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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사람들.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 인터뷰

조회수 2017. 7. 31. 11: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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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 PEOPLE 사로잡힌 사람들, <불한당> 의 변성현 감독

사로잡힌 사람들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 인터뷰


미스터리 전문 매거진 <미스테리아>13호에 수록된 인터뷰 의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아주 일부입니다 ^^) 

<불한당>을 보고 나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수많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맥조휘와 유위강의 <무간도>, 마이크 뉴얼의 <도니 브래스코>, 박훈정의 <신세계>,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 심지어 이안의 <색, 계>와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까지. 

어디서 본 듯한, 이라는 설정은 그 익숙함 때문에 편안하게 진입할 수 있는 안전장치이기도 하지만 또 반면에 진부한 반복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변성현 감독의 언더커버 누아르 <불한당>은 익숙함의 비틀기와 변주라는 전략이 어떤 식으로 일정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입증해 보였다. 그러니까 <불한당>은 언더커버의 불안을 제거한 대신 절실한 멜로드라마를 끌고 들어오면서 지금껏 한국의 누아르 영화에서 등장한 적이 없던 정서로 가득채웠다.


개봉 전에는 칸국제영화제 초정으로 시선을 끌었고, 개봉 직후부터 영화 외적인 논란으로 뜨거웠으며,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 영화를 향한 열렬한 팬덤이 화제에 오르면서 또다시 관심을 불러모았던 영화 <불한당>에 관해,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변성현 감독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출처: 인터뷰: 김용언 / 사진: 이천희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

인터뷰: 김용언 / 사진: 이천희

Q 전작 <청춘 그루브>와 <나의 PS 파트너>를 보면 남자들이 주고받는 일상적 수다가 갖는 디테일이 돋보인다. 편하게 명명하자면 흔히 ‘타란티노 스타일’이라고 하는, 남자들 몇 명이 공 주고받듯  쉬지 않고 시시한 이야기를 떠드는 장면 말이다.

A. 영화에서 무의미한 대사들을 좋아한다.  초고에서는 훨씬 많이 썼다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남기고 점점 없애는 편이다. 


사실 <나의 PS 파트너>에선 개인적으로  후회하는 대사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굉장히 마초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부분이 많았다. 재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텔레비전에서 <나의 PS 파트너>를 틀어주길래 개봉 뒤에 처음 봤는데 부끄러웠다. 특히 마초적인 대사를 제일 많이 배당했던 김성오 선배가 굉장히 실감나게 연기하셔서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Q. <청춘 그루브>에서 “사람은 백 프로 드러난 잘못에만 진짜로 미안해해. 재밌는 건 잘못이 드러나기 전까지 느끼는 건 잠깐의 죄책감 정도라는 거야.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말이지”라는 서창대(봉태규 분)의 대사가 <불한당>의 천인숙 팀장의 대사 “잘못이 드러나기 전까진 아무도 잘못한 게 아니야. 이런 개 같은 일에는 당하는 놈이 잘못한 거고 그게 나쁜 거야. 어설픈 죄책감 같은 건 애초에 키우지 마. 안 그러면 스스로 망가질 뿐이니까”로 옮겨오는 것 같았다. 


인물이 저지른 잘못, 실수, 죄를 바로잡을 타이밍을 놓치고 그것 때문에 앞으로의 행로가 완전히 바뀐다는 설정에 있어서, <청춘 그루브>가 <불한당>을 예비하는 작품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에 대한 영화랄까.

A. 나는 죄책감이 큰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문제로 괴로워했고 후회도 많았기 때문에 그런 점이 영화를 만들 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스스로는 씨네필 출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출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챙겨 본 편인데, 플래시백이 잘 사용된 영화들을 볼 때마다 되게 영화적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단편 작업하면서 조금씩 시도해봤는데, 플래시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에 자신감이 좀 붙었다. 이후에도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사용되는 걸 볼 때마다, 영화 자체는 별로더라도 트랜지션 부분에 대해 메모를 많이 해두면서 저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리한다.

Q.  그런 면에서 <불한당>은 처음으로 ‘비일상적인’ 영화기도 하고,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도 전작과는 확연하게 다른 톤이어야 했다. 그 변화를 시도하면서 어떤 각오였을지.

A.  <불한당>이 확연하게 다른 첫 작품은 아니다.  제일 처음 만들었던 단편이 누아르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단편 세 편, 장편 세 편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변종이 <나의 PS 파트너>다. 그 각본을 쓸 때까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거의 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특히 김아중 씨가  맡은 역할의 대사를 쓸 때가 고생스러웠다. 내 딴엔 고민해서 썼지만 너무 ‘남자 대사’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열심히 연구하면서, 저런 타이밍에 저런 대사를 할 때 관객들의 반응이 좋구나라고 학습했다.


Q. 그렇다면 언더커버 누아르의 어떤 면이 매력적이었나.

A.  박훈정 감독님의 <신세계>를 보고 나서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주변에선 비슷한 영화 만들면 실패한다고들  말렸지만, 나는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고집부렸다. 워낙 <무간도> 등의 언더커버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매번 떠오르는 궁금증이 있었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이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잖나. 


