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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보고 싶은 서울 지하철역 공공디자인

조회수 2019. 8. 21.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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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과 한성백제역
세계 최대 여행 정보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는 한국에서 ‘관광객이 꼭 해야 할 단 한 가지’로 서울 지하철 타기를 꼽은 바 있다.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한국 지하철의 안전 문을 예로 들며 ‘서울의 지하철을 보면 뉴욕 지하철의 갈 길이 얼마나 먼지를 보여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하루에만 최고 10만 명(평균) 이상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남녀노소 누구나 경험하는 공공의 자산임이 분명하다. 국내 지하철이 이렇게 수준 높은 제반 환경과 서비스, 공공 디자인을 갖추기 시작한 시점은 5호선 완공 이후로 볼 수 있다. 이전의 지하철 사업은 관공서와 토목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명확한 디자인 가이드가 없었다. 복잡한 사이니지와 중구난방 설치물을 떠올려봐도 어느 정도 짐작되는 부분이다. 이후 5호선부터 8호선은 명확한 색채 아이덴티티와 이에 걸맞은 통일된 사이니지를 조금씩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하철 9호선은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시작부터 적극적으로 디자인 마스터플랜을 진행한 프로젝트로, 이는 디자인그룹메카(대표 류인철)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됐다.
한성백제역 내부. 기계나 정보판을 빌트인 형식으로 설치해 튀어나오거나 거스르는 것 없이 시야가 탁 트여있다.
그릴 형태의 천장은 약간 낮은 천장고를 연출하며 공간에 안정감을 준다.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변모한 한성백제역

지난 12월 말에 완공한 9호선 한성백제역은 여느 지하철 역사와는 다른 모습으로 한 번 더 주목받았다. 특화 정거장이라는 이름으로 지하철 역사에 특색 있는 콘셉트를 도입한 것. 

서울시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지하철 역사 자체를 문화 콘텐츠로 만들고자 한 의도로, 그 첫 주자로 한성백제역을 선택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디자인그룹메카는 5~8호선 디자인 가이드부터 9호선 디자인 마스터플랜을 진행, 공공 교통 시설 디자인에 대한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잠깐 머무르거나 이동하는 공간, 지하라는 폐쇄성이 있는 지하철 역사에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변모한 한성백제역부여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역사 내부에 굵은 기둥이 여러 개 들어선 공간의 형태도 변형이 불가능했다. 디자인그룹메카의 류인철 대표는 9호선 한성백제역 주변이 풍납토성, 몽촌토성의 유적지이며, 인근의 송파나루는 해상 진출지로서 천년의 역사를 지닌 주요 거점이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에 한성백제역 역사는 ‘흙’을 주제로, 백제 고분과 토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 콘셉트를 내세웠다. 한성백제역에 들어서면 마치 고분 안에 들어온 듯한 고요함과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이는 동일한 색채 계획과 함께 천장과 바닥, 벽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조명의 밝기, 광고판이나 안내판이 보여주는 모듈의 비례, 공간을 훑으며 정보를 파악하는 사용자의 시선까지 고려한 결과물이다.

한성백제역 입구는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에도 개방감을 더했다. 이 투명한 구조물은 튀지 않으면서도 멀리서도 위치가 잘 보이도록 했다.
그릴 형태의 천장은 덕트와 형광등이 뒤얽힌 복잡한 천장을 가려주는 동시에 공간에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지하철 9호선 마스터플랜

한성백제역이 지나는 9호선은 생활 미술 디자이너 이영희가 자신의 시집 <일흔이에요>에 한국의 자랑할 만한 자산으로 꼽기도 했다. 공공 자본과 민간 자본이 함께 투입된 국내 최초의 민자 노선인 9호선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프로세스로 진행됐다. 프로젝트를 맡은 디자인그룹메카는 ‘원톤, 모듈화, 빌트인’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9호선 전 노선의 공간과 사이니지를 구현했고, 이는 지하철 역사 공간과 조명, 기계 설치 등에 일관되게 적용됐다. 특히 지하철 역사의 벽은 기존에 사용하던 타일에서 조립식 패널로 마감 소재를 변경하면서 조립과 부착, 해체가 용이하도록 했다. 이는 기존의 지하철 시공 방식과는 다른 획기적인 진보 중 하나였다. 

