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진화하고 확장되는 서체

조회수 2019. 9. 25. 17: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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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아리따 프로젝트

10월 9일 한글날 때문일까?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글 창제의 업적과 우수성을 기리는 행사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곤 한다. 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싸운 수많은 선조들과 국어학자들의 열의와 헌신이 조망받곤 한다. 그런데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은 비단 학자만이 아니다. 표준 글자 2780자를 정성스레 다듬어나간 서체 디자이너들과 의식 있는 기업들의 서체 프로젝트 역시 오늘날 한글을 가꿔나가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아모레퍼시픽
아리따 돋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는 그 가운데에서도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아리따’라는 이름은 공자의 <시경詩經> 중 첫 번째 시인 ‘관저關雎’의 한 구절 ‘요조숙녀窈窕淑女’에서 비롯한 것으로, 사랑스럽고 아리따운 여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추구하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모티프로 단아하고 지적인 멋이 풍기는 아시아의 현대적인 여성상을 담아낸 것이 특징. 부드럽게 휜 글자 줄기는 손 글씨의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며 유연하고 간결한 형태에서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글꼴의 조형성 만큼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신이다.

2004년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름다움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물이다”라는 아모레퍼시픽의 기업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당시 기업이 본문용 글꼴을 무료 배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즉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기업의 의지가 과감한 시도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쳤다면 아리따는 일회성 프로젝트에 머물렀을 것이다.

출처: ⓒ아모레퍼시픽
<오정희 컬렉션> 전 5권, 문학과지성사, 2017, 아리따 부리
출처: ⓒ아모레퍼시픽
<안그라픽스 30년>, 안그라픽스, 2015, 아리따 산스.

아모레퍼시픽은 단기적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히 글꼴을 발전시켰다. 2006년 처음 배포를 시작한 아리따 돋움의 경우 현재 4.0 버전까지 나온 상태. 웹 폰트용 힌팅 작업 등디지털 친화 작업을 거치며 꾸준히 진화 중이다. 이 같은 업그레이드는 무료 글꼴로는 무척 드문 일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리따 돋움을 시작으로 지난 13년 동안 아리따 산스, 아리따 부리, 아리따 흑체 등 총 4개의 글꼴 가족과 13종의 두께를 파생시켰는데 각 글꼴 가족마다 최적의 디자이너와 검수자를 선발했다. 이 프로젝트가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

이 중 아리따 산스(영문)와 아리따 흑체(중문)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과 궤를 함께해 흥미롭다. 특히 가장 최근 선보인 아리따 흑체는 중국 현지 디자인업계에서도 큰 호평을 얻었다. 한자의 특성상 필획이 복잡하고 자수가 많아 개발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에 중국 현지 기업 사이에서도 무료 글꼴을 배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

출처: ⓒ아모레퍼시픽
<유월의 고독회>, 에피톤 프로젝트, 2019, 아리따 부리
출처: ⓒ아모레퍼시픽
베이징 현장에서 아리따 흑체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 중이다.
아리따 글꼴 가족의 가장 큰 특징은 ‘건강하고 현대적이며 친근한 이미지’다.
-아모레퍼시픽 디자인센터-

아리따 서체가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

아리따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는 본문용 글꼴이라는 데에 있다. 기업에서 배포하는 대부분의 서체는 기업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제목용 글꼴인데 우리는 쓰임새가 많은 본문용 글꼴을 개발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문용 글꼴로 서서히 더 많은 소비자들과 친숙해지는 것이 기업 이미지를 순간 각인시키는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에는 아리따 흑체를 개발해 배포했다.

중문 글꼴을 중국 현지 기업이 아닌 해외 기업이 만들어 무료 배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중국 내에서 문화적 저변을 확보하고, 우리 기업이 자유롭게 쓸 수있는 ‘우리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 중국어 글꼴 개발은꼭 필요한 일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협력사가 서로 긴밀하게 협업해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인상의 본문용 중문 글꼴을 만들었다. 해외 지사가 많은 기업 특성상 국문과 중문 혹은 중문과 영문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국어 글꼴을 작업할 때에는 섞어 짜기 부분을 우선순위에 놓고 작업한다. 아리따 글꼴 가족의 가장 큰 특징인 ‘건강하고 현대적이며 친근한 이미지’를 중문 글꼴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또 손글씨 특유의 자연스러운 필획, 살짝 높은 중심선 등아리따 국문의 특징도 적용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리따 돋움의 ‘가’, ‘갸’에서 느껴지는 ㄱ 세로줄기의 편안한 각도를 한자의 삐침이나 갈고리 등에 그대로 적용했다.

<아리따 스토리북>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 예정인가?

아리따가 처음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아리따가 거쳐온 여정을 한 권의 책에 담고자 한다. 하나의 글꼴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다듬어온 사례가 없기도 하고 하나의 글꼴을 국문, 영문, 중문 등다양한 언어로 파생시킨 사례 역시 드물기 때문에 한글 타이포그래피사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물이 될것이다. 아리따는 각 글꼴에 맞는 최고의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맡겼다. 이들의 인터뷰를 포함해 아리따가 하나의 서체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아리따가 쓰인 다양한 사례 등을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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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 프로젝트

기획 아모레퍼시픽(회장 서경배),
http://www.apgroup.com/int/ko
개발 기간 2004년~현재  

구성 아리따 돋움, 아리따 산스, 아리따 부리, 아리따 흑체

참여 디자이너 안상수, 이용제, 한재준, 류양희, 미쉘 드 보어Michel De Boer, 피터 베르휠Peter Verheul 등

글 최명환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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