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유러피언 록스타 '르노' 클리오
르노 클리오. 자동차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관심이 가는 차입니다.
유럽에서는 폭스바겐 골프, 오펠 아스트라와 함께 해치백 트리오로 꼽힐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고 상품성이 충분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출시 이후 전세계에서 약 1400만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스타’ 차종이죠.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더해지면서 출시가 조금 늦었다는 평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르노삼성 엠블럼 대신 르노의 엠블럼을 그대로 달고 출시할 수 있었습니다. 과감히 르노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젯거리며 앞으로의 여러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성능, 안전, 스타일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차 클리오를 시승했습니다.
그동안 국산차업체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출시할 명분이 매우 적은 차입니다. 세계적으로 관심도가 낮아지는 세그먼트인 데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치백 차종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실패하기 좋은 조건을 골고루 갖춘 셈이죠.
하지만 수입차시장에서는 해치백의 가능성이 충분히 입증됐습니다.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아우디, 폭스바겐, MINI, 푸조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해치백 차종을 내놓고 젊은 층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르노삼성차는 클리오가 철저히 수입차임을 드러냅니다. 르노 브랜드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서울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에도 ‘아뜰리에 르노 서울’이라는 브랜드 문화공간을 오픈, 클리오 차종과 르노 브랜드 알리기에 나섰습니다.
클리오는 르노 터키공장에서 생산돼 국내로 들여오는 엄연한 ‘수입차’입니다. 이처럼 당당히 신차를 들여올 수 있었던 건 앞서 스페인공장에서 만들어진 르노 캡처를 QM3라는 이름으로 국내 출시했을 때 큰 성공을 거둔 점, 다른 회사에서 포기하다시피 한 소형 해치백시장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제품과 가격정책도 실험적입니다. 르노삼성에 따르면 상위트림인 인텐스(INTENS)는 국내출시가격이 프랑스 현지에서 판매되는 동일한 선택품목과 비교할 때 약 1000만원가량 낮습니다. 기본형인 젠(ZEN) 트림이 1990만원, 고급형 인텐스 트림은 2320만원입니다.
인텐스 트림에는 LED퓨어비전 헤드램프와 3D타입 LED 리어콤비네이션 램프, 보스(BOSE) 프리미엄 사운드시스템, 스마트 커넥트Ⅱ(T맵, 이지파킹, 스마트폰 풀미러링), 후방카메라, 전방 경보장치 같은 품목이 기본 장착됐습니다.
무엇보다 판매와 정비 네트워크에서 수입차업체와 큰 격차를 보이는 만큼 수입차 특유의 불만을 줄일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르노삼성차는 전국 230여개 판매 전시장과 470여개 서비스 네트워크를 갖췄습니다. 해외에서 충분히 검증을 거친 수입차지만 탄탄한 국내 정비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셈이죠.
국내 출시된 클리오는 5세대 1.5 dCi 디젤엔진과 게트락 사의 6단 DCT(듀얼클러치변속기)가 조합됩니다. 최고출력은 90마력(ps, @4000rpm)이며 최대토크는 22.4kg.m(@1750~2500rpm)입니다.
‘다소 힘이 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요? 직접 페달을 밟아보면 이는 금세 씻겨 내려갑니다. 차 무게(공차중량)가 1235kg여서 움직임이 꽤 경쾌합니다.
같은 파워트레인을 쓴 QM3와 비교해도 느낌이 많이 다른데요. 자세가 훨씬 낮고 차가 가벼워서 가속페달을 밟고 운전대를 돌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속에서도 공기저항이 줄어 한결 조용합니다.
클리오의 진가는 구불구불한 와인딩로드에서 드러나는데 안타깝게도 이날 시승은 비가 많이 온 뒤여서 되도록 일상의 운전상황을 가정했습니다. ㅠㅠ 그렇다 해도 날카로운 움직임은 감추기가 어렵죠!
하체 세팅은 매우 단단한 편입니다. 서스펜션의 위아래 움직임이 짧고 간결한 데다 큼지막한 17인치휠이 적용됐습니다. 게다가 차의 휠베이스가 짧아서 운전대를 돌릴 때면 차가 완전한 한 덩어리처럼 움직입니다.
고속주행도 꽤 안정적입니다. 불필요한 흔들림이 억제돼 빠르게 달려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다만 노면이 불규칙한 콘크리트 구간에서는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구간에서는 승차감이 많이 다릅니다.
타이어는 사계절용인 넥센 엔페라 AU5입니다. 원래 클리오에는 여름용 타이어가 끼워지는데 국내 수출분에는 이 타이어를 씁니다. 하이패스 ECM룸미러도 탑재되는데 이는 배에서 내린 뒤 PDI(인도 전 작업공간)에서 배선작업 등을 거칩니다.
뛰어난 연료효율도 강점입니다. 고속도로 공인연비는 리터 당 18.9km며 복합기준 17.7km입니다. 고효율 파워트레인이 적용된 데다 액티브 그릴 셔터도 적용된 덕분이죠. 고속주행 시 그릴 내부 셔터가 닫히며 공기저항을 줄여 연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르노그룹의 최신 패밀리룩을 입고 국내 출시된 클리오. 작고 단단한 ‘펀카’입니다. 물론 그만큼 실내가 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즐거움을 얻은 비용인 셈인데요. 이런저런 용도로 쓰면서 여럿을 태우는 차라기보다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개성을 강조하려는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클리오는 소형SUV와 함께 새로운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120년 역사의 르노 브랜드 엠블럼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