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의 중요성을 200년 전부터 예견한 사람
'그'가 부활한다면 등불대신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것이다. 노트북엔 데이터로 가득 찬 스프레드시트가 들려 있고, 사망자 수 통계의 신뢰성을 두고 트위터로 열띤 논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 가디언(The Guardian)
밤마다 등불을 들고 다니며 환자들을 돌보던,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자애와 헌신'의 상징으로 알려진 그는
사실, 철저한 '수학적 팩트'에 기반해
질병을 물리친 전문가였다고 하는데요.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요?
간호사는 신의 소명
나이팅게일은 1820년 5월 12일
영국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7세 때 신으로부터
간호사가 되라는 소명을 받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 선언했는데요.
당시 간호사는 비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간호사가 되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전쟁터로 향하다
당대 유럽에선 끔찍한 전쟁이 발발합니다.
러시아와 오스만 트루크 연합군이 벌인
'크림 전쟁'은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중요한 건 대부분이 전투 중이 아니라
'감염병'으로 사망했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경우 전투 중 사망한 군인은 5000명,
감염병으로는 1만 5000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적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질병이었던 것이죠.
영국 정부는 간호사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나이팅게일은 이 간호사들을 이끌고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돌보기로 합니다.
개인위생의 중요성 '이것'으로 설득하다
전투지역 내 야전병원의 현실은 처참했습니다.
의약품과 각종 침구, 의복 등은 부족했고
바닥은 오물로 넘쳐났으며
병원 내엔 쥐가 돌아다녔습니다.
'위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명확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나이팅게일은 고집불통이던
군부, 입법가 등을 설득하기 위해
'통계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사망자 수와 원인을 꼼꼼히 기록해 만든
통계자료를 한눈에 이해하기 쉽도록
파이 그래프, 막대그래프 등을 만드는
'시각화 작업'에 특히 공을 들였습니다.
위생의 중요성을 '수치'로 증명하자
군부, 입법가 등의 당국자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지키기 시작하자
군인들의 연간 사망률은
42%에서 2%로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거리두기'의 시초?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에서 얻은 교훈으로
'병원에 관한 노트'를 집필했습니다.
저서에 나오는 '나이팅게일 병동'은
24~30개 병상을 두 줄로 배열하고
간호사실과 출입구를 한쪽 끝에
반대편 끝에 샤워실을 두는 구조인데요.
그가 고안한 '병상 간 거리두기'는
교차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유사해 보입니다.
이후 나이팅게일은 1859년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했으며,
영국 의사인 엘리자베스 블랙웰과 함께
'여성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나이팅게일은 110년 전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코로나19 맞서 사투를 벌이는
각국의 모든 의료진들을 응원합니다.
이 콘텐츠는 매일경제의 기사
코로나19, 나이팅게일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을 참고하여 제작했습니다.
[이영욱 기자 / 신소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