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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빅뉴스

30대 여성 암매장 사건의 전말

우리 사법체계는 정말 정의로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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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취재해보니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길더라도 사건의 전개 과정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2012년 9월 하순, 당시 36살이던 피해 여성은 동거하던 남성에게 맞았고 숨졌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충북 음성의 한 밭에 암매장됐습니다.   


그녀를 파묻은 동거 남성은 동생과 함께 시신을 그 밭으로 옮겼고 혹시나 시신이 발견될까봐 시멘트도 함께 부었습니다. 이후 이 남성은 뻔뻔하게도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주변에 행방을 묻고 다녔습니다.


경찰 수사에 의해 여성의 사체가 발견된 것은 숨진 지 4년이 지난 2016년 10월이었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남성은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다 동생이 먼저 범행 과정을 자백했고, 이어 여성을 숨지게 한 가해자도 결국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살인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살인죄로 재판에 넘기려면 고의로 사람을 죽였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4년 전에 발생했던 사망 사건이라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심지어 정확히 숨진 날짜조차 특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콘크리트에 묻혀 이미 백골 상태가 된 시신에서는 흉기나 둔기에 맞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즉 부검을 한 시신에서는 잔인하게 살해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여성이 죽어갈 때 혹은 죽었을 때 119에 신고하지도 않았고 동생과 함께 사체를 암매장한 뒤 4년이나 숨겼지만 증거는 오직 이 남성의 '진술'뿐이었습니다. 죄질은 극히 나빴지만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었던 경찰은 결국 살인 혐의가 아닌 폭행 치사 혐의와 사체 은닉 혐의로 검찰에 사건을 넘깁니다.


폭행치사 그러니까 때리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사람을 숨지게 했다는 뜻입니다.  


징역 5년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되기까지


이번에는 재판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폭행치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판결문에는 이 남성에게 법률상 징역 3년부터 37년까지 처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1심에서 재판부는 형량을 판단하기 위해 몇 가지 고려를 했습니다. 크게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생명을 잃게 하는 동안 구급차를 부르는 등 구호활동을 하지 않았고 자수도 하지 않았다. 영원한 사건 은폐를 위해 사체도 은닉했다. 죄질은 극히 나쁘다.


둘째, 이 사건으로 유족이 받았을 고통이 크다. 그러나 유족과 합의되지 않았다.


셋째, 범행은 우발적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범인은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


1심은 이를 토대로 징역 5년을 선고합니다. 가해자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가해자의 변호인은 피해자의 유족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합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재판부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그리고 2심 재판부는 형이 무겁다고 항소한 가해자의 뜻을 받아들여 징역 3년으로 2년 형을 덜어줬습니다. 역시 궁금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딸을 숨지게 한 가해자를 용서하고 심지어 처벌받기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취재를 하며 숨이 막히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이 여성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이혼했고 결국 어머니는 집을 나갔습니다. 5살 무렵 할머니에게 맡겨졌지만 12살 쯤 가출했습니다. 이 여성은 고아원 그러니까 보육원을 전전했고 성인이 되자 그마저도 나와야 했습니다. 호적에 등록된 아버지와는 1년에 한 번 정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사실상 그녀에게 가족은 없었던 겁니다.


세상의 무게를 혼자 짊어져야 했고 어둠 속에 발을 딛게 됐습니다. 유흥업소 일을 하게 되었고 가명을 썼습니다. 같이 일을 하는 여성들은 서로의 본명을 알지 못했고 제대도 된 친구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마음을 둘 곳은 반려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둘씩 기르던 고양이는 어느새 10마리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고양이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른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중 이런 도우미들을 차로 태워주는 남자를 알게 되어 사귀게 됐습니다. 그리고 동거를 했습니다. 2012년 9월, 여성은 남성에게 관계를 끝내자는 뜻의 말을 전했고 그날 이 남성에게 잔인하게 맞은 뒤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변호인과 돈을 받아 합의했고 처벌을 원치 않은 유족은 바로 그녀의 법률적이고 생물학적인 '아버지' 입니다. 5살 때 모친에게 자식을 맡긴 뒤 양육의 책임을 지지 않았던 그 아버지입니다. 심지어 2012년 여성이 숨진 뒤에도 딸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경찰에 연락을 받고 알게 된 그 아버지 말입니다.


과연 이 사실을 재판부는 알고 있었을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이 판결을 내린 대전고법의 재판부는 공보 판사를 통해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재판부는 사건 기록을 통해 이 여성과 유족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유족과의 합의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포함해 사건을 전체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양형을 판단한 결과 징역 5년의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으로 2년을 감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이들을 변호했던 변호인 측 그리고 가해자에게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모두 취재했고 답을 들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에서 올라오는 이 의문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법리, 우리 사법체계는 정말 정의로운 것일까?"


                                                  


                                  일러스트 : 백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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