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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진의 북스타그램

오상진,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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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오상진의 또 다른 이름


'책방 알바' 오상진의 북스타그램

2017년 10월 25일

"나를 좀더 사랑하기"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었다. 평범한 일생을 소박하게 그려낸 글임 에도 그 솔직함에 큰 힘을 얻었다.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글로 남겨 기록한다는 것 역시 모든 이들 을 향해 고칠 수 없는 흉터를 보여주는 쉽지 않은 일이다. 


루시 바턴의 가장 큰 상처는 가난과 부모의 냉대였다. 그래서 소설의 전 반적인 내용은 밝음보다 어두움, 자신감보다는 움츠러듦으로 가득했다. 친척집 차고에서 신세질 수밖에 없었던 과거, 반대하는 결혼으로 인한 부모와의 의절 그리고 결혼생활의 상처까지. 그는 나직이 자신의 암울 했던 과거를 소환한다. 


투병중이던 루시, 어느 날 연락이 끊겼던 엄마가 병원으로 찾아온다. 말 없이 침대 옆에서 그녀의 곁을 지키는 엄마. 그들은 과거의 무겁던 기억들을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한다. 아주 오래된 애칭인 ‘위즐’. 그 마법의 단어로 그녀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거부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들조차 내 삶의 분명한 한 조각임을.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의 편린임을 깨닫는다. 투병을 통해 조금씩 그녀는 세상에 손을 내밀고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해간다.


묘한 위로였다. 미디어 종사자로서 남들 앞에서 당당하고 멋있는 척하 는 경우가 많은 나. 하지만 나 역시 흑역사투성이에 상처 많고 외롭고 힘없는 존재일 뿐이다. 냉대에 슬퍼하며 찬사에 기뻐하는, 일희일비하는 작은 존재.

 

하지만 그래, 내 이름은 오상진. 겉 포장지 안의 진짜 나를 더 사랑해야 겠다.

2017년 5월 24일

"그녀가 떠난다고 한다면"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읽었다. 장강명 작가의 연애 시절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소설이다. 주인공 계나가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며 소설은 시작된다. 문득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는 이방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쉽지 않겠지. 떠난 사람도 그리고 남겨질 이도. (이 소설의 재미의 90은 이 남자의 푸념에서 나옵니다.) 


아무튼. 소영이가 갑자기 한국 싫어, 떠나겠어, 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물론 우리의 일과 현재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겠지만.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만약 그래도 데굴데굴 구르며 이민 가자고 고집을 부린다면? 이 추위와 더위에 못 이겨 비염 없는 나라로 떠나겠다는 강한 의사를 밝힌다면? 한국에서야 일도 하며 지내지만, 다른 나라에서 내가 어떻게 가정을 부양할 수 있을까? 


그나마 지금처럼 결혼한 상태라면 같이 떠나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보겠다는 의지가 고개를 들겠지만, 만약 여자친구였을 때였다면 아마 곧 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스카이프나 페이스타임이 있어도, 그저 영상통화로 연결되어 있다는 정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함께먹고 함께 보고 함께 울고 함께 웃어야만 오롯한 연애, 사랑 아닐까. 어 떤 기술이 이런 유대감을 대체한단 말인가. 


소설의 주인공 계나. 워킹 홀리데이 기간 동안 다양하고도 화려한 남자 들과 염문을 뿌린 뒤 돌아온다. 그리고 소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던 남자친구와 재결합한다. 소영은 이 지점에서 계나가 자신이 못한 일을 해냈다며 나를 흘겨본다. 근데 말이죠,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닙니까?

 

아무튼, 미세먼지와 무더위 그리고 혹한이 소영이를 많이 괴롭히지 말 길. 우리 여기서 천수를 누립시다.

2017년 7월 6일

"좀 게으르면 어때"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학의 대가이자,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행복 10계명을 남긴 명문장가로 꼽힌다. 이외에도 철학, 역사, 수학을 넘나드는 20세기의 천재 지성인.

그의 글을 처음 만난 건 참고서에서였다. 당시 영어 참고서계를 주름잡았던 『맨투맨』이나 『성문 종합영어』엔 유독 그의 글이 많았다. 우리는 수도 없이 러셀이 남긴 글에 밑줄을 긁고, 단어장을 찾았으며, 문장 안에 있는 숙어를 외웠다. 하지만 우리는 글의 내용을 곱씹기보다는 이 문장들이 수동태인지 능동태인지, 목적어가 두 개인 4형식인지 아니면 목적격 보어가 있는 5형식인지를 구분해야 했다. 그래서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금 기억나는 것은 글 아래 달려 있던 그의 이름뿐, 무슨 의미였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서점에서 집어든 『게으름에 대한 찬양』. 노벨상도 받은 대단한 분이 게을러져도 된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가. 이건 마치 당당히 놀아도 된다는 면죄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집으로 모셔왔다.


