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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조회수 2018. 12. 24.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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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의 방식, '치매 커밍아웃'

비교적 가벼운 1기에 발견되었던 엄마의 치매가 어느덧 말기에 다다랐다. 엄마를 10년 동안 보살핀 딸이 이제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엄마, 다른 건 다 잊어도 나는 잊지 말아요.”

치매 환자인 엄마를 돌보는 건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배웠던 삶의 지식을, 무한히 받았던 사랑을, 되갚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치매 엄마를 보살피는 과정은 고달프지만 그 시간을 통해 더 큰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덧붙인다. “내 인생의 가장 오랜 친구, 엄마가 기억을 잃는다면 이제는 내가 엄마를 기억할게.”


- 영화감독 하윤재 에세이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中에서

“내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이 병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치매로 고생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이해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국민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치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당시에는 누구나 치부라고 여기던 치매를 커밍아웃한 것이다. 그 결과 국립 알츠하이머병 재단과 로널드 낸시 레이건 연구소가 생겼고, 치매 연구를 위한 사회적 기부가 급증했다. 그의 고백이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도, 마가릿 대처도,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윈스턴 처칠도 모두 치매에 걸렸다. 우리도 언젠가는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새로운 삶의 방식,
‘치매’ 커밍아웃

우리 사회는 치매로 진단받는 순간 평생 살아온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죽을 때까지 떳떳하게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감옥’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치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가 온다.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치매 커밍아웃, 이것은 치매를 극복하기 위한 세계적인 트렌드다. 초기 단계에 치매를 커밍아웃하면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치매는 조기 발견이 굉장히 중요하다. 조기에 치매를 발견해서 진행 속도를 늦추면 초기 단계를 5~10년으로 늘릴 수 있고, 자연스레 중기, 말기 단계는 짧아진다.

고령사회 아니라 ‘치매사회’…
‘흔한 질병’ 인식전환 필요

한국은 세계에서 치매 환자가 가장 빨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치매사회를 목전에 두고도 우리는 치매를 ‘흔한 질병’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제 고령사회가 아니라 치매사회를 대비해야 하는 지금,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치매(癡呆)’는 의학적 병명이 아니라 멀쩡한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 지능·의지·기억 따위가 상실되어 정상이 아닌 상태를 말한다. 이미 일본, 홍콩, 대만에서는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치매로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60~70%)와 혈관성 치매(20~30%)가 있다.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이상 단백질이 쌓여서 뇌세포를 죽이는 것으로, 매우 서서히 발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혈관성 치매는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 말 그대로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와 혈관성 치매 모두 아직까지 완치 단계의 치료법은 없다. 하지만 충분히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상을 완화시킬 수는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20대 중반부터 독성물질이 뇌에 쌓이기 시작하며 발생한다. 즉 20대부터 건강한 생활을 하는 것이 치매 예방에 중요하다. 술·담배를 멀리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우울증 관리도 잘하는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들여야 한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뇌혈관 질환을 불러일으키는 위험 요인을 미리 차단하면 예방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10명 중 1명은 치매…
6년 뒤 치매인구 100만명 넘어

보건복지부의 2012년 65세 이상 노인 치매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2010년에 47만명이던 우리나라의 치매인구는 2015년 65만명으로 늘었다. 17년마다 2배씩 증가해 2024년에는 100만명, 2041년에는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6년 뒤에는 100만명이 넘는 치매인구와 함께 사는 ‘치매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그 증가율이 무려 423%(2015~2050년)다. 이 흐름대로라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2030년이 되면,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국민은 단 한 명도 없게 된다.

치매 발병률은 인구 1,000명당 연간 7.9명으로 매 12분마다 1명의 치매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10명 중 4명은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증상을 보였다. 특히 독거노인의 경우에는 치매 유병률이 일반 노인에 비해 2.9배나 높았다. 독거노인은 사회적 교류가 적어 인지능력이 일반 노인보다 빠르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치매 유병률은 나이와 상관관계가 높아서, 65세를 기준으로 나이가 다섯 살 늘어날 때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 즉 65~70세 노인 가운데 치매 환자는 100명 중 2~3명꼴이지만, 70~75세가 되면 4~6명으로, 75~79세가 되면 10명 중 1명꼴로 급속히 증가한다. 80~84세가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져 5명 중 1명이, 85세가 넘으면 2명 중 1명이 치매로 고통받게 된다.

급증하는 치매 관리비용…
내문제 우리문제로 받아들여야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치매 때문에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 2015년에는 8,180억 달러(한화 약 968조원)에 달했고, 2030년에는 무려 2조 달러(한화 약 2,367조원)로 늘 것이라고 한다. ‘치매 쓰나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치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 2012년에는 10조 3,000억원, 2040년에는 78조원이 들 것이라고 한다. 이는 국가 예산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50년에 세계의 치매 인구는 1억 3,0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더 이상 치매는 개인의 질병이 아닌 이미 하나의 트렌드, 글로벌 현상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치매를 ‘흔한 질병(Common Disease)’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치매사회를 목전에 두고도 우리는 치매를 ‘흔한 질병’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여전히 치매는 개인의 문제이고,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남의 일’이며, 호환·마마·전쟁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고 숨겨야 할 일이다.

치매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데에는 치매환자 하면 떠오르는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이미지도 한몫한다. 사랑하는 가족도 못 알아보고, 대소변도 못 가리며, 소리치고 난동 피우는 극단적인 말기 상태의 치매 형태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태의 환자는 극히 드물며 초기·중기 단계의 치매 환자들이 훨씬 많다. 

이제 치매사회는 원하지 않아도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우리의 미래다. 고령사회가 아닌 치매사회를 대비해야 하는 지금,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치매에 걸린 누군가를 돕는 선의의 행동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치매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내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치매 문제가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함께 겪는 ‘우리의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규열

※ 머니플러스 2018년 11월호(www.fnkorea.com)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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