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 '중국'.. 한국인 내쫓기는 대림동
세계적인 관광명소 ‘LA 차이나타운’은
160여년의 역사를 지녔습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중국 이민자들의 일상은 하나의 이색문화이며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관광상품이 됐습니다.
외식과 쇼핑을 위해 수많은 외지인이 찾는
차이나타운의 전통가게와 음식점, 예술품 등은
특색 있는 상권이자 경제·문화의 중심입니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일본 요코하마.
세계 주요도시마다 이런 ‘도시 속 작은 중국’이 있습니다.
각국의 차이나타운은
아편전쟁과 중국인의 이주 역사를 따라 번성한 반면
한국은 구한말 이후 화교경제가 쇠퇴했습니다.
한중무역 단절과 화교에 대한 차별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인천과 부산 등 바닷가 도시의
차이나타운은 비교적 큰 규모로 형성됐습니다.
‘서울의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면
주한 중국대사관이 있는 명동이나
‘공단 도시’ 가리봉동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림동에 중국인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중국인 대부분이 불법체류 신분이던 2000년대를 벗어나 2005~2006년 한국정부의 외국인 자진출국제도,
2007년 방문취업제도 시행으로
가리봉동의 중국인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상권이 활기를 띠면서
가리봉동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인근 대림동으로 차이나타운이 확장됐습니다.
◆한국인 내쫓기는 역차별… 젠트리피케이션
대림1동은 상가보다 주거지가 많습니다.
곳곳에서 아파트 재건축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대림3동은 보다 빠르게 개발이 이뤄진
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 주변입니다.
상대적으로 서울의 동네에 가깝습니다.
흔히 대림동 차이나타운이라고 말하는 곳은
거의 대림2동입니다.
지하철 2·7호선 대림역에서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방향으로
골목골목 낡은 가게가 줄을 잇고
중국 전통상권이 발달했습니다.
대림동은 2000년대 들어 원주민 인구가 줄어들고
이주민 인구는 늘어났습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대림2동의 등록 외국인 수는
2000년대 초반 89명에서 지난해 9240명으로
18년새 100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이 중에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포함되지 않아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반면 내국인 수는 대림2동 기준
2000년 2만4254명에서
지난해 1만2758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거의 절반 수준까지 줄어든 셈입니다.
대림2동에 있는 서울대동초등학교는
지난해 신입생 70명 중 54명이 다문화가정 자녀였습니다.
대림동의 차이나타운화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중국 이민자들의 경제적 성공과
본토 중국인들의 전입이 큰 이유로 꼽힙니다.
상권이 발달하며 부를 축적한 자영업자가 늘었고
과거엔 식당일을 하는 조선족이 많았지만
최근엔 고등교육을 받은 중국 대기업 직원들이 들어와
중국인의 한국 이주를 돕고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에 대한 편견은
비단 대림동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뉴욕 차이나타운 ‘플러싱’(Flushing)은
‘수세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곳은 코리아타운이기도 한 동시에
여러 아시아 이민자가 밀집한 동네입니다.
플러싱 지하철역 안 곳곳에는
‘쓰레기가 문제’라는 경고문구가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로 써 있습니다.
다만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의 경우
한국에서는 특별한 법적 지위를 가집니다.
점차 다문화에 흡수돼
한국에서 조선족의 의미는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광화보다 서로 존중하는 문화 필요”
1992년대 한중수교 수립 이후
지자체들은 차이나타운 개발 프로젝트를
여러차례 추진하다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2000년대 경기 고양시와 서울 연남동의
차이나타운 개발은
자금난이나 개발이익 갈등으로 무산됐습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식 개발주의가
차이나타운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합니다.
대림동의 관광상품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삶의 터전인 그들의 이해와 충돌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귀화한 중국동포들은
차이나타운 개발이 아닌
한국화를 원합니다.
특히 자본을 축적한 중산층일수록
한국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희망합니다.
한국에 진출한 중국인 1~2세대에 비해
3~4세대로 갈수록 경제수준이 높아져
삶의 질이나 교육문제에도
보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