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남편과 아이를 잃었을 때

조회수 2020. 12. 28.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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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나이팅게일', 잃을 것 없는 자들이 만든 슬픈 '폭력의 연대기'

인물의 여정을 통한 폭력의 근원 찾기,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
냉탕+온탕, 장르+메시지 놓치지 않은 연출 돋보여

출처: 조이앤시네마
출처: 조이앤시네마

영화 '나이팅게일'은 호주 태즈메니아의 마을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나이팅게일이라 불리는 ‘클레어(아이슬링 프란쵸시 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늘하고도 슬픈 복수극이다.


복수극의 전형적인 흐름을 차근히 밟아가고 있지만 '나이팅게일'은 단순한 여성 복수극 그 이상으로 서글픈 '폭력의 연대기'를 이야기한다.


클레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신분과 죄인이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급 사회 이면의 희생양이다. 클레어는 형기를 다 채우고 남편,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영국군 장교인 ‘호킨스(샘 클라플린 분)’에게 약속됐던 추천장을 요청하지만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호킨스의 진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굿윈’(이웬 레슬리 분) 대위가 찾아온 어느 날, ‘클레어’의 남편과 ‘호킨스’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한 순간에 남편과 아기를 잃게 된 클레어는 호킨스 무리를 추격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복수의 서막을 알린다.


초반부 클레어가 모든 것을 잃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처참하고 불편하게 그려진다.


영화 내내 관통하는 건 클레어의 분노 뿐만이 아니다. 바로 클레어와 흑인 원주민 ‘빌리(베이컬리 거넴바르 분)’이 만들어내는 여정이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동료애를 쌓고, 스스로에 대한 용기를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찾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호킨스를 처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사람의 여정에서 예상치 못한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고, 갖은 장애물 등에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우림이 우거진 깊은 숲속에서 진행되는 인물들의 추격전과 돌발상황은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숨막히는 활력을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나이팅게일'은 끝내 주인공이 무차별적으로 인간성을 잃고 살인마가 되어버리는 여느 통속적인 복수극과는 궤를 달리한다. 일말의 영혼을 잃지 않는 클레어와 빌리를 통해 우리는 폭력의 근원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두 사람의 걸음에 함께 힘을 싣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나이팅게일'의 후반부가 주는 묵직한 울림이자 미덕이다.


그래서인지 보는 이에 따라선, 복수를 끝내고 난 클레어와 빌리의 모습이 그리 '클리어'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으며, 역경을 극복하거나 부당한 세상과 맞서는 장면은 관객과 묘한 연대감을 형성한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브루나 파판드레아가 말한 “영화가 폭력의 순환 고리를 끊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이 유독 공감이 가는 이유다.


배우들의 절제되면서도 폭발적인 열연도 돋보인다. 특히 클레어 역의 아이슬링 프란쵸시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습부터 독하게 무자비한 복수의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까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공포영화 '바바둑'으로 첫 작품부터 평단과 대중을 단숨에 사로잡은 제니퍼 켄트 감독은 두 번째 작품인 '나이팅게일'을 통해 긴장감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했다. 마치 냉탕과 온탕처럼 뜨겁고도 차가운, 그리고 장르적 요소와 사회적 메시지를 둘 다 놓치지 않은 제니퍼 켄트 감독의 연출 역량은 관객의 눈과 귀, 그리고 심장을 정확하게 저격할 것이다.


개봉: 12월 30일/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감독: 제니퍼 켄트/출연: 아이슬링 프란쵸시, 샘 플라플린, 베이컬리 거넴바르/수입: 조이앤시네마/배급: 제이앤씨미디어그룹/러닝타임: 136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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