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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빅뉴스

당신의 어릴 적 그곳, 안녕하십니까?

가수 하림, 사운드 디자이너 전광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편집장 이인규가 직접 종이에 그린 '나의 어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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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예요?"


질문 앞에 한참을 망설였다. 본적 주소를 읊기엔 아무런 추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기사를 쓰는 기자의 고향은, 어릴 적 기억이 닿는 끝자락에 놓여있었다. 서울 은평구 역촌동 어느 골목 끝자락의 키 낮은 아파트. 처음 친구도 사귀고, 함께 사는 재미를 깨달았던 곳. 여름이면 울창한 나무 아래서 더운 매미 울음소리에 취했던 곳.

1999년 한복판의 기억이다.

시간이 기억을 미화했을까. 
17년이 지나 다시 찾은 '어릴 적 그곳'은 변했다. 친구를 사귄 공터도, 울창한 나무도, 키 낮은 아파트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큼지막하게 붙은 현수막 한 장이 기억 속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은평구 역촌2동 - 재건축'

언덕은 누가 마법을 부린 듯 평지가 됐고, 주위엔 고층빌딩이 늘어섰다. 고향이라고 여겼던 곳에서 목격한 낯섦. 배신감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감정이 뒤엉켰다.

-오래된 기억을 지워내고 있는 도시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도 이제 수십 년이 지났다. 서울에 터를 잡은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을 도시에서 보내게 된 수많은 아이들이, 이제 다 큰 성인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어릴 적 서울은 그 어느 시골집 못지 않게 포근한 기억이었을 테다. 연립주택 반지하방이든, 단독주택이든, 아파트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들의 기억 속 서울이 계속 지워지고 있다. 
서울에서만 벌써 20만이 넘는 가구가 '재개발'의 이름으로 사라졌다. 물론 도시의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며,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다. 재개발 사업의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제구포신(除舊布新)이라 했던가. 
어쨌든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는 일이니까.

그러나 새 옷을 갈아입은 동네를 보며, 어릴 적 기억을 강제로 빼앗긴 기분이 드는 사람도 분명히 많을 터이다. 
'고향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서울의 젊은이들. 
이제는 그들의 머릿속에만 담겨 있을 옛 동네의 풍경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옛 기억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세 명의 문화노동자에게, '당신의 기억 속 고향'을 그려달라고 불쑥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취재진이 2016년의 '그곳'을 대신 찾아가봤다.

가수 하림, 
사운드 디자이너 전광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편집장 이인규 씨가 
그 '옛 기억'의 주인공들이다.

가수 하림의 '1983년 가을, 약수동'


"7살이었나, 아버지 사정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어요. 
저는 약수동 산동네에 있는 큰고모 댁에서 지냈죠. 
7살 꼬마가 부모와 떨어져 있으려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한 번은 엄마가 저를 만나러 이곳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엄마가 다시 떠나자마자 바로 크게 앓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병이 난 거죠."

급한 비탈길을 타고 오르는 가파른 계단과 전봇대. 하림이 그린 '어릴 적 그곳'은 산 중턱 마당 넓은 기와집이었다. 
불과 30여 년 전 남산 아래 도심 한복판의 풍경이다. 낯선 서울에서 가족의 부재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7살 하림은 매일 외로움과 싸웠단다. 
어느덧 적응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체득했는데, 해 지는 저녁 산 언저리에 올라 붉은 하늘을 바라보는 거였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동요 '노을' 中)

동네 친구가 하나둘 생기면서, 그들은 함께 산 어딘가에 걸터 앉아 노을을 보며 동요 '노을'을 입 모아 불렀다고 한다. 노래로 기억되는 붉어진 산 속 마을. 

어른이 된 하림의 '기억 속 약수동'은 어떻게 변했을까.

