育兒? 育我! 부부가 부모가 될 때

조회수 2020. 3. 9. 10: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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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인생이었다. 학생이었을 때는 공부, 취업해서는 일에 몰두했다. 아이를 낳고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어느 날, 진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부모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부모 사람’으로 일과 육아, 내 인생을 즐기고 있다.

우리는 꽤 괜찮은 부부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왜 ‘무덤’에 비유했을까?

“사람은 판단력의 결여에 의해 결혼하고, 인내력의 결여에 의해 이혼하고, 기억력의 결여에 의해 재혼한다.”
(알망드 클루)

“3주일간 서로를 연구하고, 3개월간 서로를 사랑하며, 3년간 싸우고, 30년간 참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테누)

“전쟁터에 가기 전에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가게 되면 두 번 기도하고, 그리고 결혼 생활에 들어가기 전에는 세 번 기도하라.”
(러시아 속담)

“결혼은 좋은 겁니다. 저는 결혼을 하면서 비록 한 가지를 잃었지만, 5만 가지 이상을 얻었습니다. 뭘 잃었느냐고요? 저 자신이요.”
(유재석)

결혼이 무덤이 되는 이유는 ‘부양의 책임’ 때문이 아닐까? 결혼한다고 대출도 잔뜩 받았고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도 생기니 열심히 벌어서 빚도 갚고 부양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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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란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는 정시에 퇴근하기로 약속한다. 말은 간단하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게 실천하기는 어렵다. 아이와 함께 있고 싶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찍 퇴근하지 못한다. 요즘 아빠들, 아이를 같이 키우고 싶어 한다. 숙명여대 조벽 교수의 표현처럼 ‘아부지(我不知, 나는 모른다)’가 되고 싶어 하는 아버지는 없다. 누구도 자식에게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양육에 참여한 아이들은 스트레스와 실패를 견디는 힘이 더 크고 자신과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아버지 효과(Father Effects)’ 정도는 알고 있다.

아빠들이여, 최소한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매주 일요일을 아이와 함께 보내라. 흔히들 엄마의 모성애를 말하지만 아빠에게도 만만치 않은 부성애가 있다. 겁나는 건 아이를 열 달 품고 있던 엄마도 똑같다. ‘내가 대체 무슨 용기로 엄마가 됐을까?’ 하고 머리를 쥐어뜯은 게 수십수백 번은 될 거다. ‘육아 프로젝트’, 준비된 아빠는 없다. 달려들어 익숙해진 아빠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뛰어들어라.

장담하건대 한번 육아에 뛰어들면 더 깊이 빠져들 것이다.

육아란, ‘나’를 먼저 돌보는 마음

부모가 되니 아이가 웃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하려고 ‘몸개그’까지 불사한다. 그런데 한 선배 부모가 그런다. 아이를 웃게 하려고 애쓰지 말고 너부터 웃으라고. 맞는 말이다. 내가 웃으면 아이도 웃는다. 내가 즐거울 때 아이도 즐거워한다.

엄마들이 우스갯소리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 누가 나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누가 나를 챙겨주길 바란다면 그 ‘누가’는 ‘나’여야 하지 않을까. 가족 모두가 자신을 챙기는 가족이 건강하지 않을까?

스웨덴의 부모법에는 자녀가 18세가 되면 부모는 부양의 의무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스웨덴 부모들은 자식이 성인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독립심을 키워준다고 한다.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면서 부모도 독립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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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토니 험프리스는 가족의 1차 기능은 “가족 개개인의 잠재적인 소질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자아실현의 출발은 개인이 지닌 타당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육아는 한자로 育(기를 육) 兒(아이 아)를 쓴다. 어린아이를 키운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육아를 통해 내가 자라는 것이어야 한다. 育(기를 육) 我(나 아)이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육아(育兒)가 가능한 게 아닐까? 


이규열 발행인 겸 편집인

※ 머니플러스 2020년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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