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샤넬이 루이비통 'OO백'을 탐낸 이유

조회수 2019. 11. 24. 10: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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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을 말하다

여행객은 누구나 납작한 트렁크에 필요한 소지품을 모두 챙겨 다녔는데 안타깝게도 이는 절도범들의 주요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886년, 루이비통과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은 두 개의 스프링 버클로 만들어진 잠금 시스템을 가방에 붙이기 시작합니다.

루이 비통은 사람 이름이다

루이 비통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1821년 프랑스 동부의 목공소 집안 출신 창업자 루이 비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트렁크 장인이 되겠다는 열여섯 살 루이 비통의 결심은 그의 인생 뿐 아니라 전 세계 패션 산업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죠.  

아버지의 재혼으로 고향을 떠나 처음 파리 땅을 밟은 그는트렁크 회사, 무슈 마레샬(Monsieur Marécha)에서 견습공으로 일하게 됩니다. 마차와 배, 기차가 주요 운송 수단이었던 당시에 여행 가방은 거칠게 다루어졌습니다. 

파리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는 수십 미터 길이의 실크 드레스를 입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여행을 다닐 때도 그 드레스들을 수십 개의 포플러 나무상자에 담아 마차에 싣고 다녔습니다.여행이 잦을 수 밖에 없었던 돈 많은 귀족 계층들은 개인 소지품을 보호하면서 많은 짐을 효율적으로 쌀 수 있는 방법을 장인들에게 의뢰했죠. 

이 때 목공소 출신이었던 루이비통의 실력이 빛을 보게 됩니다. 나무 다루는 법에 익숙했던 루이 비통은 섬세한 패킹 기술로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서 (Packer, 짐 꾸리는 사람)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황후의 전담 패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854년 포장 전문 가게로 첫 매장을 열었고, 이것이 바로 루이비통 브랜드의 시작이 됩니다.

루이 비통에 비통 가문은 더 이상 없다

창업자 루이 비통이 1892년 사망하면서 그의 대를 이어 아들 조르주 비통이 경영권을 이어받습니다. 루이 비통 브랜드는 1885년 처음으로 영국에 해외 매장을 오픈했고 뒤이어 뉴욕, 워싱턴 등에도 매장을 확장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용품 전문 매장으로 성장했죠. 

1936년 조르주 비통도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이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루이비통은 가족 경영의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결국 루이비통을 호시탐탐 노리던 거물 기업인 베르나르 아르노에 경영권을 인수하게 되는데요. 현재는 루이비통(LV)과 샴페인 브랜드 모엣 헤네시(MH)가 합병되면서 그가 설립한 세계 최대 사치품 기업 LVMH의 산하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LVMH는 세계 제 1위의 명품 기업으로 디올, 펜디, 지방시, 셀린느 등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루이 비통의 시그니처, 텀블러 잠금 장치

1900년대, 여행객은 누구나 납작한 트렁크에 필요한 소지품을 모두 챙겨 다녔는데  안타깝게도 이는 절도범들의 주요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886년, 루이 비통과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은 두 개의 스프링 버클로 만들어진 잠금 시스템을 가방에 붙이기 시작합니다. 

개발에만 수 년이 걸렸다는 이 자물쇠는 특허까지 출원했다고 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루이비통이 신문에 자신들의 새로운 자물쇠 시스템을 홍보했는데 당대에 유명한 탈출 마술사였던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를 거명하며 루이 비통 박스와 잠금 장치를 활용해 탈출을 시도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하네요.

물론 그는 이 제안에 응하지 않았지만 루이비통의 자물쇠 잠금 장치는 그 기능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현재는 도난방지보다는 디자인과 상징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코코샤넬과 루이비통의 콜라보

루이비통은 또 다른 명품 브랜드 ‘샤넬’의 수장, 코코 샤넬에게도 특별한 브랜드 였나봅니다.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코코 샤넬은 활발하게 자신의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와중에도  특이하게 루이비통에 자신을 위한 가방 제작을 의뢰했다고 해요. 그렇게 탄생한 가방이 바로 알마 백(Alma bag). 

작은 사이즈에 위쪽이 둥그런 형태로 마무리된 디자인으로 코코 샤넬이 데일리 백으로 사용하기 위해 루이비통 브랜드에서 만든 가방 이랍니다. 코코 샤넬과 루이비통의 만남으로 탄생한 이 가방이 처음 출시된 게 자그마치 백년이 다되어 가지만 왠지 모르게 디자인이 친숙 하죠? 그 이유는 첫 출시 이후 루이비통이 다양한 소재를 알마 백에 접목시켜 코코 샤넬의 감성이 녹아있는 알마 백 라인으로 가방을 계속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딱 4개 뿐인 한정판 루이비통 가방을
거머쥔 팝스타

이번엔 2007년에 한정판으로 출시된 가방 ‘트리뷰트 패치워크’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 가방은 당시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크 제이콥스가 14개 루이비통 가방 조각을 꿰매 붙여 만든 가방인데요. 

트리뷰트 패치워크는 미국에 단 4개만 배정이 되었는데 그 중 한 고객이 바로 비욘세여서 더 유명세를 탔습니다. 전 세계 단 14개 뿐 이라니... 디자인의 낭비인 것 같으면서도 루이비통의 높은 콧대를 다시 실감하게 하네요.

사실 이런 루이비통 에피소드는 끝이 없습니다. 루이비통은 한결같은 럭셔리 전략으로 절대 할인이나 세컨드 라인과 같은 전략을 취하지 않는데요. 혹시 남은 재고가 있다면 싸게 팔아서 조금이라도 이윤을 내기 보다는 전량 소각(!)을 시켜 아예 없애 버린다고 하네요.  

루이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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