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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칼레도니아 무인도 체류기 -조금은 느리고 몰라도 괜찮은 1

조회수 2016. 9. 1. 11: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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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한번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모든 번뇌와 시름 잊고 살아보면 어떨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쓴 여행작가 이병률과 『달리는 청춘의 詩』를 쓴 윤승철 작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꿈꾸며 뉴칼레도니아의 무인도로 훌쩍 떠났다. 한없는 게으름에 대한 그들의 로망은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마지막 지상낙원에서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_이병률(시인)

한 평짜리 그늘도 허락하지 않는 무인도의 태양은 살기를 띤 채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뉴칼레도니아의 작은 무인도 쁘띠 테니아(Petit Tenia) 섬. 이곳에 오기로 정한 것은 몇 년 전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했을 때 이곳이 지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천국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기로 한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이곳에서는 할 일이 없으니 장을 보면서 사온 마늘 세 통을 까기 시작했다. 마늘 껍질은 한 곳에 모아 두기도 전에 나비처럼 흩날렸다. ‘마늘을 까긴 했는데 뭘 해먹지?’ 하지만 곧 문제에 부딪히고 만다. 후배 승철과 내가 가져온 가스 버너가 이곳에서 구입한 가스의 연결구하고 맞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파도에 떠밀려온 나무를 주워 불을 지폈다. 

씻는 데는 우유 한 팩 정도 물만 사용하면서 충분하다고 여길 것. 노동할 것이 있다면 나눠서 할 것. 모든 상황을 기꺼이 즐길 것. 어차피 이 정도의 기준만 있다면 무인도에서의 며칠은 괜찮으리라. 

도착한 날에는 습한 기운이 요란을 떨더니 다음날에는 모든 것들을 다 말리겠다는 듯 바람이 불었다. 바람도, 책장을 아무 데나 펼쳐놓더니 후루룩 몇 장을 읽고 간다.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옷가지와 수건의 흔들림을 보다가 바람 하나로 문득 이토록 충분할 수 있으니 좋고, 그 바람이 나를 태우고 있는 해먹까지도 흔들어주니 좋다.

나는 한번 잠자리에 들면 절대 안 일어나는 편인데 5m 거리의 텐트에서 자는 승철은 자다가도 일어나 별을 보거나 섬 한바퀴를 돌고 하는 모양이다. 인기척에 눈을 뜨면 텐트 밖 여기저기서 랜턴 불빛이 움직이곤 한다.

승철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났다. 사막마라톤의 그랜드슬래머(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2회)이면서 그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을 썼고, 지금은 필리핀의 무인도를 수시로 드나들며 ‘무인도살이’를 실천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승철의 이야기와 인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무인도에서 생활을 하려면 어떤 감각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궁금해 하던 끝에 함께 무인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곳 무인도에 도착하면서 배 위에서 살짝 놀란 것은 섬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의 키가 작은데다 잎들이 빈약해서였다. 그렇다면 충분히 더울 것이었다.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될 각오야 준비했지만 지난번 미크로네시아 무인도에서는 나무 그늘이 참 많고 좋았던 덕분에 아침 저녁으로 새소리를 엄청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계속해서 불어대는 무인도의 바람 속에서 승철은 김연수와 은희경의 소설을 읽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하고 해먹에 누워 대신 나의 친구 김연수와 은희경을 그리워하기로 한다.

조난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챙겨온 것들로도 모자라다고 여긴 것인지 여기 마켓에 들러서도 참 많이도 담아 왔다. 그렇게 줄어들지 않는 계란과 통조림들의 숫자와 감자와 양파의 갯수를 헤어리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섬을 산책하던 중에 나무 밑에서 기척이 들려 돌아봤더니 세상에나, 이 섬에 게가 살고 있었다. 무인도에서 유일하게 바쁜 일이, 유일하게 민첩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게맛’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눈에 보이는 게들을 그냥 둘 수 없어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구웠다. 아무 도구 없이 게살을 발라먹는 일로 금세 몇 시간을 흘러가게 두었다.

휴대 전화로 두어 번 시간을 확인하고 몇 줄의 메모를 하는 동안, 하루 동안 겨우 10%의 배터리만 닳았다. 내가 먹는 것과 내가 쓰고 소비하는 것들을 10%로 줄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보다 10%만큼만 게으르게 혹은 느리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에게 가장 먼 사람은 누구이며, 가장 멀리 떨어져 지내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한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여기서 살다가 밀린 일들과 씻는 일들과 세상의 궁금한 일들을 참견하려 나갔다가 다시 하루 만에 무인도로 돌아오는 것은 어떨지 생각한다. 그때는 최소한으로 먹고 최대한으로 외로워하는 일이 나의 전공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될까.

바람은 계속 불었다. 태생적이면서도 직업적인 기질 때문인지 나의 내부는 바람의 충전을 통해 풍만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곳으로 출근을 해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떠내려 온 나무를 주워 책상을 짜겠지. 그 책상을 그늘 아래에 놓고 바람이 내는 소리를 받아 적어도 좋으리.

넷째 날 아침이 되었다. 불려둔 쌀로 이것저것을 넣어 죽을 끓여 먹는 참에 뱃소리가 들려 왔다. 누가 온 걸까? 배로 우리를 태워다 준 아저씨였다. 다섯째 날 우리를 꺼내주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뭘까. “지금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 아, 이 엄청난 바람의 정체는 바로 태풍이었구나. 아저씨는 큰 파도로 흔들리는 배에서 위급한 상황을 알리며 당장 짐을 싸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알린다. 급히 텐트를 걷고 벌여놓은 것들을 챙기면서 혼자 피식 웃었다. 그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이러고만 있었다니.

무인도에서는 모르는 게 많구나. 어쩌면 몰라도 되는 것들이 많아서 무인도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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