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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없는 송중기 연대기

조회수 2019. 6. 7.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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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스에이드 김풀잎
출처: 그래픽=계우주 기자

[스타검증]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출중한 외모와 그에 걸맞은 연기력으로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배우’ 송중기가 그 주인공이다. 

출처: 그래픽=계우주 기자

송중기는 데뷔하자마자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초반부터 ‘성균관대 얼짱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크고 작은 작품을 통해 얼굴을 알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톱배우 반열에 올랐다. 

슈퍼스타 송혜교와 결혼도 했고, 데뷔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쯤해서 준비해봤다. 요즘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한 꿈을 꾸고 있다는, 송중기의 연대기다. 

출처: 뉴스에이드 DB

송중기의 이력은 특별하다. 배우가 시작점은 아니지만, 모든 귀착점은 배우였다. 

잘 알려져 있듯, 송중기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했다. 대전광역시 대표 선수로 전국체육대회에도 3차례 출전했으나, 중학교 2학년 때 발목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전념했다. 쇼트트랙에서 익힌 승부욕과 오기를 가지고 임했더니, 성적도 금방 올랐다는 것. 재수까지 불사한 결과,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송중기는, 인생의 갈피를 잡았다고 한다. 그동안 목표를 바라보며 열심히만 달려왔다면, 이때부터는 스스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송에 뜻이 있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그렇게 그는 연기학원에 등록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공교롭게도, 송중기가 얼굴을 알린 작품은 ‘트리플’. 쇼트트랙 선수 역할이었다.

출처: 그래픽=계우주 기자

무엇보다 송중기는 안방극장이 기다려온 신예였다. 데뷔 1년만인 2009년 SBS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산부인과’ MBC ‘트리플’ 등에 꽤 굵직한 조연으로 출연했다. 훌륭한 외모와 패기 넘치는 연기력의 도움으로 적은 분량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주목을 받았다. 

라이징 스타는 무섭게 떠올랐다. 2010년 KBS2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라섰다. 극중 자유로운 영혼의 부잣집 도령 역을 연기하며, 제 몸에 꼭 맞는 듯한 싱크로율을 선보였다. 송중기라는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것이다. 

2011년 SBS ‘뿌리깊은 나무’로는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이전까지는 청춘스타로 대변됐다면, 여기서부터는 ‘배우’ 수식어를 얻게 됐다. 청년 세종 역할을 맡으며, 폭이 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한 것이다. 이미 톱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송중기는, 주연이 아닌 아역을 선택함으로써 대중의 인식도 바꿔 놓을 수 있었다. 

마침내 ‘태양의 후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송중기 효과는, 군 전역 후에도 유효했다. 그리고 내공은 폭발했다. 마초적이면서도 소년스러움이 섞인 군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기승전 송중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출처: 뉴스에이드 DB

‘태양의 후예’는 최고 시청률 38.8%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종영했다. 송중기는 상대역인 송혜교와 결혼에까지 골인하며 진정한 황금기를 누렸다. 

출처: 그래픽=계우주 기자

그에게 ‘쌍화점’은 의미가 깊다. 연예계 정식 데뷔작이기 때문. 이 영화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의 행보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는 충분했다. 이때 함께 출연했던 조인성, 임주환, 김기방 등과는 그 후에도 인연을 이어갔다. 

티켓 파워는 ‘늑대소년’부터다. 송중기는 타이틀 롤인 늑대소년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대사도 없이 오직 행동으로만 연기해야 했다. 그야말로 연기의 기본을 다졌다. ‘늑대소년’은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뿐만 아니다. 깊은 여운으로 인해 재관람 열풍이 불기도 했다. 

‘군함도’를 빼놓을 수 없다. ‘태양의 후예’를 성공시킨 송중기는 다시 한 번 군복을 입었다. 군함도에 비밀 잠입한 광복군 역으로 분했다. 초반부터 기세는 엄청났다. 개봉 전 사전 예매량 60만, 오프닝 스코어 97만명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송중기에게도, 꽃길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군함도’는 개봉 전부터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있었다. 영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에도 휩싸였다. 결국 659만 관객을 동원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손익분기점인 800만도 넘지 못한 결과였다. 

출처: 그래픽=계우주 기자
출처: 그래픽=계우주 기자

송중기는 상복도 대단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2010년 ‘SBS 연예대상’ 예능 뉴스타상이 시작이었다. 같은 해 ‘KBS 연기대상’에서는 ‘인기상’과 ‘베스트커플상’(with 유아인)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프로듀서상’ ‘남자 최우수상’ ‘네티즌상’ ‘베스트커플상’(with 문채원) ‘TV부문 남자 인기상’ ‘글로벌 스타상’ ‘아시아 최고 커플상’(with 송혜교), 영예의 ‘대상’ 등 각종 상을 쓸어 담았다. 

출처: 뉴스에이드 DB

2016년에는 송혜교와 함께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2017년의 경우, 태국 최대 규모 시상식인 ‘태국헤드라인뉴스 연도풍운인물’에서 최고 영향력상을 거머쥐었다. 국내를 넘어, 한류스타로 거듭난 그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출처: 그래픽=계우주 기자

성공의 지표로도 불리는 ‘광고’. 예상했다시피 셀 수도 없다. 데뷔년도인 2008년부터 도넛 CF를 따냈다. 

남성 정장에서 의류, 주류, 라면, 피자, 커피, 게임기, 노트북, 카메라, 제약, 가방, 휴대폰, 아웃도어, 소셜 커머스, 저비용 항공사, 면세점, 화장품, 정수기, 공익광고까지. 장르에도 한계가 없었다. 

출처: 뉴스에이드 DB

한국뿐이 아니었다. 2016년, 한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는 송중기가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제의받은 광고 개수가 무려 100개라고 밝혔다. 건실하고 깨끗한 송중기의 이미지 덕분이었다.

출처: 뉴스에이드 DB

광고 외, 출연료도 ‘억’소리 난다. 과거, 영화 ‘마음이2’ 개봉 당시 송중기는 ‘개(마음이)보다 출연료를 적게 받은 배우’로 유명했다.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 예능프로그램에 의하면,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 당시 회당 6,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군함도’의 경우, 총 제작비가 267억원 정도. 현재 출연 중인 ‘아스달 연대기’는 회당 출연료 1억원을 넘겼을 것이라는 연예 관계자의 전언이다. 

송혜교와의 결혼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의 결혼은, 중소기업 합병 수준이라는 것. 알려진 부동산 규모만 350억원에 육박했다. 출연료까지 합치면 500억원 이상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출처: 블러썸엔터테인먼트

송중기 연대기는 여기까지다. 어쩌면, 이제 시작이다. 그는 또 어떤 ‘세상 어디에도 없을’ 대기록을 써내려 갈까. 그의 발걸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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