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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와 나는 달라졌다

조회수 2020. 5. 25. 0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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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벽 그리고 장벽..

시골집에는 담이 있었다. 까치발을 서면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집에 살았다. 우리집 담은 흙과 울퉁불퉁한 돌들 그리고 그 위에는 자그마한 기와가 씌어져 있는 담이었다. 여름에는 넝쿨들이 담을 타고 올라와, 담의 흙에 뿌리를 박으며, 담을 더 단단하고 화려하게 했다. 하지만 담은 단순히 눈요기만은 아니었다. 담은 집안과 바깥세상을 분리하는 명확한 존재였다. 높이가 1.5m도 채 안 되는 낮은 담, 그것은 어쩌면 ‘안’사람들과 ‘바깥’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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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城)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북방 초원을 석권한 돌궐의 명장 아시테 투뉴쿠크(646~726)의 비문에 적힌 말이다. 벽을 세워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이 같은 가르침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한데 깨달음과 현실은 달랐던지 인류는 문명이 됐을 때부터 벽을 쌓기 시작했다. 목책에서 석축, 성벽으로 이어지다 마침내 광대한 지역을 가르는 장벽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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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장벽을 쌓기 시작하고

벽은 ‘자신들’과 ‘저들’을 구분 지음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도출해 내는 데 꽤 유용한 도구다. 파리 코뮌이 그 예다. 사람 위에 사람 있는 현실을 혁파하기 위해 코뮌 전사들은 바리케이드에 의지해 서로를 격려하며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웠다. 이후 벽은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테오도시우스 성벽도 비슷한 경우다. 밀려드는 적을 맞아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 시민들 스스로가 성벽의 일부가 됐을 만큼 동로마제국의 신화를 수호하는 방패이자 희생과 저항의 버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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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벽은 ‘너’와 ‘나’,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가장 확실하고 폭력적인 장치로 기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들은 폴란드의 바르샤바 게토 등 여러 게토에 갇혀 근근이 목숨을 이어 갔다. 그중 다수는 홀로코스트 열차에 올라타야 했다. 그러나 이런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이 세운 이스라엘은 21세기 들어 자신들이 몰아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분리 장벽 속에 가두는 전철을 밟고 있다. 호주의 토끼 장벽도 비슷한 사례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토끼를 막기 위해 세운 장벽이 종국엔 원주민 차별의 상징적인 장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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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두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장막을 드리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버린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이다. 군사분계선은 우리에게 ‘냉전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피해를 안겼다. ‘열전’과 달리 ‘냉전’ 중에는 적과 피 튀기는 싸움이 없다. 대신 불안과 공포가 일상에 자리를 잡는다. 이런 불안과 공포는 필연적으로 ‘내부의 적’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조금만 자신과 ‘다르’면 ‘틀리’다며 빨갱이, 적폐라고 헐뜯는다. 오랫동안 ‘북풍’에 적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존립해 온 권위주의 세력이나 민주화 운동 진영 모두 이런 냉전 문화에 젖어 있다. 늘 긴장이 깔려 있지만 겉보기로는 평온이 지속되는 냉전의 장벽은 이렇듯 아군을 분열시킨다. ‘남남갈등’, ‘보혁대립’, ‘남혐여혐’이 모두 군사분계선과 이를 둘러싼 비무장지대 248km(155마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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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마음, 견고한 장벽이 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터키가 시리아·이란과의 경계에, 중국이 북한과의 경계에 각각 장벽을 세우고 있다. 전 국민이 부자로 살아가는 보르네오섬의 작은 나라 브루나이에도 외지인을 막는 20㎞짜리 장벽이 세워졌다. 이밖에도 중국-홍콩 장벽,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평화선, 스페인 세우타-멜리야 국경선, 헝가리-세르비아 국경 장벽, 키프로스 그린라인, 인도-파키스탄 국경선, 이란-파키스탄 국경선, 웨스트뱅크 장벽, 이라크-쿠웨이트 장벽, 사우디아라비아 오일펜스, 모로코 장벽,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리우데자네이루 산림보호(?) 장벽, 보츠와나-짐바브웨 위생장벽 등 세계 곳곳에 장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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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벽은 물질적 장벽에 그치지 않는다. 난민장벽, 무역장벽, 자유로운 정보 이동을 차단하는 가상의 공간에 세워진 사이버 장벽, 여기에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려는 보건장벽에서부터 혐오와 배제에 이르는 차별적·심리적 장벽까지…. 인류는 줄기차게 벽을 쌓고 또 무너뜨리면서 역사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벽들을 세웠다가 무너뜨리곤 한다.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과 학살, 저항과 희생, 두려움과 배제의 역사 속에는 이러한 벽들의 존재가 아로새겨져 있다. 벽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두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뚜렷한 심리적 장막, 더 나아가 상흔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벽을 구성하는 것은 재료인 흙이나 벽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인종·종교·정치·경제·문화적 배경과 그것과 한데 어우러진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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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를 둘로 나누지만 결국 두 세계를 모두 사로잡는 벽의 아이러니. 때로는 숭고할 정도로 감동적이고, 때로는 역겨울 정도로 파렴치한 벽. 국제사회가 ‘세계를 하나로’라는 표어를 허울삼아 다국적 기업이 배불릴 시절을 지나 글로벌 같은 것은 벗어던지려는 요즘, 우리는 ‘쌓아 올릴 것인가?’ 아니면 ‘무너뜨릴 것인가?’ 비로소 이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이규열 기자(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벽이 만든 세계사 | 함규진 | 을유문화사

※ 머니플러스 2020년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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