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감독 봉준호의 특별한 탄생의 비밀

조회수 2020. 3. 4.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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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를 말하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100년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한 획을 긋고 있는 감독 봉준호.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보고 있고 심지어 외신인 미국 인디와이어 기자는 ‘봉준호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며 그를 극찬하기도 했는데요. 

사람 그 자체로 장르가 된 인물 봉준호 감독,
그의 유년 시절은 어땠을까요?

조금은 특별했던 탄생

봉준호 감독은 1969년 대구광역시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영화감독이 될 만한 예술적 감각을 집안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봉준호 감독의 아버지는 국내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로 유명한 아버지 봉상균 교수로 이에 영향을 받은 건지 봉준호 감독은 그림 실력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외할아버지는 1930년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박태원 작가로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집필했죠. 이것 또한 영향을 받은 것인지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직접 쓰죠. 어떻게 보면 글 쓰는 실력을 타고 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합니다.

심지어 누나인 봉지희 교수는 섬유예술학을 전공한 패션스타일리스트학과 교수로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집안이 예술가의 기질이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걸까요? 봉준호 감독은 “자유롭고 엉뚱하게 클 수 있게 해 준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수상소감을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는 어렸을 적부터 TV에서 방영해주는 영화들을 즐겨봤고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영화를 좋아하는 작은 영화광이 탄생한거죠.  

풍자적 시선을 가진 대학생 영화광

대학시절부턴 봉준호 감독만의 특성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사회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인데요, 이런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났던 곳은 학교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신문에 봉준호 감독이 직접 연재한 한 컷 만평과 ‘연돌이와 세순이’라는 4컷 만화입니다. 뛰어난 그림솜씨를 활용해 등록금 인상에도 개선되지 않는 학사 행정을 비꼬는 내용이라든지, 시국과 관련해 제적을 당한 후 복학을 한 학생이야기 등! 대학시절부터 특유의 재치를 담아 사회적 사건들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시절 중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요. 이 때 활동을 하며 봉준호 감독 생에 첫 영화인 <백색인>이라는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러닝타임 18분 정도의 짧은 단편영화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공장 노동자의 잘린 손가락을 줍게 되고 그 손가락을 이용해 기타를 치고 도장을 찍어보는 등 이상한 행위를 하는데요.

이런 모습을 통해 양면성 가득한 직장인의 모습을 사회적인 얘기와 함께 풍자로 풀어낸 것이 특징인데요. 첫 단편영화지만 이 영화부터 봉준호 감독만의 특징이 짙게 드러나 있었고 자신만의 유머러스한 풍자 코드를 이때부터 구축하게 됩니다.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조감독

첫 단편 이후 봉준호는 <지리멸렬>이라는 영화를 두 번째로 만들ㄹ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이 눈여겨 봤던 작품으로 이후 함께 차기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논의까지 마련될 기회를 제공해 주었죠.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결국은 무산되었고 봉준호 감독은 조감독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봉준호 감독에게 기회가 생겼는데요. 

바로 <이성재>, <배두나>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플란다스의 개>라는 영화를 발표하게 된 겁니다. 봉준호 감독의 첫 상업영화로 오랫동안 준비해 기대가 컸지만 안타깝게도 관객 수 5만 명으로 흥행에선 참패를 하고 맙니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질 분이 아니죠. 

심기일전! 다시 한 번 대중들을 위해 영화를 준비하는데요. 그 영화가 흥행작 <살인의 추억> 입니다.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작품이었죠. 그런데 이 영화 제작당시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습니다. 

1997년 , 당시 조감독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단역 오디션을 보러온 연기자 한 명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현재의 페르소나 배우 <송강호> 였는데요. 그 때 당시 단역을 전전하던 송강호씨를 오디션장에서 만나고 불합격을 통보할 당시 장문의 음성메시지를 삐삐에 남겨 전달했다고 합니다.  

잘나가던 배우도 아닌 단역 배우였던 송강호씨는 그 당시 메시지를 받고 매우 감동을 받았고 이후 <살인의 추억> 배역으로 제시가 들어왔을 때, 일명 잘 나가는 배우가 됐지만 전에 있었던 일을 잊지 않고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다는 사실! 전작은 흥행에 실패했고 보잘 것 없던 시절의 봉준호 감독을 송강호 배우가 믿어준거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운명처럼 만나게 된 둘이지만 사실상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성을 가진 봉준호 감독의 마음가짐이 빛을 본 순간이었죠. 지금도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 단 10초만 나오는 단역배우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 꼭 불러준다고 하는데요, 이런 그의 심성은 조감독 시절부터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 봉준호, 경청과 소통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되다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선 지금, 봉준호 감독의 과거에 대한 관심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죠. 이 때 빠질 수 없는 봉준호 감독만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경청’과 ‘소통’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린다는 봉준호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스태프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작은 소리 하나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제작을 하는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다고 영화인들은 입을 모아 얘기하죠. 

그리고 이런 원활한 소통은 그의 위상을 더 높게 만들어 주었고 일명 벌떼처럼 봉준호 감독근처를 맴도는 많은 팬덤을 보유하게 도와주었습니다. 역시나 그는 영화 시사회, 간담회 등 어느 자리에서나 많은 소통을 해왔고 봉준호 감독 이름에 벌집이라는 뜻을 가진 하이브를 합쳐 ‘봉하이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등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현재도 강력한 팬덤을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향기가 좋은 꽃은 많은 벌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도 봉준호라는 꽃은 배려와 소통, 존중 등 아름다운 인성의 향기를 갖고 있죠. 그렇기에 ‘봉준호’라는 사람 그 자체만으로도 장르가 될 수 있고 또한 매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세상에 혼자 이루어 낼 수 있는 성공은 극히 드물죠. 많은 사람의 도움과 더불어 같이 성장해나가는 가치를 아는 감독, 봉준호 그의 수상이 더욱 빛나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12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봉준호-
봉준호 감독의 특별한 탄생의 비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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