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만 국내 정식 개봉하다는 대만의 '기생충' 같은 영화

조회수 2020. 9. 10. 09: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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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공포분자' 미몽 헤매는 시선이 뒤얽힌 시대의 편린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오가는 감각적 시선

대만 뉴웨이브를 이끈 거장 에드워드 양의 대표작 ‘공포분자’(1986)가 34년 만에 정식으로 국내 개봉을 알렸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타이페이 스토리’에 이어 에드워드 양 감독의 테이페이 3부작 중 하나로, 소녀의 장난 전화 한 통이 불러온 네 남녀의 기묘한 비극을 담았다. 

푸른 빛이 어스름하게 깔린 새벽녘, 텅 빈 도시를 단발 총성이 깨운다. 경찰 수사를 피해 도망가다 다리를 다친 소녀를 우연히 카메라에 담은 소년은 사진으로만 마주한 소녀를 마음 깊이 담아둔다. 한편 갑작스레 출세의 기회를 잡게 된 의사 남편 이립중(이립군)과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아내 주울분(무건인)은 서로를 향한 권태에 지쳐있다. 이때, 한 소녀가 무심코 걸어온 장난전화를 아내가 받게 되며 네 사람의 일상은 기묘한 비극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영화 ‘공포분자’는 같은 도시 속 존재하는 이방인들이 우연히 엇갈리며 서로가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는 비극을 담았다. 제23회 금마장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제40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은표범상 등 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며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빛의 명암을 다루며 독창적인 영상미를 선보였던 에드워드 양 감독 특유의 미학적 성취가 돋보여 남다른 감상을 남겼다. 

‘공포분자’는 1980년대 대만을 배경으로 급변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 짓이긴 개인의 인간성을 조명했다. 도시 생활에 무료함과 권태를 느끼는 이들이 각자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한 무엇인가에 집착하지만 결국 갈등과 혼란만을 초래한다. 영화는 주인공 주울분의 소설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소설과 현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충돌하는 이야기를 관찰하며 인물의 고독과 불안, 위태한 감정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에드워드 양 감독은 현대인의 정체를 이루는 불안과 우울을 살피면서도, 자신의 독창적이고 정교한 시선이 엿보이는 미장센을 화면 곳곳에 배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극 중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담하게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는 청년의 모습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 혹은 제 3의 시선을 암시하는 듯해 흥미를 돋우고, 빛의 음영을 활용해 표현한 인물 사이의 거리감과 심리는 다분히 인상적이다. 

영화는 두 가지 결말로 관객을 혼동시킨다. 하나는 흔한 복수극과 같이 이립중이 바람난 주울분을 향해 총구를 들이미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총구가 그 자신을 향한 것이다. 어떤 결말이 진실이고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겹쳐진 두 세계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다.  


허나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 대만의 사회상을 상기해 보자면, 두 결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당시 대만 영화는 국민당의 검열 속에서 대만의 현실과 문제점을 직시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상투적인 복수극은 문제의 본질을 가렸던 환상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스스로를 향해 발사한 총성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역사에 대한 경계와 비판의 목소리를 의미할 터다.  


이에 더해 이립중의 자살로 끝을 맺는 시퀀스는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지난 세대의 종말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잉태다. 이립중의 죽음으로 지난 세대가 끊어진 이후, 주울분은 입덧을 시작한다. 즉 암울했던 역사를 향해 고하는 안녕이자, 도래할 미래에 대한 희망의 씨앗이다. 

이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비극과 삶의 이면을 섬세하게 담아낸 명작인 ‘공포분자’지만, 일반적인 상업영화에 대한 기대를 품는 관객이라면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긴 어렵겠다. 빠른 전개와 속도감 있는 연출이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들과 달리 ‘공포분자’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서정적으로 흘러간다.  


개봉: 9월 17일/관람등급: 15세 관람가/출연: 무건인, 이립군, 금사걸, 고보명, 유명, 왕안/감독: 에드워드 양/수입∙배급: ㈜에이썸픽쳐스/러닝타임: 109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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