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때 그 '약'이 있었다면

조회수 2020. 5. 15. 15: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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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라는 창과 '약'이라는 방패

약을 찾아 헤매는 건 질병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신석기시대 미라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자작나무버섯은 편충 치료제로 밝혀졌다. 인류는 모든 재료를 구사해 약을 만들어왔다. 마구잡이 채취 시절부터 바이오 기업까지 신약 개발이 성공할 확률은 0.1%에 불과하다. 페니실린, 아스피린, 인슐린 등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들은 그런 어려운 연구 과정을 거쳐서 실용화된 ‘꿈의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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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처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중국 전역과 해외 주요 국가들에 침투해 빠른 전파력으로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창궐하는 공포의 시기에는 믿기 어려운 음모론적 주장도 퍼지기 쉽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에 직면했을 때는 다시 한번 진위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인간의 역사는 생존을 위해 무수한 질병과 싸워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를 오랫동안 위협한 것들은 덩치 큰 사자나 호랑이 따위가 아닌 세균, 바이러스, 미생물이나 진드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이었다. 이 작은 것들이 만들어낸 각종 전염병에 인류는 오랜 세월 큰 고통을 받았다.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후유증도 컸다.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도 많았다.

믿음이 너를 치유케 하리라?

최초의 약은 가짜 약이지 않았을까? 실제 약효가 통했다기보다는 약에 대한 믿음이 만든 플라시보 효과가 약을 약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좋은 약’을 만들게 됐다.

인류는 아직 만병통치약과 만능해독제를 발명하지 못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질병에 있어 단 하나의 궁극적인 원인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예전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이유와 황당한 재료들이 모여 만병통치약과 만능해독제라는 이름으로 ‘발명’되곤 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엉터리 약들이 오랫동안 효험 있는 묘약으로 군림했다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와 종교적 신념, 의학적 권위 그리고 명성이 엉터리 약을 진짜 약처럼 만들었다. 특히 진통 효과가 있는 아편을 넣은 약은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아프지 않으면 나은 것’이라고 환자들은 쉽게 믿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들

인류 역사는 질병과 약의 투쟁 역사다. 괴혈병, 말라리아, 매독,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 날카로운 창처럼 인류를 위협하면 비타민C, 퀴닌, 살바르산, AZT(아지도티미딘, 에이즈 치료약) 같은 약이 기적적으로 등장하여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들 말하지만,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면 역사는 좀 더 흥미진진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인류 역사의 몇 가지 장면에 ‘만약’을 대입해보자.

비타민C
: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지은 위대한 약

대항해 시대에 괴혈병은 뱃사람들에게 거센 풍랑이나 해적의 습격보다 치명적이었다. 인류는 비타민C의 발견으로 괴혈병이 초래한 끔찍한 비극에서 영원히 해방되었다. 18세기 후반, 제임스 쿡 선장은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하여 영국이 최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비타민C는 쿡의 항해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가장 위대한 공헌자였다.
퀴닌
: 인류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 말라리아 특효약

투탕카멘왕과 알렉산드로스 대왕, 단테와 크롬웰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 수많은 교황과 추기경들을 쓰러뜨린 질병. 지금까지 태어난 인류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질병. 말라리아다. 이 병의 위협에서 인류를 구해낸 것은 페루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키나 나무껍질로 만든 퀴닌이었다.
모르핀
: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닌 약

원자 40개 덩어리 모르핀은 인류를 끔찍한 통증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인생을 파괴하는 무서운 약이 된다. 19세기에 모르핀이 원인이 되어 청과 영국이 맞붙은 아편전쟁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모르핀 원자 구조가 하나라도 달랐다면 세계지도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바르산
: 저주받은 성병 매독을 물리쳐준 구세주

에를리히 연구팀의 하타 사하치로가 불굴의 의지와 놀라운 끈기로 개발한 606번째 비소 화합물 살바르산. ‘구세주’를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살바토르(Salvator)’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매독 치료제로 사용한 수은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1910년 처음 발매된 살바르산은 위험한 가짜 약 수은을 의약품 목록에서 몰아냈으며, 수많은 매독 환자를 죽음의 늪에서 건져내 주었다.
페니실린
: 세계사를 바꾼 평범하지만 위대한 약

1928년 스코틀랜드 출신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개발한 페니실린. 비티만C와 함께 인류사를 뒤바꾼 가장 중요한 약 중 하나로 꼽힌다. 특수한 푸른곰팡이를 배양하여 만든 기적의 약 페니실린은 1941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만 50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으며, 수많은 사람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
아스피린
: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약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은? 진통·소염제 아스피린이다. 생산량은 5,000mg 알약 기준으로 1,000억 알 분량이며, 지구에서 달까지 한 번 반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1899년에 처음 출시된 아스피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내몰리던 1920~30년대에 특히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으며, 역사가들에 의해 ‘아스피린 에이지’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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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약이 발견되지 않았으면 인류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생존을 위해 환경으로부터 맞서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해준 수많은 약들, 변화하는 환경 속에 지금도 여전히 안정성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신약들, 신이 만든 자연과 인간이 변화시킨 환경, 그로 인한 또 다른 새로운 질병들, 현 시점의 어떤 약이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약이 될 수 있을까.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약이 하루빨리 개발되기를 기대해본다. 


이규열 기자(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 사토 겐타로| 사람과나무사이

※ 머니플러스 2020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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