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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사랑에 빠졌을까?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조회수 2018. 12. 13. 10: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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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칼럼니스트 남민영ㅣ구성: 공연오락반장)

우리는 언제부터 사랑에 빠진 것일까. 그 사람의 사소한 습관까지 기억할 때부터 혹은 문득 함께한 일들을 떠올리며 웃을 때부터일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두 인공지능 로봇은 이 물음에 대해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로맨틱하게 이야기한다. 예측이 불가한 사랑의 행복과 아픔 사이에서 두 로봇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어느 날 조용히 일상에 들어온 사랑

뮤지컬의 주인공은 ‘헬퍼봇 5 올리버’와 ‘헬퍼봇 6 클레어’다. 두 헬퍼봇은 구형이 되어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인공지능 로봇들만 모여 사는 서울 메트로시티의 낡은 아파트에 산다. 올리버보다 상위 모델이지만 내구성이 약한 탓에 자주 여기저기 고장이 나는 클레어는 어느 날 충전기가 고장 나 버린 것을 발견한다.


방전되기 직전 클레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로봇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모두 응답이 없고, 차가운 복도에 방전되어서 멈춰버린 클레어를 올리버가 도와준다. 이를 계기로 정해진 시간에 충전기를 빌리고, 돌려받기로 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취향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얼핏 로봇이라 하면 획일적이고 늘 수학적인 계산에 의해 움직일 것 같지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두 헬퍼봇은 다르다. 올리버는 주인이 아닌 친구라 여기는 제임스와의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 제임스가 좋아했던 재즈를 올리버도 좋아하고, 그 탓에 재즈잡지를 정기 구독하기도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오래된 LP로 재즈를 들을 때와 화분을 돌볼 때다.

올리버의 이런 일상을 보여주는 넘버 ‘나의 방 안엔’에는 그의 성격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내 방안은 매 순간이 너무 근사해 하루 하루 또 하루”라는 노랫말처럼 올리버는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 다만 늘 정해진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이 조금 문제다. 그런 올리버의 삶에 파동을 일으킨 이는 충전기를 빌려달라며 문을 두드린 클레어다.

우리는 언제부터 사랑하게 됐을까

클레어는 올리버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올리버가 소심하다면 클레어는 적극적이고 좀 더 쾌활하다. 또 주인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다. 주인인 제임스와 유독 사이가 돈독했던 올리버는 그를 친구라 생각하지만, 사람이든 로봇이든 마음이 변하고 쓸모가 없으면 버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클레어는 우정이나 사랑의 진짜 가치를 모른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헬퍼봇은 어느 날 충동적으로 제주도 여행길에 오른다. 제임스가 사는 제주도로 가서 그를 만나는 것이 소원인 올리버와 역시 제주도에 가서 반딧불을 보는 것이 소원인 클레어가 함께 떠나보기로 한 것이다.

클레어는 올리버와 함께하며 ‘사랑’의 감정을 배워간다. 밝지만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했던 클레어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과정과 따뜻하지만 소심했던 올리버가 그녀를 사랑하는 과정은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다.

두 로봇은 누구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때부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가장 로맨틱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사랑에 찾아온 유효기간

이런저런 차이와 한계에도 서로를 사랑하겠다고 약속하는 넘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는 두 로봇이 진솔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언젠가 고장 나서 수명이 다할 것을 알기에 사랑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걸 두 헬퍼봇 모두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표현해낸다. 

사랑은 반으로 쪼개져 둘이 된 조각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 위해, 평생에 걸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두 로봇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다 스며들 듯 사랑에 빠진 올리버와 클레어는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애틋한 모습으로 누구보다 진솔하게 ‘사랑’에 대해 말한다.

한계를 넘어서는 우정 그리고 촉촉한 재즈

극에서 클레어와 올리버의 사랑만큼이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올리버와 주인 제임스의 우정이다. 로봇과 로봇의 사랑이 가능할지를 넘어서 사람과 로봇의 우정은 가능할지, 어느새 애를 태우며 극을 지켜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극 중 올리버와 제임스가 함께 재즈를 좋아하는데, 덕분에 작품 전반에 아날로그 감성의 재즈가 잔잔하게 흐르고 내내 감성을 촉촉하게 만든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넘버들은 현악 4중주를 포함한 6인조 세션이 라이브로 연주해 더 특별하다.


2016년 초연 후 매번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이번 겨울엔 믿고 보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얼어붙은 가슴을 말랑하게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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