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

조회수 2021. 3. 16. 10: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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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을 넘어서는 최고의 일본 해설서!

옥스퍼드대학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때 『일본의 굴레』의 저자 태가트 머피 교수는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관한 생각을 역사 및 문화와 결합시켜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불가능한 작업을 해보리라” 결심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지금의 세계 금융시장의 틀을 형성하는 데 일본의 여신與信 창조가 수행해온 중심적인 역할 같은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슈들을 하나하나 떼어놓고서는 일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일본의 굴레』는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다. 책 서문에서 말했듯이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 갖고 있는 머피 교수의 생각을 역사 및 문화에 대한 그의 생각과 결합시킨 것이다. 외부자적인 시각과 내부자적인 이해를 겸비한 저자가 제공하는 다면적인 일본 사회 분석은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통찰을 제공한다.

『일본의 굴레』 번역자 윤영수, 박경환

『일본의 굴레』라는 책을 발견하고 번역까지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둘 다 회사를 몇 년 다니다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외국생활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중국에 12년 살았고 이제 일본에서 8년이 되었죠. 한중일은 한 단어처럼 묶어서 얘기하고 여행들도 많이 다니지만 막상 현지에서 살면서 지내보니 낯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특히 처음 살았던 중국에서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그러다 보면 반사적으로 현지문화에 대해 단정적이게 되고, 감정적이 되고, 심지어 조롱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태도가 본인에게도 좋을 리 없으니 스트레스는 점점 더 심해지고요. 그러다가 현지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우리 같은 외지인들이 중국에 대해 쓴 좋은 책들을 뒤늦게 만나면서 그런 꼬인 감정이 조금씩 해소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오면서는 일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책들을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2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일본의 굴레』를 발견했어요. 중국과 비교할 때 일본에는 오랫동안 일본생활을 한 외국인이 많기 때문에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만, 이 책은 종합적인 분석, 균형 잡힌 시각, 반짝이는 통찰에서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현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딱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이다 싶을 정도로요. 밑줄을 치며 읽다가 나중에는 밑줄이 너무 많아져서 포기할 정도였죠. 이건 우리만 읽기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생활이 20년 가까이 되어가던 때라 뭔가 일단락을 짓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동안 타국에 살며 얻은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세상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번역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번역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둘 다 회사일로 가벼운 통번역을 종종 했는데, 아무리 꼼꼼하게 이해하고 말을 옮겨도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더라구요. 번역 세계에서는 원 글과 옮긴 글을 출발어와 도착어라고 하던가요. 도착어인 우리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동시에 저자가 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고, 저자가 한 말은 빠뜨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저자가 하지 않았지만 독자의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말은 최소한의 역주로 넣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하셨나요? 번역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문장의 일관성을 위해 한 명이(박경환) 초벌 번역을 하고 또 한 명이(윤영수) 재벌 번역을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그 뒤에 여러차례 함께 윤문을 하고요. 윤문 작업이라는 게 볼 때마다 수정을 하게 되는데, 정말 끝이 없더라구요. 요즘은 구글독스 같은 클라우드 기반의 문서 편집 툴이 있어서 둘이 실시간으로 한 문서에 작업할 수 있죠. 의견이 엇갈리거나 명확치 않을 때는 저자인 태가트 머피 씨에게 이메일로 정확한 뜻을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즉각 자세한 참고자료와 함께 성실한 답변을 해주었던 저자에게는 지금도 매우 감사합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어 번역본에 관한 것인데요. 원본에 일본어를 영어로 옮긴 단어나 인용구가 많다 보니 원래의 단어를 찾기 위해 하야카와쇼보早川書房에서 출간된 일본어 번역본을 옆에 두고 참고했습니다. 일본은 18세기부터 난학을 통해 일찍부터 번역이 발달한 나라라 그런지 과연 텍스트를 대하는 꼼꼼함이 대단하더라고요. 조그만 부분이라도 출처를 찾아 검증하고 자세한 설명을 달아놓은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설명이 너무 많아 본문의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로요. 예를 하나 들자면, 책 맨 앞에 짧은 헌정 멘트와 함께 여섯 마디의 악보가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헌정 대상인 분과 저자만 알고 있는 둘만의 메시지 같은 것이겠죠. 그런데 일본어 번역본에는 굳이 이 악보가 어느 작곡가의 작품번호 몇 번 몇 악장인지 찾아서 해설을 달아놓았습니다. 이것 역시 사고방식의 차이구나 하고 느꼈죠.


『일본의 굴레』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아무래도 한국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겠죠.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던 일을 미국의 하와이 합병과 비교한 것, 현대 일본이 한국을 가난한 친척처럼 여겼다는 이야기, 민감한 위안부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풀어헤친 부분, 한국 회사들이 일본 회사들을 앞지르고 있는 이유에 관한 내용,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은 이웃국가로서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런 언급들이 의미 있는 것은 저자인 태가트 머피 씨가 지한파 또는 친한파가 아닌 철저한 제3자의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일파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도 무척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분입니다. 사실 책의 본문이나 한국어판 저자 후기에서 사용한 어떤 표현들은 읽고 있으면 한국인으로서 속이 상해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을 주셨고 또 어떤 부분은 한국 독자들에게 오해가 없도록 후기에 부연 설명을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 이것이 해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제국을 운영했던 경험도 없고, 식민지와 내전이라는 비극적인 현대사를 겪은 경험도 있어 단일민족으로서 가져온 오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그런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제는 자기 객관화의 경험이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하게 되었어요. 이 책 속의 한국에 관한 구절들을 그런 시각에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이 출간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4쇄에 들어갔습니다. 옮긴이로서 기분이 어떠신가요?


한국 출판시장의 어려움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원래 2쇄를 찍는 것이 목표였어요. 660쪽이나 되고, 그렇게 가벼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집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일본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정말 많았나 봐요. 옮긴이의 말에도 썼지만, 요즘 한일감정이 이렇게 격렬하게 안 좋은 데 비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통의 일본 사람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일본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밤을 새워가며 번역한 입장에서는 헛된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이죠.


한국인으로 일본에 살고 계신데요, 실제로 생활하며 양국간에 어떤 차이를 느끼시는지요.


사실 중국에서 12년을 살고 곧장 일본으로 왔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차이가 더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역시 어느 미국인이 쓴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미국은 원칙(principle)의 나라, 일본은 정책(policy)의 나라라고 표현했더라구요. 일본 사람들이 답답할 정도로 규칙을 잘 따른다는 일반적인 상식과도 통하는 얘기죠. 그와 비교하면 중국은 대책(solution)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해결책을 찾는 태도가 현대 중국의 역동성이 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유커들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위에는 정책이 있으면 아래는 대책이 있다는 중국의 유명한 말도 있죠. 대책의 나라에 간신히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정책의 나라로 왔으니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처음에는 좌충우돌이 참 많았습니다.


앞으로 또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객지생활을 하다 보니 이방인이 객지에 오래 살면서 쓴 글들을 좋아합니다. 현지인도 아니지만 완전한 타인도 아닌 그 중간지대에서 묘하게 생겨나는 입장이랄까 시각 같은 게 있어요. 친밀한 관찰자의 시각이라고 할까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걸 잘 표현한 사람들의 글에 관심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일본에 와서 평생을 여기서 살고 몇 년 전 세상을 뜬 도널드 리치라는 일본 영화/문화 평론가의 글들을 찾아 읽고 있어요. 『일본의 굴레』 저자 서문에도 살짝 언급이 되어 있죠.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이분의 평론서가 80년대에 한번 한국에도 번역이 되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평생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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