산 중턱에 빽빽하게 들어찬 42개의 아파트. 
5,150세대가 사는 대단지가 2002년에 들어섰다. 
그가 노래를 불렀던 산 언저리는 정확히 어디인지 찾을 도리가 없었고, 그가 섬세하게 그려낸 가파른 계단길은 널찍한 아스팔트가 대신하고 있었다.
5,150가구가 '내 집'을 얻었고,
하림은 '기억 속 그곳'을 잃었다.

"아직도 노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약수동이 떠올라요. 
그래서 제 기억 속의 약수동은 외로움의 공간인 동시에 
'노을이 비추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어요. 여전히."
- 하림

그에게 서울을 다른 말로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욕망이 녹슨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발로 덧칠된 서울, 남산 한복판까지 공격적으로 파고든 대규모 아파트 단지 너머로도, 
여전히 빨갛게 노을은 타고 있었다. 

사운드 디자이너 전광표의 

'1990년 여름, 청계천'


그는 서울의 소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다.
'사운드 디자이너.' 
기다란 붐 마이크를 들고 서울의 일상을 헤집고 다니는 '소리채집가'다. 
시청역 앞 직장인의 출퇴근길 소리부터 을지로 지게꾼의 청량한 휘파람 소리까지, 모두 그의 녹음기에 갇힌다.

서울의 소리를 세밀하게 담고 있는 그는, 어떤 '어릴 적 그곳'을 기억하고 있을까. 
펜과 종이를 건넸다. 그는 기억을 그려냈다. 

26년 전 청계천 고가와 세운상가였다.

"중학교 때였어요. 종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사이로 청계천 고가가 있었고, 그 아래로 육교가 놓여 있었어요. 
육교에는 LP판을 파는 노점이 즐비했죠.
 LP가게에서 저는 주로 헤비메탈 밴드의 앨범을 샀어요. 
그 당시엔 강한 음악을 듣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쩌면 그게 사운드 디자이너가 된 첫 걸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 그 풍경을 잊을 수 없는 이유죠"

전광표 씨가 그린 그림 속 장소를 찾는 건 쉬웠다. 여전히 세운상가가 그곳에 있으니까. 
취재진이 직접 찾은 2016년의 그곳은 많이 변했고, 또한 전혀 변하지 않았다.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되며 고가도로는 철거됐다. 육교도 사라졌다. 복원된 청계천 위로는 두 상가를 잇는 '세운교'가 새로 건설됐다. 그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고, 사람들도 흐르고 있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분명 그가 그린 그림 속 공간보다 깨끗해졌다.

반면 세운상가 내부와 건물을 둘러싼 구석구석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옛 모습 그대로의 노포도 즐비했고, 수십 년은 버텼을 낡은 간판도 동네의 둔탁한 분위기를 채우고 있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그 때의 소리를 꼭 녹음할 거예요. 
고가도로 밑 상인들의 목소리, 수북히 쌓인 LP판이 내는 마찰음 같은 것들이요. 
지금은 담고 싶어도 담을 수 없는 소리들이잖아요" 
- 전광표

그에게 옛날 서울과 지금 서울을 각각 그려달라고 졸랐다. 
그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흰 종이에 선을 거칠게 입혔다. 
과거의 서울은 '데모' 중이었고, 현재의 서울은 실외기가 빼곡한 건물 뒤편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화려한 서울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나 보다. 현상의 '이면'을 담는 디자이너다웠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이인규 편집장의 2016년


고향을 물어봤다. '둔촌주공아파트 324동'이란다. 
둔촌주공아파트 토박이 이인규 편집장. 
그가 발간하는 독립잡지의 이름도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품에서 36년째 같은 모습을 지키고 있는 5,940세대의 대단지. 
동네 이름처럼 서울 구석에 '숨은(遁:둔) 마을(村:촌)' 속 아파트를, 그는 꼼꼼히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2016년, 그의 고향이 재건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있겠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억을 이 낡은 아파트단지에 묻히고 사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이 편집장은 그들과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책 이름 앞의 '안녕'은 만남이자 헤어짐을 뜻한다. 
그는 그렇게, 고향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그림 속 아파트는 푸르다. 
녹지가 많은 옛 아파트 단지의 정취다. 여린 잎들로 옷 갈아입은 가로수가 빨간 옷의 여인을 포근히 감싸는 어느 공터의 풍경. 
왜 이곳을 그렸냐고 물으니, "여기서 유난히 자주 넘어졌기 때문"이란다. 

