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북촌순례길(서울 순례길)

조회수 2018. 11. 30. 17: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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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보관광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서울의 주요 명소들을 직접 걸으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울의 숨은 매력을 살펴보는

서울도보관광!

11월 15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서울도보관광 서울 순례길은,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천주교 서울 순례길에 포함된 일부와

인근 서울관광명소를 연계해

총 3개 도보관광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북촌 순례길/서소문 순례길/한강 순례길)

이 중 한 곳인 북촌으로

서울도보관광 여행을 떠나보았습니다.

북촌순례길은

다양한 인물을 통해 종교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코스였는데요.

천주교에 큰 시련을 주었던 흥선대원군,

한국에서 순교를 택한 최초의 외국인 신부 주문모,

주문모 신부를 자신의 거처에 숨겨준 강완숙 등


이들이 활동했던

인사동과 북촌 지역을 돌아보며

역사 속 그들을 함께 만나보아요~



<< 북촌 순례길ㆍ도보코스>>

광화문 시복 터 - 조계사 - 인사동 - 운현궁 노락당 

- 석정보름우물 - 가회동 성당


광화문 시복 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나라인데요.


1800년에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화한 정책을 써왔던 정조가 승하하자

천주교가 널리 퍼지는 것을

염려한 조정은 본격적인

천주교 박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거나 유배의 벌을 받게 되었는데요.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가톨릭에서 덕행이 높은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사람을 추대하기 위한 예식인

시복식이 이뤄졌습니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거행하였고

이를 기리기 위한 표석이

광화문 광장에 세워졌습니다.

"왜 이 자리에서

시복식을 거행했을까?"


광화문 광장은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육조거리였는데,


순교자들이 정부 권력에 의해 

희생 당했기 때문에 시복식을 이곳에서 

거행하게 되었다고 해요.



조계사

조계사는 서울의 도심인

종로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중심사찰로

수행과 포교를 비롯하여

교육, 문화, 사회봉사 등 행사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불교의 아픈 역사를 엿볼 수 있는데요. 

조선시대에 유교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불교는 조선의 건국자들에게

배척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불교 탄압으로

승려들의 평상시 도성출입이 금지되었고

국란 위기로 *승군이 필요하면

강제 동원령을 선포하는 등

폐불정책으로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승군 : 나라의 위난을 구하기 위하여

승려들이 조직한 군대


현재 조계사는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나

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앞장섬과 동시에

휴식과 여유를 느끼실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사동

인사동은 국내외국인들이 즐겨찾는

서울의 핫플레이스인데요!


우리나라 전통 예술품 및

생활 물품 등을 판매하고 있어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오래토록 사랑받아 왔습니다.

인사동이 지금처럼 유명해진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과거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던 관아인 '도화서'가

인사동에 있었고,


직업을 잃은 상궁들이 인사동 근방에 모여

떡 만드는 기술로 생계를 이어나가며

'떡집'이 많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또한, 북촌에 모여 살던 양반들이

조선 후기에 인사동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곳에 '골동품'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지금의

인사동 거리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운현궁-노락당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를 일으킨

흥선대원군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운현궁

운현궁의 안채인 노락당은

조선 말기 궁궐건축에

버금가는 수법으로 건축되었으며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 을 장식하여

(익공 : 새 날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긴 공포의 일종)

가장 높은 위계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노락당은 운현궁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명성황후와 고종의 가례가 거행된 장소이자,

명성황후가 간택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석정보름우물

서울에 상수도 시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

우물은 주된 음수, 생활용수 공급원이었는데요.

북촌 주민들의 중요한 음수원이던

석정보름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데다,

이 우물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과거 궁궐 궁녀들이 몰래 떠다 마시며

아이 낳기를 기원하기도 했다는데요.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도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가회동 성당

성당이 위치한 북촌 일대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외국인 신부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 땅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한 곳입니다.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하여 활동하다가

신유박해때 강완숙과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 초기 신앙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1949년 가회동 성당이 설립되었으며


이들의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성당 1층에는 한국 천주교회와

가회동 성당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역사 전시실에는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죽음에 대한 증언이 담긴

황사영 백서를 비롯해

기도서, 순교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 등


100여 년 동안 천주교를 탄압했던

조선 왕실의 마지막 왕족인

의친왕과 의친왕비가 세례를 받은

증명서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특별한 서울 여행,
북촌순례길과 함께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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