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쌍천만 감독' 된 샐러리맨
'해운대'(1132만명) '국제시장'(1426만명)
1000만 관객을 두 번이나 돌파하며
'쌍천만' 신화를 쓴 윤제균 감독.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감독이 됐지만
윤 감독의 영화인생이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그의 인생 스토리를 직접 들어봤다.
Q.
원래 연출 전공자가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A.
네. 저는 평범한 월급쟁이였어요.
당시 IMF 때문에 힘들던 시절이어서
전 직원이 돌아가면서 무급휴직을 써야 했죠.
그때 집에 틀어박혀 생각해보니
돈 없이 할 수 있는 게 글쓰기뿐이더라고요.
그래서 골방에서 글을 썼죠.
이게 영화계로의 첫발이었어요.
윤 감독은 돌이켜보면 롤러코스터처럼
기복 많은 인생이었다고 말합니다.
경제학과를 나온 그는
광고 제작을 하고 싶어
광고회사에 들어갔지만
상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전략기획팀, 관리팀에만 보내졌습니다.
그러다 1997년
IMF 경제위기까지 터졌죠.
이듬해 대학교 CC(캠퍼스 커플)로
7년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돈이 없어 단체 신혼여행을 갔던 그는
이 때 만난 많은 부부들을 바탕으로 한
'신혼일기'라는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 시나리오가 1999년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작이 됐죠.
이 덕에 그는 신생 제작사 대표를 만났고
전업의 기회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가
메이저 제작사가 아닌
신생 제작사에 건네진 게
또 한 번 그의 삶을 바꿔놨습니다.
시나리오를 계약하긴 했지만
신생 회사다보니
영화화가 지지부진해진 것이죠.
'난 왜 이리 운이 없을까' 라고
생각하던 그는
이렇게 된 거 자신이 연출까지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찍은 게
데뷔작 '두사부일체'입니다.
윤 감독의 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는 2002년 JK필름을 설립해
20여 편의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그 중 3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성과를 냈죠.
물론 꽃길만이 이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해운대'로 1000만 감독이 됐지만
이후 '7광구'가 혹평을 들었고
'국제시장'으로 좋은 평가를 받나 했지만
스파이란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는 웃습니다.
삶은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윤 감독의 인생에서 엿볼 수 있듯
나쁜 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좋은 기회로 바뀔 지 모릅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니까요!
그러니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좌절할 필요도
좋은 일이 있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