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달콤

호주 출신의 원어민 영어 강사인 제이슨 치초폴로스 씨(29). 

그가 호주 친구들에게 자신이 받는 월급 액수를 얘기할 때마다 친구들은 매우 놀라워합니다.

제이슨 친구 : "제이슨 너 한국에서 한달에 얼마 벌어?"

제이슨 : "밀리언 원(million won·100만원)은 넘지"

친구 : "와우! 대단한대? 그렇게나 많이 벌어?"

제이슨 : "뭔 소리야… 호주 1달러는 한국에서 900원도 안되는데 고액연봉은 무슨;;"

아메리카노 2.5

카페라떼  3

커피전문점 등에서 '아메리카노 2.5, 카페라테 3'이라고 적힌 메뉴판이나 '배송비 포함 3.5에 팝니다' 등 '천(千)' 단위를 뺀 금액을 적은 문구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일반 커피숍에서는 0을 100대1, 인터넷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1000대1로 줄여서 표기하는 것이 흔합니다.

그동안 자체적으로 줄여쓰는 번거로움 외에도 화폐 단위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최근 화폐 단위 변경을 의미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이 다시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이란 예를 들어 5만원(50000원)권의 경우 '000'을 없애고 50으로 표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상의 화폐개혁을 의미하는 리디노미네이션설까지 급부상하면서 강남 부자들의 재테크 트렌드도 변화할 조짐입니다. 화폐개혁이 원화 가치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국은 지금껏 크게 두 차례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습니다. 1953년 전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통화 가치가 폭락하자 액면금액을 100대1로 절하하고 화폐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했습니다.

△출처 : gettyimagebank

또 1962년 박정희정부는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한 재원으로 지하에 있는 현금을 꺼내고자 환을 다시 원으로 바꾸고 10대1로 신·구권을 교환했습니다.

최근 들어 리디노미네이션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가 쓰는 화폐 단위가 비현실적으로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화폐개혁을 단행한 1962년 당시 명목 국내총생산은 3650억8100만원. 50여 년이 지난 2015년 현재는 4260배 넘게 성장했습니다. 

경제 규모↑

물가↑↑↑↑↑↑

그런데 화폐 단위는 여전히 50년 전... 

리디노미네이션에는 상당한 재원이 투입돼야 합니다. 앞서 2004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 당시 정부와 한은은 화폐 제조 비용과 현금자동입출금기, 자동판매기, 각종 소프트웨어 교체 비용 등을 고려해 약 2조6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물론 비용만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산업적으로는 제지·인쇄·잉크·컴퓨터·자동판매기 등 리디노미네이션 관련 업종의 매출이 늘어납니다. 

앞서 2004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 당시 한국은행 안팎에서는 5조원 정도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 단위 숫자만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는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수리 절상'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950원짜리 상품이 0.95원이 되면

상인들이 1원 또는 0.99원으로 

물건 값 올릴 가능성 UP! 

또 물가 상승으로 총수요와 생산이 영향을 받습니다. 아울러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입니다.

전 세계 각국이 1960년 이후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횟수는 총 58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목적도 다양합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대외 위상을 높이고자, 십진법 화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정치적 통합 차원에서…. 다만 성공과 실패는 극명합니다.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그 나라의 정치·경제가 얼마나 안정됐느냐에 달렸습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는 짐바브웨가 있습니다. 무가베 정부는 전체 인구 중 0.6%에 불과한 백인이 농토 30%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2005년 백인 소유 토지를 몰수하는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원조를 중단했고 홍수와 가뭄까지 겹치면서 짐바브웨의 물가는 폭등합니다. 

 2008년 물가상승률은 2억3100만%

매일 물가가 98.6%씩 상승한 수준

대책은 극단적이었습니다. 그해 100조짐바브웨달러 지폐를 찍었고 물가동결령을 내렸습니다. 중앙은행은 지폐에서 '0'을 떼어내기 분주했습니다. 

2008년 8월 100억짐바브웨달러를 1짐바브웨달러로 변경한 데 이어 2009년 2월 또다시 1조대1이라는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화폐가 신뢰를 잃자 후폭풍을 맞았습니다. 2009년 짐바브웨에서 미니버스를 타려면 500억짐바브웨달러 지폐 60장(3조짐바브웨달러어치)을 들고 타야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공무원들이 앞장서 월급을 미국달러로 지급하라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결국 작년 6월 짐바브웨 정부는 당분간 자국 통화 유통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해 버렸습니다.

반면 성공적 리디노미네이션 사례로는 1960년 프랑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드골 정부는 대내외에 경제적 위상 회복을 과시하고자 100프랑을 1프랑으로 교환했습니다. 달러당 프랑 값을 높이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교환 기간에 대한 종료일을 못 박지 않아 사회적 불안감을 줄였고 강제 교환, 강제 예입, 예금 봉쇄, 사유재산 동결 등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불안감을 줄이고 국민 자산이 훼손되지 않게 조치하면서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1962년 신·구권 교환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