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쿤의 극딜 타임, 무대를 완벽히 사로잡다

조회수 2020. 7. 15. 11:50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Bakoon Products CAP-1001

이 제품을 사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손에는 학창시절 들고 다니던 네모 도시락만한 작은 앰프 한 대가 들려 있었다. 이 작은 기기 CAP-1001에 끌려서 지갑을 열게 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몇 주 전 바쿤 프로덕츠의 CAP-1004라는 멀티 커브 포노 앰프에 관심을 갖고 오디오 숍에 방문 청음을 하게 되었다. 혼 드라이버가 장착된 3웨이의 듬직한 스피커에서 울리는 웅장한 음향에 ‘이야, 좋구나!’ 감탄하고는 거기에 연결된 케이블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니 이 검정색 꼬맹이(?)가 포착된 거다.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은 ‘내 귀가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시청실에 눈속임이 있는 것이겠지?’였다. 그래서 물어봤다. ‘지금 어떤 앰프로 구동하고 있나요?’ 시청실 관계자는 ‘바로 저 CAP-1001입니다. 전원부 분리형의 작은 8W짜리 앰프입니다.’ 도저히 나의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10분 후 나는 마법에 걸린 듯이 폰뱅킹의 비번을 누르고 있었다.



이야기가 거기서 끝이라면 그저 쓸 만한 오디오 앰프를 하나 구입한 것으로 끝났을 테지만 잠시 후 손에 받아든 꼬맹이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바쿤의 고급 기기들을 청음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래도 만듦새는 신경을 썼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 껍데기(?)만 봐서는 허망했다. 아까 느꼈던 그 사운드가 내 방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도박과 같은 기대감과 불안감을 함께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로 3.3m, 세로 3.3m의 나의 음악 감상실에서 주로 하는 작업은 레코드의 사운드를 비교하는 것이다. 어떤 세팅으로 들었을 때 악기와 보컬의 사운드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소리를 내주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인터넷 직구로 구입한 중국산 DC 24V 리니어 전원부를 연결하고 신입생 검정 꼬맹이를 극한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우선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1악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관전 포인트는 오케스트라의 총주(Tutti)에서 금관, 목관, 현악기의 소리가 찌그러지지 않고 각각 분리되어 나오는지, 또 다이내믹의 변화에 따라 음색의 감퇴 혹은 왜곡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주의 깊게 들어보기로 했다. 이런 걸 요즘 말로 극딜(極Deal)이라고 한다. 

존 바비롤리의 지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로 1969년 7월에 영국 런던의 와트포드 타운 홀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절묘한 다이내믹의 변화와 구성을 통해 바비롤리 특유의 폭발적 에너지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대비되는 명연주다. 하지만 오디오 시스템의 성능이 시원치 않다면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리기 쉽고, 해상도가 떨어지는 경우 매우 둔탁한 소리가 되어 말러 특유의 세기말적 감성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오늘 극딜의 기대는 ‘해상도, 질감, 다이내믹 등에서 절반 정도만 만족하면 아쉬운 대로 써야지’였다. 껍데기의 왜소함은 있더라도 구입 가격만큼만 해 주어도 만족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곡의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의 서주에서는 미묘한 음색과 다이내믹의 변화가 하나하나 변화하는 것이 시시각각 포착되고, 오케스트라의 스테이지는 좌우와 앞뒤로 넓게 자리 잡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보통은 하나의 클러스터처럼 뭉쳐서 들리는 목관 악기의 앙상블이 흘러나온다. 마치 이 음반을 처음으로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바순과 더블 바순이 함께 연주하는 패시지에서 그 특유의 음색과 음정들이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온다. 트럼펫이 리드하는 선율적 움직임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현악기와 호른의 리듬과 앙상블, 그리고 스네어 드럼이 연주하는 트릴의 작은 변화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너무 신기해서 처음부터 다시 들어 본다. 음악 대학 신입생 때로 돌아가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특히 좋았던 점은 호른 파트 특유의 복잡한 배음으로 만들어진 사운드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2m나 되는 긴 금속관을 가진 이 악기의 울림을 제대로 잡아주는 오디오는 정말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쯤 되니 이 검정 도시락을 가지고 오면서 느꼈던 불안감이 깨끗이 사라지고 커다란 만족감이 자리 잡았다.

