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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이유

미스테리아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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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는 꽤 심각한 얼굴이었다. 부검대에는 젊은 여성의 시신이 올라가 있었다.


 “이분 잘 좀 봐주셔야 되겠는데요.” 형사가 입을 떼었다.

 “남녀가 여관방에서 같이 잤는데, 남자 말에 의하면 일어나보니 여자가 엎드려 죽어 있었다는 거예요.”


남자와 여자는 대학부터 사귀던 사이였다. 여성이 먼저 취업했고 남성과의 결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성의 사업이 실패하는 바람에 식을 올리는 것이 늦어졌지만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었다는 게 남성의 진술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주변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헤어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119에 신고해서 구급대가 왔는데 피해자 머리에 피가 난 흔적이 있고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저희한테 연락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도착해서 보니 머리에 조금 찢어진 부분이 발견되었어요. 남자 쪽은 잠자기 전 말다툼을 하다가 여성이 뒤로 넘어지면서 침대에 부딪혔다고 이야기하는데…….” 형사는 뒷맛이 고약한 듯 말을 흐렸다.


여성의 사망 원인


경찰의 검안 팀에서 여성에 대해 사후 검사를 실시하였을 때 머리에 찢어진 열창(피부가 둔력에 의해 손상을 받아 탄성 한계를 넘어 찢어진 상태)이 관찰되었으나 그 크기가 1센티미터 정도였으며 그 외 다른 손상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띠고 있었지만 목에는 뚜렷한 상처가 없었다. (중략) 한마디로 명확한 사인이 보이지 않았다. 여성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물론 ‘청장년 급사 증후군’이라고 불리던, 잠을 자다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는 대개 남성에게 해당되며 여성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래서 질병사의 가능성은 떨어졌다고 추정했다.


부검대 위 여성의 얼굴 색깔은 목의 피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유난히 붉었다. 체질적으로 붉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 법의학자는 우선 울혈을 생각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목을 해부해보면 목정맥은 목동맥에 비해 피부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목을 압박하면(경부 압박) 피부에 가까운 정맥부터 영향을 받아 얼굴에 피가 몰려 붉게 변하게 되는데, 이를 울혈이라고 부른다.

(중략) 목을 부검하기 시작했다. 목은 다른 부위에 비해 많은 근육이 첩첩이 쌓여 구성돼 있다. 가장 바깥쪽인 목빗근부터 시작하여 근육들을 하나하나 절개해서 열어보았을 때, 마침내 목의 깊숙한 근육에서 강하게 압박한 손가락 끝 모양의 출혈이 관찰되었다. 마음속 깊이 안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성은 목을 압박당해 사망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목의 피부에 손톱 자국이나 손가락 모양의 멍이 보여야 하지만, 강력한 힘이 급작스럽게 목에 작용할 경우 내부 안쪽에만 출혈이 보여 피부 바깥쪽에서는 관찰되지 않을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였던 것이다. (중략) 부검이 끝난 후 형사에게 목을 손으로 졸라 살해한 액살이 사망 원인이라고 담담하게 일렀다. 형사는 그럴 줄 알았다며 당장 전화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황급히 떠났다. 나는 다시 두 번째 부검을 시작했다


남자의 시선  


몇 개월이 흐른 후인 어느 날 검찰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조심스레 일정을 묻는 검사에게 어떤 사건 때문에 증언을 요청하는지 물었다. 바로 그 사건이었다. 남성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진술을 강력하게 되풀이하는 중이라고 했다. 전날 밤 싸웠을 때 여성이 스스로 넘어져 머리에서 피가 났지만 치료를 마치고 아무 일 없이 잠을 잤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법정에 출두할 수밖에 없었다. 법의학자에게 법정 출두는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신분 확인을 하고 위증을 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하고 나면 검사가 부검 사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게 된다. (중략)

그날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법정에 섰다. 검찰의 질문이 끝나고 변호인의 차례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질문과 함께 부검 소견에 대해 물었다. 조금 강력한 어조로 손으로 목을 조른 흔적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피고인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러한 시선은 언제나 불편하고 무섭다. 왜 피부에 명확한 손상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피고인과 변호인이 귓속말을 하더니 목을 조른 것을 인정한다고 말하였다. 피고인의 급작스러운 인정에 검사의 얼굴을 쳐다보니 눈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질문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목을 조른다고 반드시 죽일 의도가 아니었지 않나 하는 의도성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즉, 죽일 의도가 아닌 목을 조르는 행위가 성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지, 목을 가볍게 조르는 행위이기 때문에 피부에 상처가 남지 않은 것이 아닌지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사실 살인에서 의도성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 재판부의 몫이다. 또 재판부는 죽일 의도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예견 가능성이 떨어지는 경우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역시 이러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이 사건에서는 의도성 여부를 명확하게 법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나 목을 조른다는 행위는 사망을 가능하게 하는 위험한 행동임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목의 깊숙한 근육 양쪽에서 관찰된 손가락 모양의 출혈은 강한 힘이 작용하였다는 점을 시사하며, 질식이라는 것이 단지 몇 초 만에 발생하지 않으며 수 분 이상이 걸린다는 기전으로 비추어 보아 의도성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는 의견을 말했다.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는 강한 눈빛이 느껴졌으나 이번에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사실을 이야기하고 과학적 추론을 제시하는 것이 법의학 전공자의 직무라는 점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재판부에 의해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었고, 살인죄 판결이 내려졌다.


출처: 《미스테리아》25호

글: 유성호 (법의학자)

제목: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미스테리아》

<미스테리아>는 미스터리와 히스테리아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잡지입니다. <미스테리아>는 매호 달라지는 기획기사와 단편소설을 통해 미스터리라는 거대한 장르의 수많은 틈새들을 꼼꼼하게 탐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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