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변호사가 박새로이를 변호한다면?

조회수 2020. 12. 1. 10: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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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박새로이를 변호합니다.

청년 박새로이를 변호합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글: 이은의 변호사 (원글 출처: 미스테리아 32호)

나는 하마터면 시청률이 빵빵하게 나온 <이태원 클라쓰>를 1, 2회 어디쯤에서 멈추고 보지 않을 뻔했다. 법으로 먹고살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억울한 상황이 반복되는 꼴을 답답해서 잘 못보는데, <이태원 클라쓰>도 그랬다. 


열아홉의 박새로이가 억울하게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몰려 속수무책으로 퇴학을 당하고, 박새로이의 아버지 역시 부당 해고를 당한다. 게다가 발상을 전환한 박새로이의 아버지가 요식업체 월급쟁이에서 포차 사장이 될 찰나에 뺑소니 사고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이 사건은 박새로이를 부당하게 퇴학당하게 만든 자들의 소행이다. 그나마 전개 속도가 빨라서 용케 답답함을 견디고 드라마를 봤는데, 새로이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고 찾아가 원 펀치 투 펀치 주먹을 날려주다가 종래에 돌로 내리치려는 순간 경찰에 의해 성공(?)하지 못하고 체포되는 지점에서 인내심의 한계치에 도달했다.

성격 급한 변호사의 눈에 그 직후 새로이에게 펼쳐진 일들이 너무 당혹스러워, 대체 이 드라마의 사필귀정이 뭔지 끝을 미리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Daum캐시를 마구 결제해가며 원작 웹툰을 하루 만에 죄다 섭렵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나마 안심하고 드라마를 계속 볼 수 있었다.

현실엔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한여진(배두나)처럼 진심과 유능함을 다 갖춘 경찰을 만나기 어렵고, 황시목 같은 검사는 더욱 없다. <이태원 클라쓰> 웹툰의 결말을 확인하고 드라마 본방을 정주행했지만, 한여진과는 사뭇 다른 경찰을 만나고 황시목이 없는 검찰을 거쳐 실체적 진실 발견에 별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할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될, 그 비밀의 숲에 갇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청춘을 저당잡힐 스무살 즈음의 박새로이를 보는 건 역시 힘들었다.

(중략) 저게 현실이면 내가 변호사로 등판해야 하는데, 그럼 안 되겠지? <이태원 클라쓰>를 전개하려면 새로이와 장가 그룹 사이에 원한이 켜켜이 쌓이고 새로이가 성공하려는 간절한 동기와 자기계발의 동력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내 안에서의 상상과 시뮬레이션은 자유니까, 황시목이 없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하면 좋을까 상상했다. 

만약 내가 박새로이의 사건을 수사 단계부터 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장 우선적으로는 구속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 구속부터 막았을 것이다. 수사와 재판은 불구속이 원칙이다. 구속은 범죄 혐의가 위중하고 상당 부분 입증되었다는 전제에서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을 때 허용된다. 극중에서 새로이가 장근원을 돌로 내리치다가 제지당해 체포된 것은 수아(권나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라면 당연히 수아를 만나 어떻게 알고 경찰에 알렸는지, 새로이가 그렇게 분노한 이유가 뭔지, 새로이가 어떤 아이였고 퇴학당한 이유가 뭔지 등 온갖 상황을 물어봤을 것이다. 전 학교생활을 확인할 기록을 확보하고, 새로이가 도와주려 했던 전교 1등 왕따생도만났을 것이다. 수아나 왕따생에게 직접 진술해줄 수 있을지 확인하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녹취도 했을 것이다. 


새로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니 증거인멸 우려는 없고 도주 우려만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아버지 장례도 다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사실이든 오해의 상황이든 간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폭행 또는 폭행치상 사건이고, 체포된 이의 주거도 분명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구속영장을 기각시켜달라고 재판부를 설득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이가 학교 폭력을 제지하다가 부당하게 퇴학당했고, 그 퇴학과 아버지의 실직 배후에 재벌의 갑질이 존재했으며, 그런 끝에 석연찮은 아버지의 뺑소니 사고와 뒤이은 새로이의 우발적 폭행 사고가 발생한 후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받는 상황에 대해 믿을 만한 기자를 찾아 언론 보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계급과 계층의 갑질이 등장하는 사건에서 을이 힘의 불균형 속에 압사되지 않으려면 지켜보는 눈이 많은 것이 그나마 힘이 된다.

또 새로이가 형사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장근원의 아버지 장대희(유재명)를 대상으로 강요죄와 부당 해고 등으로 고소 고발을 하는 한편, 장근원과 그 아버지 모두를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청구하여 새로이 아버지 사망 전후를 기간으로 경찰에 자수를 했다는 사람에 대한 금융 정보를 조회하고 사고 차량 소유주가 실제 누구인지에 대한 사실 조회 신청 등을 했을 것이다. 이런 다툼들 본연의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다툼 과정에서 획득한 자료들을 새로이가 장근원에 대해 살인미수하였다는 혐의로 받는 형사재판의 증거로 살뜰히 사용했을 것이다. 새로이가 무죄를 받을 수는 없더라도, 행사된 폭력의 정도 등을 고려해 살인미수가 아닌 폭행치상죄나 상해죄로 처벌받도록 하고, 위와 같이 정상참작할사정들과 우발성, 새로이의 나이, 초범인 점, 자백반성 등을 내세워 집행유예를 받아내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우리 박새로이가 그로부터 몇 년 후 조이서(김다미)를 만나기 전에 나를 만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쿨럭.



다행스러운 희망

<비밀의 숲> 뺨치게 비밀 많고 의뭉스러운 현실의 세상에 황시목은 없지만, 다행히 열혈 변호사들도 많고 탐구력 왕성한 기자들도 많다. 인터넷이 활성화된 오늘날엔 보는 눈도 많다. 있는 죄를 덮어주긴 용이해도 없는 죄를 덮어씌우긴 상대적으로 어렵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발하는 경우는 있어도 다행히(?) 그 방향이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누군가를 봐주는 일에 쓰이는 경우가 많을 뿐, 황시목 같은 검사는 없어도 없는 죄를 조작해서 기소하는 ‘과감한’ 검사는 흔치 않다. 황시목은 판타지지만, 청년 박새로이를 변호하겠다는 변호사는 판타지가 아니다. 판타지는 실재하지 않아 아쉽지만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실재하는 것들은 미약하지만 다행스러운 희망이 된다.


본 게시글은 <미스테리아>32호에 수록된 코너, OBJECTION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원글 출처: ≪미스테리아≫ 32호

≪미스테리아≫는 미스터리와 히스테리아라는 단어를 결합한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미스터리 작품의 리뷰는 기본이요,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허구와 현실을 비교해보는 코너, 법의학 및 사법 체제 안에서 사건이 어떻게 다뤄지는가를 살펴보는 코너 등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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