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대화

조회수 2020. 4. 28.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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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G80 특별 전시에서 만난 자동차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대화

지난 4월 26일까지 제네시스 스튜디오 하남에서는 G80 3세대를 선보이는 특별 전시가 열렸다. 대담하고 진보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제네시스 브랜드의 DNA를 디자인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디자인이 브랜드, 브랜드가 디자인이 되는 특별한 경험의 순간을 이상엽 제네시스 글로벌 디자인 센터장과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 서을호 건축가가 함께했다.

이상엽 제네시스 글로벌 디자인 센터장(왼쪽)과 서을호 서아키텍스 건축사사무소 소장.

이번 제네시스 G80은 디자인부터 여러모로 화제다. 디자이너로서 멋진 차를 디자인하는 것 이상으로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즐거움도 컸을 것 같은데.

이상엽 4년 전,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과 제네시스에 왔을 때부터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것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마치 제네시스라는 백과사전의 비어 있는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것 같은, 디자이너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번에 선보인 G80은 직접 기획부터 시작해 4년간에 걸쳐 완성한 첫 번째 자동차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시작이라 생각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결과 후륜구동 세단 중에서 가장 완벽한 비율의 자동차가 탄생할 수 있었다. 사실 비례가 좋으면 장식이나 기교는 필요 없다. 원재료의 맛을 살린, 미슐랭 요리와 같은 거다.

제네시스의 로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상엽 럭셔리 자동차는 자신감을 갖고 이를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많은 요소와 스토리를 부여하기보다는 차가 지나갈 때 한두 가지 인상적인 캐릭터를 남겨야 한다. 날개 형상의 제네시스 엠블럼은 승리에 대한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자동차 전면에 얼굴로 나타냈다. 제네시스 로고 가운데 있는 방패 모양을 G80의 대형 크레스트 그릴 형태로 표현하고, 날개 모양은 두 줄의 헤드램프 라인으로 시작해 360도로 차량 전체를 둘렀다. 이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헤드램프가 곧 차의 ‘눈’을 의미하는 통속적인 관념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헤드 램프를 크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슬림한 라인으로 일정한 광량이 나오게 하는 것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이 2개의 라인은 밤에도 제네시스만의 가치를 보여주고, 어느 앵글에서든 눈에 띄기 때문에 제네시스만의 캐릭터가 된다. 완벽한 비율의 균형감에 딱 2개의 라인만으로도 충분한 디자인을 한 거다.

제네시스 스튜디오 설계에 이어 특별 전시 디자인 역시 서아키텍스가 맡아서 진행했다. 가장 중점을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서을호 처음부터 목표는 심플했다. 제네시스의 DNA인 대담함과 진보적이고 한국적인 요소를 담아내고, 쇼룸의 주인공인 제네시스라는 차가 돋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만약 인테리어를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콘셉트로 했다면 차와 뒤섞여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가장 원자재에 가까운,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쓰고 다양한 각도의 거울을 배치함으로써 자동차 라인을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특별 전시 콘셉트 역시 마찬가지다. G80은 자동차 자체가 멋있기 때문에 무언가의 요소를 더할 필요 없이 미니멀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건축가가 긋는 선은 콘크리트 벽이 되므로 평소 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보니까 이들이 긋는 선은 끝나지 않고 항상 이어지더라. 자동차는 하나의 모델이 나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또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니까, 디자이너 머릿속에선 그 선이 계속 그어지는 거다. 그래서 선을 요소로 삼아 직관적이고 심플하게, 임팩트를 줄수 있도록 전시 도입부를 디자인했다.

제네시스 스튜디오 하남에서 열린 G80 출시 기념 특별 전시. 서을호 소장이 디자인을 맡았다.


이제 자동차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 영역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소비자가 G80을 비롯한 이번 전시를 통해 느꼈으면 하는 감성적, 경험적 가치는 무엇인가?

서을호 처음 제네시스 스튜디오를 디자인할 때도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데에 중점을 뒀다.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보통 자그마한 컬러 칩으로 자동차 색을 보여주는 수입 매장과 달리 직접 차량 문을 색깔별로 전시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한국 자동차니까 가능한 시도였다. 이번 특별 전시에서는 도입부 설치물에 제네시스 엠블럼 형상으로 구멍을 내서 마치 한옥의 담 너머로 무언가가 살짝 보이듯, G80이 보이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이런 의도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4년 전 제네시스 스튜디오 설계 당시 따로 출입문을 두지 않은 것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원하는 경험을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제네시스 자동차의 디자인 역시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드러낸다. 마치 빨랫줄에 빨래가 널려 있는 것처럼 우리 눈에 익숙한 곡선을 자동차에 쓰는 순간, 새로움을 주는 동시에 한국적인 요소를 느끼게 하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기와, 한복, 소반 등 과거의 것에서만 한국적인 디자인을 찾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바라보는 현재의 우리 시각, 관점이다.


이상엽 제네시스가 지향하는 동적인 우아함을 만드는 작업 자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한국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한다. 제네시스는 젊은 럭셔리 브랜드이기 때문에 대담하고 진보적이면서도 우리만의 특별함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적인 요소를 DNA로 삼고 있다. 곡선의 우아함이랄지 인테리어에서 여백의 미 등이 그것이다. 사실 자동차를 자극적으로 보이도록 디자인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우아하게 만들기 위해선 선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고급 브랜드와 럭셔리의 차이는 차의 완성에서 마지막 10%를 어떻게 정의하고 마무리하느냐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4년 뒤에 나올 다음 세대의 G80을 생각하고 그 디자인 진화를 고민하고 있다.

또한 ‘히든 딜라이트hidden delight’, 감춰진 아름다움이야말로 자동차의 가치를 나타낸다. 차를 구매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어느 날 떨어진 동전을 줍기 위해 밑을 봤을 때 정말 아름답게 디자인돼 있다면 거기에서 다시 한번 그차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겠나.


제네시스 스튜디오 하남에서 열린 G80 출시 기념 특별 전시. 서을호 소장이 디자인을 맡았다.


정말 좋은 디자인은 단순한 외형 이상의, 브랜드로서 가치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는 디자인에서 시작되고, 디자인은 곧 브랜드다”라는 이상엽 제네시스 글로벌 디자인 센터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상엽 럭셔리 브랜드에는 트렌드를 빠르게 좇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브랜드만의 정체성이 중요한데 디자인이 바로 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좋은 디자인이란 시간의 흐름이라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사용자가 경험을 통해 그 가치를 느껴야 하는 것으로 5년이나 10년 뒤, 비를 맞거나 흙탕물이 튀어도 거리에서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G80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시작에 아주 작은 첫발을 디딘 것으로, 앞으로 ‘브랜드를 어떻게 가꾸어나가느냐’가더 중요하다. 고객의 반응에 감사하지만 절대 자만할 수 없는 이유다.


서을호 처음 제네시스 스튜디오 설계를 맡았을 때, 여느 외국 브랜드 차와 경쟁을 한다는 느낌보다 그냥 ‘나는 제네시스 브랜드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뉘앙스의 당당함이 좋았다. 예전에 농담으로 차가 멋있으면 개울가에 세워두어도 사람들이 보러 온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번 G80 출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특별 전시를 오픈하던 날, 코로나19 때문에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G80의 실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더라. 모두가 디자인이 멋지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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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정 기자

인물 사진 한도희(얼리스프링)

전시 사진 전택수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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