<도니 브래스코>의 조니 뎁과 알 파치노, <신세계>의 정청과 이자성의 관계를 보면서 ‘나라면 그냥 얘기할 거 같은데 왜 감추지? 직업의식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난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라면 그냥 고백할 것 같은데, 극적 재미를 위해서 끝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는 걸까 싶었다. 


만일 언더커버가 자기 정체를 그냥 중간에 밝히면 어떻게 될까? 언더커버 영화들을 다시 한번 죽 살펴봤다. 그런 설정이 나오질 않았다. 그럼 내가 한번 이런  설정으로 끌고 가보자, 그러면서 서사를 멜로로 풀어보자고 생각했다. 


많은 누아르 영화들이, 이를테면 마틴  스코세이지의 <비열한 거리>라든가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를 보면 누가 봐도 남자들의 멜로, 퀴어 영화의 느낌이 난다. <불한당>에서도 멜로를 중심에 두고 싶었다. 


우정이나 의리 등으로 포장되는 ‘브로맨스’가  아니라, 육체적 사랑까진 아니라도 누가 봐도 감정적으로 사랑이라 느낄 수 있는 관계말이다. 스타일뿐 아니라 감정적 측면에서 기존의 언더커버물과 다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수많은 멜로 영화들을 연구했다. 물론 주변에선 장르적 관습의 쫄깃쫄깃한 긴장감이 사라진다는 데 대해 우려했지만, 나로서는 언더커버의 불안이 들어가는 설정을 더 경계하고 과감하게 생략해버렸다.

Q.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언더커버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부분을 뺀 뒤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왔을지, 아니면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중심에 두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형, 나 경찰이야”라는 현수 대사가 일찍 나올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이 대사는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등장한다.

A.  멜로 서사가 제일 중요했는데, 감정적으로  어떻게 멜로처럼 느껴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컸다. 사실 <불한당>에서는 한재호와 조현수가 함께 어울리는 장면이 그렇게 자주 나오지 않는다. 둘이 뭔가를 쌓아가는 장면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감정선까지 납득 안  될 정도로 생략되진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한재호와 조현수가 알까기를 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촬영 전날 쪽대본을 써서 드리고 새로 넣은 장면이다. 하지만 “형, 나 경찰이야” 이후 두 사람의 사이가 어떻게 더 깊어졌을지에 대해서는 생략했고,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여지를 남기려 했다. 그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이 당연히 품게 될 의문점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 답을 바로 주고 싶지 않았다. 다음 장면에서 답을 주겠지 싶을 때 그 답을 계속 뒤로 미루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고민했다. 


Q.  보통 언더커버물에서는 정체를 감춘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그를 이용하는 자/의심하는 자들 사이의 역학 관계가 점점 커지고 복잡해지는 양상을 띤다. 그런데 <불한당>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재호-현수의 감정으로 집중시키면서 이야기를 단순화시킨다. 핵심은 재호가 현수의 정체를 알아차릴까가 아니라, 현수가 재호의 정체를 알아차릴까, 그래서 둘의 관계가 파국을 맞을까라는 조마조마함에 놓인다.

A.  처음에 구상했을 때 빌런 역할, 그러니까 고병철
 회장의 비중이 더 높았다. 막상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너무 길었고, 선택을 해야 했다. 빌런을 키워서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재호와 현수에게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천인숙 팀장 같은 경우도 더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지만, 엔딩에 이르러 딱 재호와 현수 두 사람의 감정으로 끝내고 싶었다. 이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야기라고 누차 언급한 것도 그래서다.  물론 다른 의견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엔딩 신이 더 커야 하지 않나, <레옹>에서도 레옹이 마틸다를 구출하기 위해 엄청난 액션을 거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액션을 최소화하고, 재호와 현수가 만나 무슨 대화를 하는지, 어떤 감정이 오가는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전문을 보고 싶다면? <미스테리아> 13호.
매 호 만들 때마다 마찬가지지만, 이번 호를 만들면서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만 다루는 잡지가 과연 오래 갈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하기 힘들었던 시기에 창간호를 내고 지금까지 열세 권을 만들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인, <미스테리아>를 꾸준히 응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미스테리아>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미스테리아>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구어를 제호로 사용한 잡지, 「미스테리아」.
「미스테리아」는 매호 달라지는 기획기사와 단편소설을 통해 미스터리라는 거대한 장르의 수많은 틈새들을 꼼꼼하게 탐색한다.
창간 2주년 이벤트 사은품. 놓치지 마세요!

"사장님 걱정도 참, 설계 다 해 놨습니다."


<미스테리아>가 창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산'이 서는가? 아니면 출판사가 장르소설계의 미래를 위해 밑지는 장사를 감수한 것일까? 당연히 후자는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후자를 목표로 하지만 전자가 우선되어야 한다. 건강이 최고인 것과 마찬가지다. 살아야 광명을 보는 법.

엘릭시르는 계산을 세웠고 승부를 걸었다. 온라인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장르소설 발표용 지면을 확보하고 주류 언론들이 여름 휴가철을 빼고는 거의 신경쓰지 않는 새로 나온 책들을 홍보하며 심도 있는 기획기사들을 통해 장르소설들에서 파생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대의와 재미를 모두 가지고 미스터리 소설의 '현재'를 영영 함께하겠다는 이 야심찬 승부는 확실히 흥미진진하다. 부디 이 재미난 게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_최원호 (알라딘 소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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