사실 비교를 위해 원래의 메인 시스템으로 같은 음반을 들어보았었기에 놀라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좋은 소리를 위해 상시 전원 상태로 최적화되어 있었던 녀석이었다. 광대역으로 뛰어난 응답성과 제동력으로 고해상도의 충실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라는 호평을 받는 모 제품은 스피커 제어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바쿤의 소형기에 비하여 경직된 사운드이다. 대음량에서 폭발적 쾌감을 주는 반면에 자연스러운 배음이나 자연스러운 소리의 사라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오디오는 취향이니 그 취향에 따라 호 불호가 생긴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나의 오디오 선택 기준이 되는 요소들은 그렇게 감성적이지 않기에 이후 두 번의 비교 청취를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결국 나의 메인 시스템은 박스에 포장되어 뒤쪽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오디오를 바꾸면 전에 못 듣던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노라 존스의 첫 앨범에 수록된 ‘Don't Know Why’를 들으며 그동안 존재감도 잘 못 느꼈던 제시 해리스(Jesse Harris)의 멜로우 사운드의 기타를 듣게 되기도 한다. 단순한 밴드 멤버로서의 기타도 아니고 솔로를 맡은 것도 아니지만 이 그래미상 수상 경력의 아티스트는 보석처럼 세공한 사운드를 노라 존스의 보컬 아래에 별것 아닌 것처럼 깔아놓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주목한 적 없었던 스트링의 덤덤한 퉁김이 자꾸 나의 명치끝을 간지럽힌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다.



가끔 카페나 블로그에서 바쿤 프로덕츠의 사트리(Satri) 회로에 대한 홍보 글을 보긴 했지만 큰 열성을 들여서 읽어본 적은 없었다. 요약하자면 기존 앰프의 전압 증폭 방식 대신 전류 증폭 방식을 사용하는 앰프라는 것인데, 게인 조절이 그것에 대한 단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음량을 크게 올리면 노이즈는 더더욱 커지는 것이 기존 오디오의 숙명인데 바쿤 프로덕츠의 CAP-1001은 소스 자체에서 가지고 있는 노이즈 외에 다른 화이트 노이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볼륨을 5시 방향까지 최대한 올렸는데도 말이다.

소장하고 있는 10여 종의 스피커와 매칭을 해 보았다. 분명 채널당 8W의 출력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스피커를 음악적으로 부족함 없이 표현해준다. 음압이 낮고 구동이 어렵기로 유명한 ATC SCM20에서도 매력적인 음색으로 신나는 그루브가 흘러나왔다. 빈티지와 모던 스피커를 가리지 않고 울려준다. CAP-1001은 스피커의 구조에 따른 특성도 제각각 살려주는 것은 무척 놀랍다. 각각의 스피커마다 타고난 개성과 고유 음색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잘 보여준다. 단점을 꼽자면 음압이 낮은 스피커를 큰 음량으로 휘몰아칠 때는 음이 찌그러진다(클리핑 현상). 출력이 낮은 앰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때는 ‘아~ 이 앰프의 출력이 여기까지가 한계구나’ 하면서 볼륨을 조금 내리고 30초 정도 기다리면 다시 정상적인 소리가 나온다.

넓은 공간에서 큰 음량을 원한다면 음압이 높은 스피커와 매칭하면 된다. 혼 드라이버를 장착한 고감도 스피커를 입수하여 매칭해 보고는 당당한 사운드에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클리핑이 말끔하게 해결된 것이다. 작은 방에서 사용한다면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스피커와의 매칭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오디오의 외관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선택하기 힘들겠지만 입문용 가격의 앰프로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얼마 전에 시간을 내어 바쿤매니아 수입원 시청실을 방문했다. 가끔씩 즐겨듣는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We Get Requests> 앨범에 수록된 ‘You Look Good To Me’를 KEF의 LS50과 연결하여 들어 보았다. 착색 없는 담백한 소리로 더블 베이스의 묵직한 저음과 드럼의 그루비한 리듬이 활력을 더해 정말 즐겁고 흥이 나는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이 작은 녀석이 정말 기특하구나’ 하는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바쿤 프로덕츠의 플래그십 앰프도 잠시 들어 보았는데, 두툼한 질감과 묵직한 무게감으로 중후한 스테이징이 이루어져 고급스러운 느낌은 들었지만 CAP-1001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만큼은 아니었다. 

오디오의 행복감은 가격 대비 음질에서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일까? 껍데기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내게는 소스에 담긴 음악에 인위적인 가공을 더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사운드를 표현하는 CAP-1001과의 만남이 나의 오디오 라이프에 커다란 변곡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곽영호). 

수입원 바쿤매니아 (070)4065-7500

가격 115만원

실효 출력 8W 아날로그 입력 RCA×1, Aux(3.5mm)×1 헤드폰 출력 지원(3.5mm) 전원 DC 24V 외부 전원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