완성된 9호선 지하철 역사 내부는 다른 노선의 역사보다 넓다는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는 다른 노선의 지하철 역사에 비해 좁게 설계되어 있다. 보기 싫게 튀어나온 시설물이나 부조화한 컬러 조합이 없어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것이 없다는 점도 이런 치밀한 디자인 프로세스의 결과다. 지하철 전 노선 중 이용객 수가 가장 많은 데에서 오는 높은 혼잡도와 요금에 대한 갑론을박도 여전히 있지만 9호선은 체계적인 디자인 기획으로 한층 나아진 사용 경험을 제공하며 이후 지하철과 경전철 노선 기획의 우수한 사례로 꼽히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하철 9호선 곳곳에 적용된 메트로 9호선의 로고타이프와 심벌마크.
지하철 9호선 곳곳에 적용된 메트로 9호선의 로고타이프와 심벌마크.

지하철은 체계적인 디자인 계획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
-디자인그룹메카 류인철 대표-

지하철 9호선 프로젝트는 기존의 5~8호선 프로젝트와 어떤 점이 달랐나?

공공 디자인은 제약도 많고 규정이 매번 바뀌는 경우가 많아 통일된 디자인 개념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디자인그룹메카는 5호선부터 8호선까지 지하철 노선별 통합 색채 계획과 사이니지 등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는 토목이나 건축 계획 이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체계적인 디자인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비해 지하철 9호선 프로젝트는 디자인그룹메카가 아이덴티티와 공간 디자인 콘셉트를 먼저 설정하고 이를 건축과 토목, 엔지니어링 분야의 전문가와 공유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계획적인 디자인이 가능했다.

9호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무엇에 가장 중점을 두었나?

환경 디자인은 어떤 디자인을 적용하느냐보다는 어느 시점에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특히 공공 디자인은 건축과도 같다. 나는 공공 디자인의 기한을 보통 20~50년 정도로 본다. 그래서 공공 디자인은 사용성이나 시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디자인 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지하철 역사의 벽을 마감한 패널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인 2001년에 ‘앞으로 모든 광고판이 영상이 될 것’을 고려하여 선택한 소재이기도 하다.


지하철 역사마다 공간성을 부여하는 개념 또한 최근의 일인 것 같다. 한성백제역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9호선 프로젝트를 하면서 송파 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도 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인근 지역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 즈음 서울시에서 디자인 마스터플랜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경험이 많은 우리에게 서울의 역사와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거점이 될 만한 이 프로젝트를 맡겼다. 특히 한성백제역은 인근 지역의 역사성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환경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장소성과 역사성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1~8호선 등을 리뉴얼하면서 9호선의 사이니지나 서체 등을 차용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점이 안타깝다. 준공한 지 오래된 노선은 그대로 하나의 역사성을 갖는다. 사용하면서 계속 덧댄 사이니지나 세월의 흔적까지, 그 또한 나름의 자산이 아닐까. 환경 디자인은 고유의 장소성과 시간이 지닌 아이덴티티를 잃지 말아야 한다.


한강공원, 서울월드컵경기장의 CI와 색채 계획, 사이니지, 시설물 등 통합적 환경 디자인을 비롯해 서울 송파구 도시 디자인 가이드라인 등 환경 디자인 영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모든 디자이너는 환경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환경까지 고민하는 것이 곧 디자이너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그동안 많은 공공 프로젝트의 CI와 BI, 색채 계획 등을 하면서 공공장소를 토목 개념으로만 바라보았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앞으로는 정부가 환경 디자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법제화해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보탬이 되고자 환경 디자인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다.

많은 환경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행착오도 수없이 겪었을 것이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나름의 기준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이고, 그래서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디자인을 프로세스로 인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디자인 가이드가 일정 기간 이상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하고 나면 나중에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 바뀌기도 하고, 애써 만든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지속적이고 꾸준한 디자인 가이드 유지와 보완, 사용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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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 한성백제역

디자인 마스터플랜 디자인그룹메카(대표 류인철)

http://designgroupmecca.com/kor/main/
클라이언트 서울시(시장 박원순)  

건축 디자인 이가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 임태희)

http://www.archiega.co.kr/
시공 포스코건설(대표 이영훈) 

http://poscoenc.com/

글 오상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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