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세계 최빈국이던 우리가
미국 대통령이 ‘가장 부자인 나라’로
지목하게 됐다”고 설명했죠.
또한 양 주필은
“기적의 리더십이
흙집 국가였던 1875년부터
일제강점기이던 1936년까지
연이어 태동했다.
이승만 1875년, 구인회 1907년,
이병철 1910년, 정주영 1915년,
박정희 1917년, 최종현 1929년,
김우중이 1936년에 태어났다.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물들이
50~60년 동안에 한꺼번에 태어나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며
재벌 1세와 이승만·박정희 등장을 강조했죠.
이어서 양 주필은
“이승만의 자유민주 건국과 농지개혁,
국민교육 제도 확립,
한미 동맹 쟁취의 바탕 위에서
박정희가 외자 도입, 수출 입국,
전자·중화학 육성,
농촌 혁명 전략을 밀어붙였다.
수천년 농업 노예(노비) 국가를
근대 공업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기치였다”고
평가했죠.
그는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일부에서 우리 역사를 그대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의 성취를 폄훼하는 것은
자부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을 인용해
“한마디도 버릴 것이 없다.
그 실천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치졸한 박정희 욕보이기, 지우기부터
그만뒀으면 한다”고 끝맺었죠.
칼럼을 요약하면
‘다시는 박정희를 무시하지 마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 성장’이라는
박정희의 업적만 철저하게 강조했죠.
양 주필은
박정희에 대한 칭송과 비장함으로
조선일보 지면을 채웠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다른 평가는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는데요.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은
“박정희 시대 독재는 ‘긴급조치’로 대변된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 제53조항으로,
대통령이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시 정지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반하는
정치적 소신을 밝힌다는 이유로
대학생과 지식인들을 탄압했다”고
‘박정희 시대’를 설명했죠.
이어서 문 실장은
“더 나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날조된 반국가단체 조직 활동으로 엮어
재판하고 사형하는 등
‘사법 살인’이 횡행했다”며
“‘인혁당 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막걸리에 취한 김에
대통령 욕을 했다고 붙잡혀 가던
엄혹한 시절이다.
‘없으면 나라님 욕도 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독재와 국가 폭력이 빠진 체
박정희 전 대통령를 평가하는 건
반쪽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요.
과거에 대한 반성없이
일방적인 찬양과
‘엄지척’만 날리는 모습이
대중들의 지지를 얼마나 받을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