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네로는 사실 낭만 시인? 우리가 몰랐던 로마 황제'들' 이야기

조회수 2021. 2. 16. 16: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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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가 매콤달콤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여러분은 ‘로마의 황제’하면 

어떤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폭군의 대명사 네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까지.


수많은 황제들이 

대제국 로마의 통치자로 

군림했는데요.


오늘은 로마를 이끌었던 

황제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서민 출신 황제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서민 출신이었습니다.


본명은 옥타비우스로, 

카이사르의 조카였던 

어머니는 귀족이었지만, 

아버지가 평민이었던 탓에 

옥타비우스도 평민이었죠.


합법적인 결혼으로 낳은 

자식이 없었던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를 후계자로 삼았는데요.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옥타비우스는 카이사르의 정적 

안토니우스를 꺾고 패권을 잡았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아우구스투스 흉상

이후 원로원은 옥타비우스에게 

‘존엄자’란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올렸습니다.


실용적인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황제를 통치자가 아닌 

‘정치가’라고 생각했는데요.


명목상으론 공화정을 유지했지만, 

군 통수권, 입법권 등을 가져오고 

귀족 원로원을 장악하며 

자연스레 제정을 도입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 통치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 로마는 약 200년 간 평화를 누리며 

‘팍스 로마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

아우구스투스 이후

200년 간 계속된 

로마의 평화 시대

극과 극의 오현제 하드리아누스

팍스 로마나 시기에 군림한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를 

‘오현제’라고 부르는데요.


훗날 오현제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하드리아누스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 황제였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하누리아누스의 성벽

그는 오늘날의 영국 북부에 

‘하드리아누스의 성벽’을 세우고 

게르만 족에 대응해 

550km에 이르는 방위선을 만드는 등 

정복보다 방위에 집중하며 

국력을 키웠습니다.


또 21년의 재위 기간 동안 

제국 곳곳을 시찰하며 

반란을 진압하는 한편, 

도시를 건설하고 공공시설을 확충하며 

제도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외에도 문화, 회화를 애호하고 

법 연구를 장려하는 등 

뚜렷한 업적을 남겼죠.

출처: 위키백과
하드리아누스 흉상

반면 변덕스럽고 난폭한 기질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비밀경찰 같은 조직을 운영하며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자들을 감시했고,

처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비난받기도 했는데,

연인 안티노우스가 죽은 후

신경질적이고 냉혹한 사람으로 변해

말년의 평판이 더욱 안 좋아졌습니다.

시적 감수성 충만했던 폭군 네로

악명 높은 폭군 네로는 의외로 

시적 감수성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네로는 소년 시절 

시와 음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정치보다 시를 짓고 

음악을 즐기는 삶을 원했는데요.


황제가 된 이후에도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한 네로는 

대중의 환호와 애정을 갈망했습니다.


때문에 공연을 열고 

시민들에게 돈을 뿌렸으며, 

세율을 낮추는 등 

포퓰리즘에 가까운 정책을 

많이 펼쳤죠.

출처: 위키백과

이때까지만 해도 시민들은 

네로를 ‘좋은 황제’로 여겼는데요.


이후 친모와 아내를 죽이고 

스승에게 자살을 명령했으며,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하는 등 공포 정치를 펼치며 

민심을 잃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로마를 불태운 

대화재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 

기독교를 탄압하며

폭군의 대명사가 됐죠.


결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하인들과 함께 도망치던 네로는 

로마 교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짧지만 빛났던 성군 티투스

세상에 나쁜 황제만 있었던 건 아니겠죠?


로마의 제10대 황제 티투스는 

성군으로 꼽힙니다.


그는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목욕탕을 

무료로 이용하게 했으며,

목욕탕을 직접 찾아 시민을 만났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폼페이

티투스는 재난에 유능하게 대응

지도자로도 유명합니다.


재임 첫해에 폼페이 화산 폭발로

수천 명이 사망했고,

이듬해엔 로마에서 큰 불이 났으며,

재임 마지막 해엔 페스트가 돌았는데요.


티투스는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구제 사업을 주도했고,

불타버린 로마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재위 2년 만에

갑작스레 사망하며

동생에게 왕위를 넘겼습니다.

"돈에선 냄새가 나지 않는다"
베스파시아누스

재밌는(?) 괴짜 황제도 있습니다.


티투스 황제의 아버지이자 

로마의 아홉 번째 황제였던 

베스파시아누스가 주인공인데요.


네로 이후 짧게 집권한 

세 명의 황제에 이어 

왕위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는 

네로의 방탕한 국고 운영과 

대화재로 망가진 로마를

재건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조세수입을 늘리는

경제 정책을 펼쳤죠.

출처: 위키백과

바닥이 난

로마의 재정을 채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그는

사람의 소변에도

세금을 매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소변은

가죽 제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재료였기 때문인데요.


몇몇 사람들이

‘소변세’에 불만을 표하자

베스파시아누스는

소변세로 걷은 금화에 코를 박고

“돈에선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명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베스파시아누스는

콜로세움 건설을 시작한

황제이기도 합니다.


이 콘텐츠는 매일경제의 기사

세상 가장 위험했던 직업, 

마 황제…그들 대부분 

왕관의 무게에 짓눌렸다

참고하여 제작했습니다.


[허연 기자 / 김진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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