참 사소하고 예쁜 기억이다.

"저와 이곳 주민들이 몹시 아꼈던 기린 미끄럼틀이 있었어요. 그런데 2014년에 안전문제로 철거됐죠. 
만 명 주민들의 추억이 겹겹이 쌓여있는 미끄럼틀이 부서지는 걸 눈 앞에서 지켜보면서, 직감했어요. 
아파트가 철거되는 모습만큼은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걸요. 
그 슬픔의 무게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의 작업실 창가에는 철거된 기린 미끄럼틀의 조각이 놓여있었다. 서쪽으로 난 창문에서는 늦은 오후 햇볕이 가득 찼고, 그 빛에 반사된 콘크리트 조각에서는 어린 글씨의 낙서가 반짝였다.

(사진제공 :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 - 이인규, 김기수)

오랜 시간 조금씩 고치고, 시대의 취향을 덧대며 견뎌온 아파트. 건물, 가로수, 사람이 30년 넘게 함께 뒤엉켜 지내온 공간이 이제 곧 사라진다.

이인규 편집장은 아파트가 철거되기 전, '안녕, 둔촌X가정방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호, 혹은 그 다음호에 실릴 이야기들이다. 아파트 주민이 프로젝트 참여를 신청하면, 이 편집장이 직접 찾아가 집에 얽힌 사연을 글과 사진으로 담는 기획이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이제 서울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기억보다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기록'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인규 편집장의 기획이 뜻깊은 이유다. 

2016년 서울에 던지는 세 가지 물음표


추억은 흘러갔기에 소중하다. 
추억이 쌓이는 당시에는 누구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추억 속 그곳'을 그려준 세 명의 문화노동자에게, 마지막으로 달라진 서울에 대한 소회를 부탁했다.

하림 - "어디로 갔을까?"


"약수동 일대를 재개발할 때, 산동네 사람들은 동네를 주고 분양권을 받았죠. 
하지만 그건 집주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였어요. 
세 든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났으니까요. 

저는 그곳에 다시 찾아가보지는 않았지만, 변화한 약수동을 보면 '여기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전광표 - "어디서 찾을까?"



"재개발이란 건물이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있던 사람과 기억까지 모두 지워지는 거라 생각해요. 
옛 기억도 공간과 함께 철거가 될 테니까요. 
거기에는 새로운 기억이 쌓이겠죠. 
도시 곳곳이 재개발로 바쁜 서울 속에서, 제 옛 기억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서울은 아직도 '공사 중'인 곳입니다."

이인규 - "어디로 가야 할까?"



"둔촌주공아파트와의 이별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재건축이 시작된 후에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준비한 게 없어요. 

하지만 확실한 게 있어요. 

재개발된 둔촌주공아파트 부지로 돌아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곳은 더 이상 제 고향이 아닐 테니까요."

변화하는 도시에는 가격이 붙지만, 옛 기억에는 가격이 없다. 
발전 앞에 기억이 무기력한 이유의 민낯이다.

그러나 기억은 중요하다. 그 기억이 '고향'과 맞닿아 있다면 더 중요하다. 사람에겐 고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어릴 적 그곳'에서 뛰놀고 있다. 
재개발된 도시에도 새싹 같은 추억은 켜켜이 쌓이고 있을 테다. 
그들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에는 옛 기억 속 그 공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할지 모른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어릴 적 기억'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도시 어른들이 같은 상실감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끝없이 빽빽해지는 이 도시 어딘가에도, 해답은 놓여있을 것이다. 
분명히.
기사·편집|강연주 인턴기자  사진|남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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