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제발 앨범 좀 내달라 애원하는 가수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베이퍼웨어(Vaporware)라는 용어가 있다. 나올 것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실제로 출시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취소되지도 않은, 마치 수증기(vapor)처럼 실체가 불분명한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원래 IT 업계에서 쓰이던 말이었지만 문화계 전반에 걸쳐서 사용해도 무방한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티스트가 활동을 중단하지도, 은퇴하지도 않았지만 오랜 기간의 공백기를 가지면서 팬들의 애를 태우는 건 2018년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이번 주 '베이퍼웨어 믹스테잎'에서는 2년이 넘도록 앨범을 내지 않고 있는 국내 아티스트를 짚어본다. 덧붙이자면, 모든 활동은 한국 기준이다.
2016년 이하이가 '누군가의 한숨 / 그 무거운 숨을 / 내가 어떻게 /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라고 노래했던 건 사실 기약이 없는 컴백에 대한 자신의 처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2012년 <K팝 스타> 준우승자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할 때만 해도, 이하이가 현재 가요계에서 '공백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으로 자리 잡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사실 YG라는 회사 자체가 소속 가수에 대한 공백기 및 방치로 악명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작년과 올해 들어 WINNER, iKON 등 그동안 소식이 없었던 아티스트들의 컴백이 슬슬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하이는 여전히 소식이 없다. 지난 [SEOULITE] 활동 당시 공백기에 대해 "그래도 3년은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다. 2년 정도면 좋았을 것 같다"라고 말했던 이하이에게 또다시 3년의 공백기가 다가오고 있는 건 조금 너무한 처사가 아닐까.
2016년 11월 10일, [그녀풍의 9집]이 스트리밍 사이트에 일제히 공개되었을 때 '오, 이번 앨범은 의외로 빨리 나왔네?'라는 생각을 했다. [눈썹달]과 [7] 사이가 4년, [7]과 [8] 사이가 6년이 걸렸으니까 2년 만에 나온 9집은 그간의 텀을 생각해 보면 이례적으로 빨리 나온 셈이었다...는 페이크였고, 앨범에는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단 한 곡만 들어 있었다. '그녀풍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게 이것 때문이었나, 하는 허탈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한 곡이 나온 지도 벌써 2년 가까이가 지났다. 음악 예능 <비긴어게인>에서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고, 김동률의 미니앨범 [답장]에서 듀엣곡 "사랑한다 말해도"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참고로 이 앨범도 3년이 넘는 공백기 끝에 나왔다), 여전히 [그녀풍의 9집]의 풀 버전을 만나는 건 요원해 보인다. 설마 공백기 6년을 또 갱신하는 건 아닐까... 아니길 빈다.
사실 윤상을 이 목록에 넣는 것은 그에게 있어선 조금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정규작 [그땐 몰랐던 일들]로부터 싱글을 세 장이나 냈고, 작곡가로서 아이유, 레인보우 블랙,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등에 곡을 제공했으며, 러블리즈의 핵심 프로듀서로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는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의 예술단장 및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으니, 그가 음악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윤상의 7집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9년 2개월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어느 정도 알려진 메인스트림 뮤지션 중 이 정도로 앨범과 앨범 사이의 공백이 긴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다. 물론 대중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완벽주의자인 만큼, 이 정도의 기다림은 윤상이 어떤 뮤지션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긴 텀이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부분이 때론 난 슬프다. 선행 싱글 "그게 난 슬프다"도 나온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