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시간 여행을 한다면

조회수 2019. 9. 13.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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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해 저축해야 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는 시간 여행, 일명 ‘타임슬립’은 흥행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후회스러운 현재가 못마땅하면 과거로 돌아가 예전의 나를 바꾸기도 하고, 혹은 미래의 나로 찾아가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만일 우리 각자에게도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딱 한번 주어진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 돌이키고 싶은 과거로 가고 싶은가, 아니면 남들보다 먼저 미래로 달려가 보고 싶은가.

미래로의 타임슬립, 저축의 핵심

‘어바웃 타임’(About Time,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2013년에 개봉한 대표적인 타임슬립 영화로 모태솔로인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팀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으로 이동해서 눈을 감은 채 가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그때로 갈 수 있게 된다. 큰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여자 친구를 사귀거나 부모님의 젊은 시절로 가보는 등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참으로 부러운 능력이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이 흥행 요소이지만, 저축을 잘하기 위한 시간여행을 묻는다면 단연 미래로의 타임슬립을 들 수 있다. 미래의 나와 얼마나 친한가에 따라 저축을 실천하는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대의 사회심리학자 할 허시필드 교수는 '꾸준히 내일을 생각하라: 자기 연속성의 개인차가 저축량을 말해준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허시필드 교수는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에게 10년 뒤 자기 모습을 생각하도록 한 후 뇌를 관찰하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찍었다. 그는 자신을 생각할 때와 남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활용하여 실험자들의 뇌 부위를 관찰했는데 결과가 참 놀랍다. 피실험자 상당수가 10년 뒤 자기 모습을 상상할 때 남을 생각하는 뇌 부위와 동일한 곳이 활성화된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다니.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오늘의 나만 내 인생이고 미래의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고 판단해 버린다는 의미다. 미래의 나, 즉 내일을 위해 저축해야 한다라는 말이 좀처럼 통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우리 뇌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개인차는 분명히 있었다. 심지어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거의 똑같이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결과는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도가 큰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은행의 저축액이 최대 2.5배나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이 저축액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물론 저축을 잘하기 위해서는 물욕에 대한 절제력이 기본임은 익히 공감하지만, 이 실험은 절제력 외에 미래의 나를 바라보는 능력이 저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깨닫게 해 준다.

미래의 나를 바라보는 능력

심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미래의 큰 보상보다 당장의 작은 보상을 더 선호하는 성향을 ‘지연 가치폄하(delay discounting)’ 효과라고 부른다. 미래에 받는 보상보다 지금 당장 누리는 즐거움에 더 끌리는 지극히 솔직한 인간의 심리이다. 건강식보다는 패스트푸드를, 힘겨운 운동보다는 편안한 휴식을, 절제를 통한 저축보다는 충동구매를 더 선호하는 우리의 민낯이다. 허시필드 교수의 또 다른 실험은 우리의 ‘지연 가치폄하’ 심리를 개선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그는 논문의 내용과 연장선 상의 또 다른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피실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가상현실의 방 안에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늙은 미래 모습을 들여다보도록 했고 다른 한 집단은 거울에서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게 했다. 이때 사용했던 늙은 모습은 피실험자들의 사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변조해 만들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험 방에서 나온 후에 벌어진다. 방에서 나온 피실험자들에게 1천 달러를 주면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

결론적으로 자신의 늙은 미래 모습을 본 이들의 상당수는 그 돈으로 노후자금에 적립하겠다고 답변했다. 그 적립금이 현재 모습을 본 그룹에 비해 2배나 더 많았다고 한다. 적어도 내 눈으로 생생하게 바라본 늙은 나를 위해 보다 많은 돈을 저축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테다. 결국 미래의 나를 바라보는 능력이야 말로 ‘지연 가치 폄하’ 심리를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였던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의 저축 사이즈와 미래를 바라보는 능력이 상당 부분 비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나의 통장잔고, 은퇴자금의 액수는 미래의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임을 직시하는 능력의 실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신의 통장잔고는 어떠한가. 아니 당신의 미래를 바라보는 능력은 어떠한가. 혹시 지금 저축에 대한 동기력이 사라졌거나 노후자금을 중도에 깨고 싶은 고민에 빠져 있는가. 오늘 당장 자기 사진에 주름살을 가공해주는 무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보기를 추천한다. 미래로의 강제 여행을 하게 될 테니.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걸자

‘부의 감각’(청림출판, 2018)을 쓴 댄 애리얼리는 미래의 나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 직업에서 은퇴했을 가능성이 큰 55세의 나와, 자녀를 독립시킨 후 60세의 나와, 그리고 몸도 마음도 연약해져 있을 70세의 나와 말이다. 그러다가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거의 ‘내’가 매달
100만원씩 돈을 보내준 덕분에
오늘의 ‘나’는 그동안 하고 싶던
취미생활로 인생을
채워가는 군.
사는 게 너무 행복해.
젊은 ‘너’ 정말 멋져.”

어떤가.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현재의 인생을 있는 대로 몽땅 희생해서 미래의 인생에만 투자한다면 그것은 명확한 치우침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미래의 나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거는 것이야 말로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모두 행복해지는 지름길이 아닐까. 자주 들여다보는 다이어리나 지갑에 30년 뒤의 내 사진을 붙여 놓으면서 시각적인 효과도 꾀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자주 대화를 건네자.   


박유나 재무심리전문가

※ 머니플러스 2019년 10월호www.fnkorea.com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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