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72년생 김지영

[엠빅블로그] '82년생 김지영'보다 10년 일찍 태어난, 이전 세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엠빅뉴스 작성일자2017.12.17. | 184,509 읽음

80년대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그려 사회적 공감을 얻었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82년생 김지영보다 10년 일찍 태어난, 이전 세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육아를 위해 건설회사 정직원을 그만두고 뒤늦게 가스점검원이 된, '72년생 김지영 씨' 한 명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지영 씨(가명)는 7년의 경력단절 기간을 겪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녀가 집중했던 것은 집안일과 육아. 전쟁 같은 하루 속에서도 지영 씨가 활짝 웃는 순간은 아이들과 함께할 때였습니다. 특히 첫째 아이가 한글을 30개월 만에 떼고, 학습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영 씨의 가슴은 벅차올랐습니다. 지영 씨는 그때부터 다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배운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를 미술학원, 태권도 도장에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한두 푼이 드는 게 아니었죠.”

남편과 아이들이 잠든 시각이면 지영 씨는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워크넷(체용 공고 사이트)'에 들어가 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워크넷에 접속할 때 품었던 작은 희망은 매번 절망으로 바뀌곤 했습니다. 이전 경력을 살려서 건설회사에 취직하고 싶었지만 '연령 무관'이라는 글씨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들었죠.


취업을 가로막은 건 나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영 씨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탄력적인 근무가 가능하면서도,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직장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을 충족하는 직장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영 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결국, 아르바이트였습니다.

목욕탕 청소, 입주 청소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식당이 가장 시간 조절하기 쉬웠어요

경력단절 기간 동안 지영 씨는 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모두 소화했습니다.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지영 씨를 괴롭게 했던 건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허무함과 무력감이었습니다. "나는 7년 동안 경력이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요. 나한테 지금 남아있는 건 엄마라는 지위. 그거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감은 현저히 떨어져 있던 상태죠."


지영 씨는 다시 직장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유치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챙길 수 있으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간절했죠.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마 회사 다닌다'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지영 씨는 '탄력근무제라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가스점검원’으로 취직했습니다.

"처음엔 기뻤어요." 지영 씨는 다음 말을 잇기 전에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점검원으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몰랐으니까요.” 지영 씨는 비정규직 가스점검원입니다. 이전에 건설회사에서 과장직으로 일할 때보다 월평균 소득이 약 50만 원 적습니다. 게다가 가스점검원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한 달에 ‘약 700가구’라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그보다 두 배인 1,400가구의 문은 두드려 봐야 했죠.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방문했을 때의 확률입니다.


지영 씨는 홀로 남성이 있는 집에 방문할 때 겪는 성희롱도 또 다른 고충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속옷만 입은 채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은 이제 익숙해졌다”며 “제발 삼각팬티만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지영 씨의 표정에서 어느 정도의 ‘체념’이 읽혔습니다. 최근에는 한 50대 남성이 “뉴스에서 보니까 방문하시는 분들 성희롱 많이 당하신다면서요?”라고 말하며 엉덩이를 툭툭 친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김지영. 이 세 글자가 지워진 것 같은 시기를 지내면서 지영 씨는 자신에게 너무 많은 ‘선택’이 남겨졌다고 말합니다.

“남자들은 결혼한다고 해서 축하를 받았으면 받았지 직장생활에서 뭔가를 잃거나 변화를 겪진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라고 해요. 아이를 낳을 것이냐 말 것이냐, 낳고도 직장생활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렇게 가장 큰 고민은 항상 여성이 해요. 같이 낳았는데 선택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워요.”

엄마들의 인생사는 다 소설책 한 권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지영 씨는 소설 같은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지영 씨의 소설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녀는 몇 번이나 더 선택의 무게를 견뎌야 할까요.

작성
주보배 인턴
출처 : MBC · [엠빅뉴스] 72년생 김지영

해시태그

놓치지 말아야 할 태그

#뉴스에이드

    많이 본 TOP3

      당신을 위한 1boo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