하지만 그가 찬양한 게으름은 제 예측과 다른 거 있죠. 평범한 우리가 애정하는, 늘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사회를 바라보는, 시대를 앞서 나간 지성인의 부탁이었다. 이 책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아름다운 충언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그가 말했던 ‘게으름’은 뭘까요? ‘사탄은 언제나 게으른 손이 저지를 해악을 찾아낸다.’ 그는 글의 서두에 어릴 적 자주 들었던 이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근면 성실을 미덕으로 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끝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은 칭찬받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더하죠. 공부를 잘해야만 훌륭한 학생이고, 가정을 희생하며 일하는 사람을 존경 어린 시선으로 쳐다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교육받는다.

러셀은 이러한 것이야말로 허구의 신화라고 말한다. 계몽주의로부터 출발한 청교도적 근면 성실, 칼뱅주의의 소명의식을 통해 지속된 무의식적인 압박은 죽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것이며 옳다는 이상한 윤리의식을 고착화했다고 말한다.


러셀은 더 먼 곳을 바라본다. 이렇게 모두가 계속해서 달리면 자원과 함께 우리 인간도 고갈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고도 산업사회는 풍요로움을 안겨줌과 동시에 해결하기 힘든 모순점을 남겼다고 지적한다.


생산 수단들을 소유하고 통제했던 당시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챙기는 대신 그들의 재산을 불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는데 몰두했다. 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었으며, 자본가들에게 자유란 모든 규제의 철폐를 의미했다.


러셀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노동에 얽매여 숨쉴 틈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모든 인간에겐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여유를 통해서 우리는 영혼을 정비하고 치료할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이 결코 귀족처럼 살 수는 없지만, 인간에겐 숨 돌릴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여가를 즐겨야만 한다. ‘게으름을 찬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이외에도 이 책은 온기로 가득한 또다른 충언으로 빼곡하다. 이성만큼 감성도 중요하며,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고, 성평등을 어떻게 하면 이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걱정과 대안 제시로 이루어진 ‘잔소리’라고 쓰고, ‘책’이라 읽습니다. 놀랍게도 인류가 곤충과 지구 패권을 놓고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하는 ‘인간 대 곤충의 싸움’ 챕터도 있다.

결국 이런 문제까지 책으로 남기시다니, 게으름을 찬양한 매우 부지런한 저작이지요. 책장을 덮고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1900년대 초반에 러셀 옹이 걱정했던 문제들은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했거든요.

2017년 9월 14일

"폭력은 참 나쁘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고 있다. 500쪽 정도 지났 는데 아직 반도 못 읽었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제어해왔는지를 설명한다. 역사 속 재미난 일화들이 이야기처럼 쓰여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술 넘어간다. 


읽은 데까지 요약하면, 인간 사회에서 서로를 죽일 수 있는 무기의 능 력과 잠재적인 폭력의 가능성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빈도는 드라마틱하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뭐, 사실이지. 예전에는 아무 잘못도 없이 삼족을 멸하는 경우도 있었고,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는 일도 있었다. 일본의 무사들은 길에서 합법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으며, 조상의 잘못으로 인해 피의 복수를 당하는 일도 많았다.

 

폭력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스티븐 핑커 교수도 홉스가 말한  상호확증파괴전략은 원시적이라고 지적한다. 서로의 폭력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결코 장기적인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말이다. 모쪼록 지구의 평화를 빈다. 우리는 아직 신혼이고 아이도 없단 말이다.

 

그런데 이 책, 다시 말하지만 두께가 정말 폭력적이다.


2017년 9월 4일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카페 옆자리의 아가씨가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 앞에서 하염없이 운다.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연신 잘못했다는 말을 거듭한다. 남자는 물러섬이 없다. 나긋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둘 사이에 미래가 없음을 강조한다. 붙잡는 여자와 거절하는 남자.

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읽는다. 너무나도 절묘하게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오래된 연인. 8년 전 우연히 고시촌의 교회에서 만난 사이. 그 둘은 오랜 기간 연인으로 지내며 부부와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간다.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 속에 소외되는 자신이었다. 장수생으로 보낸 3년, 결국 고시에 실패한 자신과는 달리 도화는 혼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


두 달 전부터 헤어지자 마음먹었던 도화. 어렵게 말을 꺼내고 싶을 때마다 공교롭게도 계속 일이 생긴다. 결국 하게 된 이별의 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두려운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수. 가혹하고도 슬픈 소설이었다. 둘의 일상은 또 그렇게 이어지겠지.


카페의 남녀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북적해지자 자리를 뜬다. 둘 사이가 이어지기를 바라야 할까? 아니면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가기를 바라야 할까? 잘 모르긴 해도 남녀 사이에 이상적인 결론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내의 꽃꽂이 클래스가 끝날 때에 맞춰서.

1년차 새내기 남편 오상진

책방 알바 오상진


따로 또 같이

'그녀'와 함께한 1년 동안의 기록


360여 일의 일기 속에 담긴

그의 소소하지만 확실히 행복한 일상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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